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 생일보다 더 기다렸던 생일도 있었다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하루로 기억되나요

by 추억바라기

12월이 시작하고도 많은 날이 갔다.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저녁거리엔 형형색색 조명이 켜지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위드 코로나로 정책이 바뀌고서 맞는 코로나 속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최근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예전처럼 캐럴이 여기저기 울리는 12월은 아니지만 10시도 되지 않고 가게들이 문 닫던 작년 이맘때보다는 크리스마스 기분에 조금은 스며드는 듯싶다. 침묵의 12월이 아니니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 생일보다 다른 분의 생일이 더 좋았다


12월을 손꼽아 기다렸던 시절이 있었다. 생일보다 오히려 그 시절엔 더 설레고 행복한 마음을 한 달 가까이 품고 살았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2주 전부터 트리에 장식을 하고, 매일 밤을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두 손 모아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하며. 마음속으로 빌기보다는 크게 소리 내어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뻔한 레퍼토리였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해야 산타 할아버지가 들을 수 있다고 자식들이 받고 싶은 선물 정보를 미리 확인하곤 했었다. 그렇게 고급 정보를 듣고서도 동생이나 난 소원 성취를 하는 일이 드물었다. 비싼 장난감이나 인형을 선물로 빌다 보니 그 시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부모님이 감당하기엔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눈을 뜨며 머리맡에 놓인 포장된 선물을 볼 때면 가슴은 콩닥거리고, 아드레날린 수치가 올라갔던 것 같다. 떨어지지 않은 눈을 비비며 눈곱도 떼지 않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포장지를 뜯곤 했다. 순수했던 시절의 나의 크리스마스. 뚜렷하게 기억에 남은 추억은 이젠 가물가물하지만 따뜻했던 마음만은 고스란히 스며들어 요즘도 문득문득 미소 짓게 하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를 의미한다.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날이지만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특별한 날이다. 아내와 교제하던 연애 시절에도, 결혼을 하고 나서도 크리스마스 하루는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울리는 캐럴에 흥얼거리고, 반짝거리는 트리 조명에 슬픈 일도, 아픈 일도 위로받을 수 있는 한 겨울 속 감성 온도가 따뜻함을 유지하는 축복받은 하루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12월의 이 하루만은 사람들 얼굴에서, 마음에서 따뜻한 봄날 같은 하루다.


결혼 후에는 내겐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조금은 달랐다. 온 가족이 행복한 하루이길 비는 마음은 같지만 주로 선물을 받거나, 주고받는 입장에서 신경 써 선물을 준비해서 주는 기쁨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된 날로 바뀌었다. 어릴 때는 산타 할아버지가 준 아니 사실은 부모님이 준비한 선물을 받았고, 결혼 초까지는 필요한 게 있거나 받고 싶은 게 있으면 아내와 난 이미 한, 두 달 전부터 서로 얘기를 했었다. 이렇게 서로가 선택한 선물을 받을 때만 해도 내가 무조건적으로 선물을 줘야 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선물을 준비하고, 준비한 선물을 받고서 좋아하는 아이들이 볼 때는 내가 받은 그 어떤 선물보다 기쁜 마음이 들던 날의 연속이었다. 두 아이 모두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다고 생각되던 어느 크리스마스에는 퇴근길 집 앞에서 산타 복장까지 갈아입고 집에 들어가 아이들을 놀라게 했던 일도 있었다. 그런 날 보며 아들은 기뻐서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당시 너무 어렸던 딸아이는 조금은 낯선 내 모습에 아내의 뒤에 숨어 한 참을 날 봤던 기억도 이젠 추억 속 화질 옅어진 동영상 같다.


2022년 잊혀가던 크리스마스가 다시 눈을 떴다


2020년 초에 몰아친 코로나로 사람들은 이 년간 12월의 겨울 속 설렘 가득한 따뜻한 하루의 기억을 잊고 살았다. 아주 오래전 추억으로만 곱씹으며 온기 가득한 그날의 온도를 느끼지 못하며 평소와 같은 하루로만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하지만 삼 년에 가까운 긴 터널 속에서 팬데믹에 가까운 혼란을 야기하던 코로나도 종식은 먼 얘기지만 사람들의 머릿속 처음의 그 두려움은 사라지고 점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올해도 12월이 되었다. 형형색색 밤거리를 비추는 조명도 작년, 재작년과는 사뭇 다르다. 아직까지는 거리 곳곳에 캐럴이 울리기는 시기상조로 생각되지만 긴 시간 고통받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줄 그 하루를 위해 12월의 온도는 조금씩 오르는 기분이다.


누구에게나 일 년 중 특별하게 기억되는 하루 정도는 존재한다. 어떤 의미의 하루일지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예외 없이 12월의 이 날 하루만큼은 이견 없이 모두가 행복을 기원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마음 한가득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날이다. 아이들이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부모의 마음속에서, 예쁜 조명을 배경으로 스마트폰 셀카를 찍는 연인들 얼굴에서, 오랜만에 모임을 갖고 연신 옛날 얘기로 추억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노년의 어르신들 웃음 속에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그 어떤 종교가 주는 의미나 신념보다 크리스마스 하루만큼은 상처받은 사람에게 위로를, 쉼 없이 달려온 모든 우리에게는 기쁨의 미소를 주는 하루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떤 자격도 따지지 않고 기뻐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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