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견디고 싶어 하는 것 같길래 그냥 두자 싶었지. 자네 생각이 더 중요하니까. 잘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아서 용하다 싶었지만 저 속이 오죽 썩어나고 있을까. 고생했어.
-글/이미지 출처: 『나의 아저씨』 中에서-
장인이 하늘나라로 가시고 열흘이 지났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올까 싶었지만 아내의 슬픔은 아직은 진행형이다. 당연히 자식으로서의 부모를 보낸 슬픔이 장례 절차가 끝났다고 털어지는 건 아니다. 이런 아내에게 필요한 건 시간임을 잘 알기에 늘 웃고 떠들던 우리 집안 공기도 조금은 무겁게 흘렀다. 그래도 일주일이 지났더니 그 무거운 공기도 조금은나아진 듯했다. 이틀 전부터 TV 보며 가끔 웃기도 하고, 대화도 가끔 한다. 물론 긴 대화는 아니었고, TV에게 보이던 웃음도 내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조금은 섭섭했지만 아내에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거라는 생각만 했을 뿐 그 이면은 알지 못했다. 아내가 얘길 하기 전까지.
오늘은 작정을 하고 거실 바닥에 몸을 붙이고 누워서 TV를 봤다. 밤까지 푹푹 찌는 더위에 며칠간 일이 많아서였는지 내 몸이 중력을 거스르지 못했다. 바닥에 누워 최대한 편한 자세로 한 손에 쥔 리모컨 버튼을 눌러가며 채널을 바꾸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채널 서핑은 TV를 보며 하는 행동이었기에 별 눈치 없이 리모컨을 반복해서 눌렀다. 조금 흥미 있어 보이는 채널을 찾으면 잠시간 머물지만 여전히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아내가 얘길 하기 전까지.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는 딸아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평상시와 같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일상을 찾는 듯 보였다. 큰 일을 치르고 마음 정리를 하려는지 집안일을 혼자 하던 아내였다. 하지만 오늘은 제자리를 찾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 설거지를 며칠 만에 할 수 있었다. 며칠 동안 아내가 자리를 내주지 않던 공간이었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가끔 말을 걸어왔다. 그냥 가벼운 질문들이었지만 이젠 마음이 안정이 돼 가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었다.아내가 얘길 하기 전까지.
'오늘 큰 집 아가씨에게 전화 왔어. 아버지 장례식장에 못 가서 미안하다고. 아빠랑 아가씨 빼고 처음이야. 난 시댁 식구들한테 할 만큼 한 거 같은데 시댁 식구들은 내가 아직 그냥 남인가 봐'
아내의 말에 아차 싶었다. 더워서 거실 바닥에 붙였던 등이 바닥 찬 기운 때문이 아니라 아내의 말 한마디에 서늘해졌다. 누워있던 몸도 자연스레 중력을 거슬러 몸을 일으켜 허리를 세웠다. 어떻게 아내를 위로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돌아서서 아내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경황이 없었지만 지난주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자책했다. 당연히 아버지에게 연락했으니 장인의 별세는 전달됐을 텐데 어디서 잘못된 걸까 답답했다. 연락을 주지 않으신 집안 어른들이 한순간 내게 미운털이 박힌 순간이었다. 당신들께서는 알 수 없었을 테지만 그날은 집안 어른들의 의문의 1패였다.
다음 날 저녁, 회사 직원들과 저녁자리를 함께 했다. 더운 날씨와 갈증에 맥주를 조금 마셨다. 식사 자리를 잠깐 벗어나 식당 앞 벤치에 앉았다. 자연스레 스마트폰을 꺼내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주 드리는 전화였지만 이번 주는 처음 거는 전화였다. 늘 하듯이 일상의 안부를 물었다. 별 일없이 잘 지낸다는 아버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잠시 숨을 고르고서 아버지께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아버지, 어제 영희가 많이 서운해했어요. 장인어른 돌아가셨는데 시댁에선 연락이 아무도 안 왔었다고요. 아버지 작은집에 전화하셨죠?'
바로 답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멈칫하는 느낌이 들었다. 전화기 너머로 작은 한숨뒤에 곤란해하는 아버지가 그려졌다. 잠시 뒤 아버지에게서 나온 답은 '내가 따로 연락 안 했다'는 말씀이셨다. 나이가 드시고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랬다고 하시면서 어쩔 줄 몰라하셨다. 한 편으로는 아버지가 여기저기 얘기 안 하신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작은집이나, 큰집에서 알고 연락을 안 했으면 그건 더욱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의 실수(?)가 다행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건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결과를 놓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위안을 삼을 수 있을 뿐이지 잘잘못에 대한 얘기와는 차이가 있었다. 아버지의 '잘못된 결정(?)'에 대해 얘기를 그만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난 답답하고, 서운한 마음에 아버지를 한번 더 몰아세웠다. 결국 아버지도 그런 내가 서운했는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얘기들로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그래 내가 나이가 먹으니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런 것도 맞는데. 나라고 나이 먹고 마음 편하게 사는 줄 아냐. 엄마 보내고 나도 혼자 지낸 지 벌써 4년이 되어가. 매일 외롭고, 지겨운 생활에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구나. 어디 오라는 곳도, 어디 갈 곳도 없으니 더 그래...'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모양이 됐다. 아버지에게 서운한 내 감정을 얘기하려다 오히려 아버지의 서운한 마음을 듣고 말았다. 자식 된 도리로 그런 말을 들으니 죄송스럽고, 무거운 마음은 쉬이 털어내지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의 얘길 들어주고, 마음을 이해한다며 위로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감정이 조금 정리되신 듯 느껴졌다.
아버지의 마음을 백 퍼센트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작은집을 배려한다고 하신 듯싶다. 혹시나 가지 못할 상황이나 알고서 못 갈까 봐 당신만 알고 나중에 얘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를 몰아세울 일이 아니었다. 경황이 없었다는 건 내게도 큰 핑계였다. 나이 드신 아버지에게 기댈게 아니라 직접 작은 집에 전화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아버지의 성향을 알고는 있었지만 확신까지 든다. 아마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어머니가 직접 연락을 돌리셨을 것이다. 아버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어머니셨으니.
아버지는 감정 정리가 되고 나신 후 아내에게 전화해 미안함을 전했고, 다행히 작은 집에서도 소식을 전해 듣고 아내에게 전화해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러고 난 며칠 뒤 아내는 조금씩 다시 일상을 찾아가는 듯싶다. 요즘은 가끔씩 웃기도 잘 웃고, 예전처럼 대화 시간도 길어졌다.
'시간이 약이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내에게 2023년 7월은 한 동안 아픈 기억만이 가장 크게 자리 잡아 남아있을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그리고 일 년, 이년이 지나면 그 상처도, 흉도 희미해져 옅어질 것이다. 그 기억의 끝자락에 아픔, 슬픔 등은 떼내고 사랑했던, 존중했던 아버지의 기억으로만 남겨질 것이다. 그런 시간이 오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