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Nov 07. 2023

이직 후 남의 팀과 잦은 술자리를 가진 이유

관계의 시작은 어색함 극복부터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주식회사 OOOO 개발팀으로 입사하게 된 홍길동입니다.

처음이라 미숙하고,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으로부터 받은 메일 내용의 일부다. 사회 첫발을 내딛는 초년생으로서 많이 긴장되고, 두려움이 컸겠지만 자신의 각오와 다짐을 담아 선배들에게 입사 인사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수신한 구성원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자신감 넘치고, 경우가 있어서 좋다는 의견의 반응이 그 하나고, 다른 반응은 무엇을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부류였다. 


회사에서 기존 구성원은 기득권 세력이다. 기득권 세력은 조직에서 박힌 돌이다. 첫 관계에서 기득권 세력은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가 흔치 않다. 따라서 아쉬운 게 굴러온 돌이니 치사하고, 아니 꼬아도 관계의 시작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난 예전 이직한 직장에서 재직 중인 회사직원들과 빨리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식사자리를 자주 함께 했던 적이 있다. 팀장으로 입사는 했지만 팀이 새롭게 세팅되는 부서여서 말이 팀이지 팀원 없는 허울뿐인 조직이었다. 조금 더 빨리 회사에 적응하고, 녹아들기 위해서는 내게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존 조직 팀원들과 빨리 친밀감을 형성하는 일이었다. 넉넉지도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타 팀 직원들에게 밥 사고, 커피사고, 가끔은 술도 샀다. 당시에는 '인싸'라는 신조어를 쓰진 않았지만 소위 얘기하는 '핵인싸'인 양 하루가 멀다 하고 약속을 잡았다. 나이, 직급들은 나보다 아래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경계하는 자세는 공통된 모습이었다.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말하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후배도 있고, 표정부터 불편함을 보이는 후배까지 다양했다. 짧게는 수개월부터 길게는 4,5년 이상 나보다 먼저 입사한 경력직들이었다. 대부분 박힌 돌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타 팀이라도 팀장급 직책의 사람이 호의를 베푸니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익숙지 않은 자리였지만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이런 특단의 조치 때문에 주머니는 가벼워졌고, 잦은 술약속으로 아내의 눈치를 한동안 봐야 했다. 하지만 내 노력은 만족할만한 결과로 보상됐다. 짧은 시간에 회사에 적응을 도와줄 조력자들을 만들었고, 몇몇은 추종자라고 할 정도의 관계로까지 깊어졌다. 백여 명이 넘는 직원 전부와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은 시간이 관건이지만, 짧은 시간 조직에 적응하고, 융화되는 건 몇 명의 동료면 충분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새롭게 관계를 만드는 것은 노력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모든 일이 그 시작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겠지만 관계형성에서 그 시작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그 첫 번째가 어색함, 불편함을 이겨낼 용기다. 처음 만난 사이끼리 편안해하고, 친밀감을 표하는 관계는 흔치 않다. 관계 형성에 가장 큰 첫 번째 난관이 바로 이 어색함과 불편함을 맞닥뜨렸을 때 얼마나 잘 극복해 나가냐 하는 것이다. 고객과 직원, 선배와 후배,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까지. 처음 만났을 때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함이 꼭 양방향은 아니다. 어색함과 불편함 극복을 위한 노력 또한 꼭 쌍방의 몫이 아니다. 어색함과 불편함을 못 견뎌하는 누구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도 이 관계형성의 시작은 무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두 번째는 먼저 손을 내밀수 있는 용기다. 관계형성의 그 처음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사람들 간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냥 목례정도만 하고 지나칠 수 있는 사이였음에도 내가 먼저 말을 건네고,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진전이 있는 관계로 발전할 것이다. 호감은 있는데 친해지지 못하는 관계도 일보 전진을 위해 먼저 손내밀 용기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다. 아쉬운 사람이 그 일을 먼저 시작한다는 뜻이다. 관계에서도 먼저 관계형성을 원하는 사람이 손을 내미는 게 순서지만 그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 먼저 손을 내밀 용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선택이자 기회다. 단지 그 시작과 실천이 힘들 뿐.

사회가 다양화, 전문화, 세분화, 개인화되어 감에 따라 포괄적 의미에서 사회적 관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최근 일인 가구의 비율이 늘고, '함께'보다는 혼자 놀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들이 다양해졌다. 이는 관계의 피로도가 높아진 현대인들이 개인 사생활 보호, 관계 간 거리두기 등을 선호하면서 생긴 사회적 기조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이런 자신만의 시간, 영역 등을 통하여 지친 심신을 회복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장기화되면 직장에서 지나친 개인주의로 협업이 어렵다. 또한 가족 간에 소통 부족으로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정작 대화를 시작해도 자기 얘기만 할 줄 알고 경청하는 방법을 잊은 반쪽짜리 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쪽 소통은 불통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은 관계적 존재이다. 관계를 통해서 성장하고, 관계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관계형성이 이루어지고, 학교를 다니며 교우 관계에서 사회성이 발전한다. 관계형성을 책에서 배우거나 사회성을 공부해서 익히는 경우는 없다. 모든 관계는 '필드(field)'에서 경험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하여 관계 형성의 스킬이 늘어나고, 자신의 성향도 파악된다. 


어떠한 관계든 시작이 있기 마련이다. 처음은 어색하고, 부끄럽더라도 한 번의 작은 용기만으로도 이미 둘 간의 관계는 이루어진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수도 있지만 한 번의 용기로 자신이 원하는 상대방 또는 조직과 첫 단추는 제대로 꿰어진 것이다. 이런 관계를 좋은 관계로 이어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관계에서 반을 형성한 것이니 작은 용기의 대가치고는 괜찮은 결과가 아닐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