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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14. 2023

칠십 개 선물을 택배로 받은 아들

모든 관계에 최선일 필요는 없지만 선택적 관계에선 최선이 필요하다

'도대체 이 선물들은 다 뭐야? 아들'


얼마 전 아들의 생일이었다. 생일 이삼일전부터 생일날까지 선물 택배는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 온 선물 몇 개는 언박싱해서 우리에게 누가 보냈는지, 선물이 뭔지 보여줬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택배로 오는 선물은 현관 거실에 고스란히 쌓이기 시작했다.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여서 시험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언박싱을 시험 이후로 미뤘다. 택배로 오는 선물은 하나, 둘씩 도착해 현관문 한쪽 옆에 쌓인 지 며칠째다. 


언뜻 보기에도 선물개수는 사십 개가 넘어 보였다. 나중에 아들에게 물어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확히 선물 받은 숫자가 칠십여 개라고 했다. 나도, 아내도 놀라움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이건 뭐 연예인이 선물 받은 것 같은 수준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작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 생일전날 카톡 서버가 있는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 장애가 꽤 오랜 시간 복구가 되지 않았었다. 그 사건으로 아들은 자신의 생일전날 이런 일이 생겼다고 어찌나 불만이 컸었는지 기억한다. 


당시 아들의 불만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지만 올해 선물 규모를 보니 아들이 화를 낼만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녀석 도대체 어떤 인관관계를 이어가면 이런 선물 공세를 받을까 궁금했다. 언뜻 보면 아들은 인싸 중에 핵인싸로 생각된다. 하지만 실상 아들은 전략적인 관계를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처음 학기가 시작해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처음 여러 날은 주로 친구들을 관찰하고, 모니터링한다고 했다. 관찰하고, 모니터링한 결과로 친해지고 싶은 친구와 적당한 관계로만 유지할 친구, 가까이 지내기 어려운 친구 등으로 분류한다고 했다. 꽤 전략적이고,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머릴 스쳤다.


그렇게 결론이 나면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겐 먼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적당한 관계로만 유지할 친구들은 그런 친구들이 먼저 다가오면 어느 정도 선에서 관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물론 그런 관계로 유지하다가 생각보다 뜻이 맞고, 통하는 관계면 한발 발전된 관계를 가져가기도 한다고 했다. 

아들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면 무척이나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어가는 관계들이 단순히 서로의 이익만을 쫓는 계산적 관계만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쌓인 선물만 보더라도 중학교 때 친구부터 지금 다니는 대학교 선배들까지 다양하다. 이는 한 번 맺었던 관계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이유가 있을 테고, 단순히 사람이 좋다고 수년을 이어질 수 있는 관계도 아니다. 


아들은 군대 가기 전 2년간의 대학생활을 지독히도 열심히 사는 것 같다. 학업, 교내활동, 대외활동에 주말이면 아르바이트까지 일주일, 한 달, 한 학기가 어느새 또 지나가 버렸다. 많은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까지 아들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모인 주변 사람들도 아들만의 룰이나 규정에 따라 관계를 맺거나 끊어낸다. 아들은 모든 관계에 최선일 수 없지만 인연이 돼 이어가는 관계에는 최선을 다하는 듯싶다. 자신의 성장 및 상대방의 배려까지 생각하는 아들의 관계에 대한 태도가 조금은 더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람들은 단순하기도, 때로는 복잡하기도 한 인간관계속에 살아간다. 우린 관계에서 자유로울 없고, 이런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스마트폰을 열어 휴대전화 번호 목록을 확인해 봤다. 'ㄱ'부터 시작하여 'ㅎ'까지 많은 사람들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가깝게는 가족부터 아예 연락조차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까지 빼곡히 채운 개인정보가 560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최근 30일 동안 자주 연락한 연락처 목록은 고작 십여 개에 불과하다. 


많은 연락처를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이미 우리도 전략적, 계산적 관계의 접근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얼굴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기억 저편에 있는 경우도 있다. 관계가 있었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관계 속에 있다고 오해한다. 자신의 연락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또는 몇 년에 한, 두 번 만나는 사이라도 마치 가까운 관계인 것처럼 자신만의 방법으로 관계를 이해하고, 정의한다. 하지만 모든 관계는 절대적일 수 없다.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간에 서로의 생각이 어디를 보고 있느냐에 따라 관계는 시작되고, 이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이 오해한 관계임에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서운해하고, 가깝지 않다 슬퍼하는 경우가 있다. 말 그대로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다. 관계는 양방향 소통이다. 

관계에 있어서 미스매치(mismatch)인 경우는 많다. 서로의 생각을 모두 공유하지 않는 이상 서로를 생각하는 관계의 깊이는 알 수 없다. 관계는 무게, 길이 등과 같이 정확한 수치로 표현되는 값이 아니다. 따라서 모든 관계에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자신이 꾸준히 이어가야 할 관계일 경우에는 상대방과 미스매치인 경우에도 그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말 그대로 관계를 이어감에도 관리가 필요하다.


은퇴한 사람 중에 외부 활동 없이 집에만 있는 분들을 종종 본다. 오랜 기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라고는 회사에서 함께 일한 직장 동료가 전부라고 그들은 말한다. '살다 보니', '일하다 보니' 등과 같이 공감은 되지만 안타까운 생각만 드는 자발적 격리로 관계에서는 모두 초보들이다. 대부분 새로운 관계를 불편해하고, 과거의 관계를 관리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어 정작 찾고 싶은 과거의 관계들을 찾으려고 해도 오랜 시간 지난 인연들을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다. 연락하기조차 힘들지만 정작 연락이 닿아도 상대방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보지 않고도 뻔한 그림이 그려진다. 평소 관계에 대한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모든 관계에 최선일 필요는 없지만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갈 생각이라면 선택된 관계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이 들어 혼자 늙어가는 것만큼 외롭고 슬퍼 보이는 노년은 없다. 새롭게 만드는 관계도 중요하지만 이미 맺어진 관계 또한 끊어짐 없이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가까운 관계부터 챙겨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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