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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08. 2023

삶은 딱 한 번이더라. 두 번은 아니야

어색하고, 낯선 상황도 언젠가 익숙해지는 날이 오게 돼있다.

"내가 살아보니까 삶은 딱 한 번이더라. 두 번은 아니야. 내가 진짜 무서운 건 하고 싶은데 못하는 상황이 오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상황인거지. 그래서 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 할 수 있을 때 망설이지 않으려고 끝까지 한번 해보려고."

-출처:  tvN 드라마 『나빌레라』 中에서-


 

여러 직장을 다니며 늘어난 건 커리어만이 아니다. 조심성과 조바심도 함께 늘었다. 타고난 성격인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서 돌다리도 두들겨보며 건넌다는 말이 새삼 몸으로 와닿는다. 안될 일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고,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늘 앞섰다. 


'도전'이라는 이름은 서른 즈음까지 해야 하는 일로 알고 살았다. 하지만 삼십 대 잦은 이직은 주변 사람들이 날 오해하게 만들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정도로. 정작 익숙한 일을 가장 편하고, 즐겼던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였다. 이직을 자주 했지만 이직 때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이 낯선 환경, 낯선 업무, 낯선 사람임을 숨긴 채 난 그렇게 늘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회사가 그렇진 않지만 결국 낯선 환경, 업무, 사람 중 모든 이직 결정의 결정적 사유는 '낯 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낯선 환경, 업무, 사람이 익숙해지면 무엇보다 이 익숙함을 지키려고 애쓴다. 무엇보다 익숙함을 즐기는 사람이 나이기에 난 여러모로 이중적 인간이었다. 새로운 업무를 마음으로 두려워하면서도 밀어내지 않았다. 새로 만난 사람들과도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지내곤 했다. 대부분의 새로운 일이 그렇듯 많은 것들이 어려운 경계에 있음에도 난 익숙함으로 가기 위해 불편함을 감내했다. 결국 외향과 내향의 경계에서도 이중적이고,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도 늘 이중적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요즘 난 지극히 그 경계에 있다. 그 경계는 '도전'과 '익숙함'이다. 십 년을 다닌 회사를 떠나 이직한 일과 그렇게 이직한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하는 건 내겐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이직한 곳은 긴 출퇴근 시간부터 경험하지 못한 업무까지 많은 게 새로웠다. 그만큼 내겐 큰 도전이었고, 늦은 나이를 감안하면 모험 같은 시작이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의 작은 좌절과 많은 위로가 있었다. 


"에이, 큰 기대가 없는데 무슨 긴장은. 이번에는 경험 삼아 도전한 거지"


회사 영업에 꼭 필요한 중요한 인증 업무를 맡았다. 긴장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긴 시간 준비해 온 일이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회사 내에 해당 업무를 했던 사람이 없었던 관계로 아무도 밟지 않았던 눈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벽에 막힌 기분이 들 때도 여러 차례였다. 답답해도 불평할 곳도, 사람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는 낯 선 불편함과 익숙한 설렘만은 늦은 나이 이직에 대한 명분이 되는 듯싶었다. 그럼에도 하는 일이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만큼은 떨쳐낼 수 없었다.  


그렇게 처음 도전한 인증에서는 보기 좋게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준비한 긴 시간에 반비례해 짧은 시간만에 결과가 나왔다. 아쉬웠지만 한 번의 실패가 가져다 준건 작은 좌절만이 아니었다. 그 실패의 경험은 내게 오히려 익숙함을 선물했다. 작성한 신청 문서의 부족함부터 대응할 수 있는 전략 그리고 예측 가능한 질문까지. 


이젠 만 이년을 다니며 어엿한 구성원이 됐다. 오히려 요즘은 이년이라는 시간이 내겐 익숙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예측이 가능한 업무 변화와 익숙한 사람들, 적당한 업무 강도 등이 이젠 내게 오히려 편안함을 준다. 경계해야 할 편안함을.


어떤 일을 실행할 때 주변 환경이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결과에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  변수가 많은 환경에서는 그만큼 고려해야 할 일이 많다. 많은 준비를 했다고 해도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하면 견디기 어려운 피로감은 몇 배가 될 수밖에 없다.   


'도전'을 즐기는 사람은 있어도, '실패'를 기뻐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실패가 없는 일은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승패가 있는 경기나 스포츠에서도 누군가 승리하면, 누군가는 패배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 승승장구하면 좋지만 승리가 익숙한 사람도 언젠가 패배를 맛볼 일이 생긴다. 


모든 일에 익숙함은 존재한다. 다만 익숙해지기 전까지 '낯 섬'은 짧든 길든 거쳐야 하는 절차다. 처음부터 익숙한 사람, 일, 환경은 없다. 다만 두려움 속에서도 낯선 것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애쓰는 누군가만 있을 뿐이다. 


익숙함은 편안함과는 다르다. 익숙함을 즐기는 것은 맞지만 그 익숙함에 너무 편안해하면 언젠가 닥쳐 올 낯선 일들에 더 큰 좌절이 올 수 있다. 그래서 그 익숙함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익숙함을 꾸준히 즐기기 위한 숙련과 노련함은 그냥 따라오는 것이 아니니까. 익숙함 속에서도 꾸준히 도전을 이어나가야 할 이유다.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결승에서 아픈 무릎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따내는 한 선수의 경기를 봤다. 보는 내내 마음을 졸였지만 결국 그 선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1세의 젊은 나이에도 그는 승리하는 법에 익숙해 보였다. 오히려 지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그녀의 경기는 노련했고, 이길 줄 아는 영리함이 돋보였다. 그녀의 부상 투혼도 감동이었지만 세계 랭킹 1위 만의 기세와 전략이 오히려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부상이라는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승리에 익숙해 보였다. 경기에서 승리라는 익숙함을 충분히 즐기는 듯했다. 익숙함을 즐기기 위해 꾸준히 도전할 그 선수가 앞으로도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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