이제는 스무 살 대학생이 된 아들이지만 어릴 때는 고집도 셌고, 아내에겐 자주 떼를 부리던 아들이었다. 지금 꺼내는 이야기는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니 아마도 아들이 세, 네 살쯤 일이다. 아들이 어린이 집에 다섯 살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그때는 종일 아내와 아들이 함께였던 시기였다. 아들에겐 늘 좋은 엄마이자, 친구였던 아내는 그날도 아들과 최선을 다해 놀아주고 있었다.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평소 가지고 놀던 자동차 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했다. 여러 시간 놀다 보니 낮잠 잘 시간이 되어서인지 아들 녀석은 잠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아기 때부터 잠만 오면 늘 투정 부리던 버릇이 세, 네 살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아내는 이런 아들을 늘 해오던 대로 능숙하게 구슬려 낮잠을 자게 하곤 했었다. 아들은 그날따라 유난히 더 차가운 거실 바닥에 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투정만 부렸다. 어쩔 수 없이 아내는 맨바닥에 누워있는 아들을 일으켜 세우려고 아들의 팔을 당겼다. 하지만 아내가 이끄는 대로 일어나지 않고 버티던 아들은 금세 아내의 팔을 뿌리치며 자신의 팔을 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앙~~ 아파, 너무 아파. 우~왕~ "
"민수야, 팔 아파? 어디가 아픈지 엄마가 좀 볼게. 팔 좀 내밀어봐"
"싫어. 싫어. 엄마 만지지 마. 너무 아파~"
아내는 아프다는 아들의 상태를 보려고 아들 팔을 살짝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프다며 아내에게 자신의 팔을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아내는 아들 잠투정의 연속이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잠시 기다리면 잦아들겠지 싶어 아들을 달래며 곁에 있었다. 잠깐 그러고 말겠지 하던 아들은 시간이 지나도 울음이 잦아들지 않았고, 걱정이 되던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자주 다니던 소아과를 찾았다.
병원을 들어섰을 때만 해도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아내는 아들이 병원에 와서도 조용히 자리에 앉아 팔에 손을 못 대게 하는 걸 보고 어쩌면 많이 다친 게 아닌가 순간 걱정이 됐다. 사실 병원에 왔을 때만 해도 아내는 아들의 꾀병(?)이 금세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다. 잠깐 아파서 울었을지라도 평소와 같이 아이를 일으키기 위해 살짝 당긴 팔이 큰 고통과 상처를 주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병원에 데리고 왔을 때만 해도 아들이 좋아하는 '흔들 목마'를 보면 대기하는 동안 분명히 '흔들 목마'를 탈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과는 달리 아들은 대기하는 동안 아내 옆에 앉아 묵묵히 있었고, 아들의 순서가 되어 진찰실에 들어갈 때까지 아들의 이 태도는 이어졌다.
"민수,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진찰실로 들어선 민수와 아내를 보며 의사 선생님은 증세를 물었다. 아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지만 한쪽 팔을 잡고 있으면서 자신의 증세를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제가 아이를 일으키려고 팔을 당겼는데 그 뒤부터 팔이 너무 아프다고 하네요 선생님."
아내의 설명에 선생님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많은 아이들을 다루는 소아과 선생님답게 능숙하게 아들을 구슬리며 잡고 있던 팔을 내밀게 했다.
"민수가 팔이 아팠구나. 선생님이 잠깐 볼까?"
팔을 조심스럽게 만져보며 선생님은 아이의 표정을 지켜봤고, 통증 등을 물어봤다. 여러 차례 촉진을 하던 선생님은 따뜻하고 밝은 웃음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명의로서 최종 진단 결과를 내렸다.
"선생님이 여기저기 살펴봐도 멍이 든 곳도 없고, 움직임도 괜찮네. 우리 민수가 팔이 조금 놀랬나 보네. 이젠 괜찮은 거 같은데"
아이가 괜찮다는 말에 아내는 걱정했던 마음을 쓸어내리며 선생님께 감사 인사하며 진찰실을 빠져나왔다. 아내는 먼저 진찰실을 나간 아들을 찾아 시선으로 아이를 쫓았고, 이런 아내의 시선 끝에는 재미있게 놀고 있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조금 전까지 아파서 손도 못 대게 하던 팔로 '흔들 목마' 손잡이를 꼭 잡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말을 타고 있었다. 그것도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이 앞뒤로 크게 흔들며. 이런 아들을 보고 있던 아내는 조금 황당했지만 그래도 아픈 곳 없이 노는 아들의 건강한 모습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선생님의 '괜찮다'는 한마디에 언제 아팠냐는 듯 진심을 다해 열심히 노는 아들 모습을 보니 아들이 다니던 소아과 선생님이 명의는 '명의'인가 보다 싶었다.
15년도 훌쩍 지난 얘기로 명절 연휴 저녁 아내, 딸 그리고 나까지 두런두런 얘길 하다가 아내가 해준 이야기에 웃음꽃이 폈다. 아들의 이 '흔들 목마' 얘긴 여러 차례 들었지만 늘 웃음이 난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딸아이는 웃겨 죽겠다고 아주 옆에서 '박장대소'다. 큰 웃음소리에 거실로 나온 아들은 영문도 모른 체 '왜 그러냐'라고 묻는다. 아들 옛날이야기로 웃는다는 말에 또 한 바탕 웃음이 터졌다.
자녀들 이야기는 아이들 성장할 때 함께했던 부모를 늘 기쁘게 하고, 웃게 만든다. 추억이 가진 힘이란 대단하다. 당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웃을 이야기, 행복할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시간이 흐른 걸 보고 있으면 너무도 빠르게 지나서 아쉽지만 두고두고 꺼내볼 추억의 시간들이 있으니 우린 아직도 웃고, 행복했던 과거의 시간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추억 때문에 결코 손해보지 않는 장사다.
이번 추석 때는 몸도 안 좋아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딸아이의 코로나 의심 증세에 내 감기까지 패키지로 생긴 병증 때문에 자식, 손주들 볼 생각에 명절 밤을 기다리시던 장인 장모님께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가족들이 생각나는 명절이었던 것 같다. 시월의 첫 연휴에는 찾아뵙지 못했던 처가에 가야겠다. 손주들과 딸자식을 기다렸던 장모님 얼굴에 오랜만에 함박웃음이 피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내게 든든한 지원군이자, 우군인 가족이 곁에 있어서 오늘 하루도 내일을 위해 추억의 시간을 만든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추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