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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07. 2023

먹태깡도 학연지연 따져야 먹을 수 있다니

빽으로는 안 되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

기회에도 자격이 있는 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 빌딩 로비 하나 밟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는 줄 알아기본도 안된 놈이 빽 하나 믿고 에스컬레이터 타는 세상. 그런 세상인 것도 맞지. 그런데 난 아직 그런 세상 지지하지 않아.


-글 출처:  tvN 드라마 미생』 中에서-


'철수 씨, 아빠 사십구재 때 집에 가면 주말에 A네 집들이 함께 가야 되는데. 괜찮죠?'


시골 사는 아내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초대의 목적은 집들이였다. 늦은 나이 결혼이었지만 그래도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난지라 조금은 뜻밖의 초대였다. 날짜도 어떻게 우리가 처가에 가는 날 딱 맞춰서 잡힌 게 신기할 정도였다. 나중에 아내에게 얘길 들으니 원래 계획했던 날에서 아내와 함께 자릴 하기 위해 일부러 조정한 날짜라고 했다.


아내 친구는 결혼한 지 수년이 지났다. 새롭게 장만한 아파트덕에 늦게나마 이번 자리가 성사됐다. 아내 이외에도 다른 친구 부부, 잘 알고 지낸 언니 부부도 함께 초대됐다. 고향 친구와 과거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라 나와도 인연이 있었다.


처음엔 오랜만에 만남이라 조금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도 잠시였다.  함께 자리한 적이 많지도 않고, 얼굴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지만 아내 절친이어서 그런지 마치 내 친구들 만난 자리 같이 금세 편해졌다. 술이 아주 약간 도움은 됐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과거 추억여행이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한 것 같았다. 옛날 얘기에 시간 흐르는 줄 몰랐고,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이야기 꽃은 끊이지 않았다.


맛있는 식사와 즐거운 대화가 오가며 시간이 꽤나 흘렀다. 그래도 명세기 집들이라 집구경은 기본이지만 대놓고 보기가 그래서 앉은자리에서 여기저기에 시선을 뒀다. 주윌 둘러보던 난 식탁 위에 놓인 과자상자를 보며 아내 친구에게 물었다.


'OO 씨, 저 과자상자 정말 먹태깡 맞아요?'

'네, 맞죠. O심 대리점 하는 저희도 먹어 볼일 없는 바로 그 녀석이죠. 오늘 A 집들이 선물 삼아 들고 왔죠'


그렇게 얘기한 아내 친구부부는 그 지역에서 O심 대리점을 25년째 하고 있다. 최근 워낙 유명세의 과자라 실물 영접도 어려운데 역시 대리점 점주 친구는 다르다 싶었다. 아내 친구 말을 들어보니 대리점에서도 유명세 덕에 발주를 넣을 수 없을 지경이란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한, 두 박스씩 들어오는데 들어오면 달라는 데가 너무 많아 난리란다.  요즘은 몇 년간 연락 안 오던 친구들도 연락 와서 먹태깡 달라는 얘길 할 정도라니 정말 대단한 녀석이긴 한가보다.


친구 말이 자신도 맛본 게 한 번 밖에 없는 녀석을 집들이에 가져오려고 딱 챙겨놨단다. 역시 친구는 깊이 있게 제대로 사귀어야 한다. 몇 년에 한 번 봐도 몇 년 만에 연락온 친구와는 지낸 깊이가 다르지 싶다. 한 박스에 열여섯 봉지라 집들이하는 집주인에게 절반이 갔고, 나머지 여덟 봉지로 두 가족이 나눴다. 맛볼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데 집까지 가져갈 녀석들을 두 손에 받아 드니 뿌듯함에 더욱 신이 난다.


아마도 내가 받은 먹태깡은 원래는 지역에서 편의점이나 마트 하는 점주, 사장님들은 눈이 빠지게 기다린 녀석이지 싶다. 발주를 하고 발을 구르곤 있지만 정작 대리점에도 자주 오지 않는 녀석이니 보챈다고 결과가 바뀌지 않는걸 이젠 안단다. 그냥 주문 넣고 순번 기다리는 방법 말고는 없다는 것을. 오픈런도 아니고 대단한 인기다.


자주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한두 박스씩 오면 도대체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납품하냐고 물었다. 아내 친구 말이 박스째 넣긴 어렵고 뜯어서 몇 봉씩 나눠서 넣는다고 했다. 그것도 숫자가 많지 않으니 자신과 친분이 있거나 주고 싶은 영업점부터란다. 갑과 을이 무의미했다.


'공과 사는 구분한다'


자주 듣고,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공과사가 구분되어 정당하게 평가하고, 평가받는 일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중요한 일일수록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학연, 지연, 혈연. 쉽게 쳐내고 무시할 수 없는 연고주의를 대표하는 관계다.



 ※연고주의(緣故主義):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전통적 사회관계를 우선시하거나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을 가리키는 사회현상


스스로 나고, 자라는 사람은 없다. 어떤 지역에서 나고, 자랐으며, 어느 학교를 다녔냐는 것은 평생의 꼬리표처럼 달고 다닐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어떤 위치에 있냐에 따라 내가 누군가를 찾기도, 누군가가 날 찾기도 한다.


예전 처음 팀장 직책을 수행했던 회사에 같은 지역 선배가 있었다. 그는 영업팀이었고, 난 기술팀이었다. 처음 입사 때만 해도 그는 내게 후배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어울리지도 않게 가까운 척 살갑게 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같은 지방에서 자랐음을 강조하며 선배임을 자청했다. 정작 초중고를 따져봐도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음에도 굳이 지연으로 으며 친밀함을 강조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그가 정작 필요했던 건 '나' 개인이 아닌 내가 가진 직책이었다. 기술인력이 필요할 때마다 절차를 무시하며 선배 행세를 하려고 했고, 아쉬울 때마다 지연을 내세웠다. 번번이 그의 그런 태도 때문에 난 더욱 거리를 둬야만 했고, 오히려 그에겐 더욱 원칙을 따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도 뒤에서 날 싹수없는 후배쯤으로 욕하며 더 이상의 연고관계에 집착하지 못하게 됐다.


세상이 공평하다고 말하는 건 낭만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생각일까.


얼마 전 제안한 사업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결과가 나왔다. 너무도 극명하게 차이나는 평가위원들의 배점이 눈에 들어왔다. A, B위원은 100점을 줬고, C, D위원은 60점을 줬다고 치자. 이게 정상적인 결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무리 '호불호'가 있더라도 제안서 평가가 누구에겐 최고점을, 누구에겐 최저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연고주의, 다른 사적 관계 등으로 정당한 평가가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일이 이번 한 번 뿐도 아니고 따져보면 주변에 종종 생기는 일들이다. 하지만 낙담하는 사람들보다 불평등, 불공정 속에서도 형을 맞추기 위해 많이들 애를 쓴다. 주어진 현실을 탓하기만 하기에는 불평등, 불공정 속에서도 희망은 늘 존재해 왔다. 그래서 어제는 불만스러웠던 하루일지라도 내일은 공평하고, 공정한 날들로 채워지길 바라본다. 세상이 공평하고, 공정하게 지탱될 거라는 낭만을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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