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Jul 27. 2023

압구정역과 옥수역 사이에는 특별함이 있다

지하철 안내방송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남에게는 괜찮냐 안부도 묻고, 잘 자란 굿나잇 인사를 수도 없이 했지만 정작 제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거든요. 여러분들도 오늘 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너 정말 괜찮으냐' 안부를 물어주고, 따뜻한 굿나잇 인사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 밤도 굿나잇!


※출처 : SBS 『괜찮아 사랑이야』 中


 '나이 먹고 회사 옮기면 더 힘들지. 그냥 이직해서 어려워말고 다시 생각해 봐'

 '하하, 이사님! 마음 써주시는 건 감사한데 저 거기 옮기면서 연봉 앞자리 바뀌는데 여기서 맞춰줄 수 있을까요'


십 년을 다닌 회사를 나올 때의 마음은 정말 말 그대로 시원섭섭했다. 십 년을 몸과 마음 바쳐 사십 대에도 열정을 논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땐 정말 열정 가득 담아 일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결국 사업축소와 보직변경이었다. 정말 섭섭함이 컸었다. 퇴사를 앞두고 관리자와의 마지막 면담에서 난 시원하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었다. 회사에 대한 감정이었지만 결국 감정이 고스란히 관리자에게 전가된 것이다. 그 면담 이후 더 이상 내겐 추가 면담 요청도 없었고, 퇴사에 관련된 절차들은 순조롭게 마무리 됐다.


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새삼 느꼈다. 내 의욕과는 달리 하는 일은 제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았고, 높은 직급과 급여가 오히려 더 크게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업무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스스로의 자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릿속을 헤집었다.


나이가 들어서 이직한다는 어려움을 걱정했던 과거 관리자의 멘트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내내 답답했고, 제대로 처리가 안 되는 일들이 자꾸 쌓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조바심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사라졌다. 특히 많은 시간 고민하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많은 동료들의 배려로 내 인고의 기다림은 조금씩 성과를 내는 것 같았다.


오랜 기간 준비했고, 그 준비한 기간 동안 다른 동료들도 말 한마디와 행동으로 힘을 보탰다. 그렇게 큰 사업에 성과가 나는 듯 보였다. 수주하면 회사에도 많은 매출 이익뿐만 아니라 향후 기대효과 또한 무시 못할 큰 일이었다. 최종 사업자 선정까지는 불과 한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되는 일이었고, 임원들 포함 담당 영업까지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사소한 확인절차를 놓친 덕에 제출한 서류에 문제가 생겼다. 기술과 영업 제출 서류의 사업 담당자가 상이했다. 이 바람에 전체 80퍼센트에 달하는 기술점수 최고점을 받아놓고 회사는 세 글자 잘못 기입한 것 때문에 아깝게 사업을 가져오지 못했다. 치명적인 과실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잘못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체크 못한 나 스스로를 참고 견디기 어려웠다. 허탈하고, 속상한 마음에 서둘러 퇴근길에 나섰다.


평소 난 수서에서 지하철을 타고, 대화역 종점까지 이동하곤 한다. 열차 구간이 길다 보니 출발할 때 마음과는 다르게 양재나 고속터미널역을 지날 때쯤이면 쏟아지는 잠을 뿌리치기 힘들어 종종 깊은 잠에 빠져있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무거운 마음 때문인지 평소 쏟아지던 잠도 주변 사람들 얘기였다. 꽤 많은 역을 지나쳤음에도 졸음은 일도 없었다. 아마도 속상한 마음에 피곤하고, 고단한 몸도 스스로를 자책하고, 반성하는 듯싶었다.


'승객 여러분, 여러분 앞으로는 노을 진 한강이 보입니다. 잠시 보고 계신 스마트폰은 덮고 노을 진 한강뷰 잠깐이라도 감상하세요. 오늘 하루도 일상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시느라 고단 하셨을 텐데요.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 한층 가볍게 느껴지실 겁니다.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이니까요. 일주일간의 노고는 모두 가져가시고, 한 주 동안 힘든 일이 있으셨다면 모두 저희 지하철에 두고 기분 좋게 퇴근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하철 안내방송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열차는 막 동호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지하철 양쪽 창문으로 보이는 노을 진 하늘에 눈은 어느새 창밖을 쫓았고, 금세 정면에는 노을에 반짝이는 한강이 보였다. 눈시울이 뿌옇게 흐려지는 걸 느꼈다. 잠시지만 지하철 승무원의 안내 멘트가 너무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잘 듣지도 못했던 안내방송이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건넨 멘트로 그간의 상처를 위로받는 듯했다.


인생을 살면서 매 순간을 원하는 대로 이루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번번이 하는 일마다 실패하기도 하고, 운 좋게 기대하지 않던 일이 성공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노력한 만큼 모든 게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안 되는 일도 살다 보니 더러 생긴다. 이럴 때마다 번번이 자책하고, 주변 사람들을 책망하며 사는 건 생각만 해도 힘겹게 느껴진다.


옛말에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일이 운이 7할이 넘는다지만 이런 불합리함 속에서도 정상적인 이치 또한 3할이 행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즉, 자신이 애쓴다고 되는 일도 있지만 안 되는 일도 많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자성어다. 다만 전혀 없음이 아닌 30퍼센트가 넘는 건 이치에 닿고, 합리적으로 납득 가능한 일이다라는 말이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승승장구하며 뜻을 이루는 사람들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번번이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뜻이 닿으면 분명 행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일이 있다. 그러니 잘되지 않는 일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은 옳지 않다. 이건 운칠기삼에 운의 확률을 따라갔을 뿐이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열 번 성심을 다하여 행하면 세 번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 번은 그 끝이 통하지 않을까 한다. 실패를 두려워말고, 성공에 취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에게 유연성이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소한 선택에서도 그렇지만 극단적인 결과에서도 수용가능한 마음에 여유는 늘 필요해 보인다.


얼마 전부터 진행하는 중요한 인증이 있다. 회사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모두가 잘 안다. 부담은 필수적이지만 이런 부담 또한 이겨내야 제대로 된 성공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난 요즘은 내게 없던 '넉살'을 곧 잘 피운다.


 '대표님, 요즘 사직서 품고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이번에 잘 안되면 퇴사하겠습니다. 대표님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이전 05화 먹태깡도 학연지연 따져야 먹을 수 있다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