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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21. 2023

한 달 만에 십억을 벌고, 일 년 만에...

가까운 관계라도 자신의 패를 모두 보여줄 필요는 없다

'당신이 뭔데 내게 충곱니까? 어쭙잖은 충고 말고, 댁이나 잘하세요. 네?'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서는 속내를 모두 보이는 일은 무척 어리석은 행동이다. 가까운 관계로 생각한 사이도 상대방의 생각을 전부 알 수는 없다. 가까이 두고 자주 보는 사이라도 내 마음을 모두 보여주지 않는 게 현명하다. 자칫 서로가 생각한 인간관계의 깊이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한쪽에서 모든 속내를 얘기하지만 다른 한쪽은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사이라고 하자. 이 경우 속을 보여준 당사자는 늘 서운함에 상처받을게 뻔하다. 반대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의 '패'는 꽁꽁 감춰놓은 채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지 않을 수도, 들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도 있다.


내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과거 여러 번 모임을 함께 하면서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가끔 어울려 식사도 하고, 가족들 간에 모임도 가졌다. 한 번은 가족 동반 모임에서 얘기를 하던 중에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그의 생각이 늘 마음에 걸렸던 난 편하게 내 생각을 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해서 한 얘기지만 그의 반응은 놀라웠다. 당신(따위가)이 뭔데 내게 그런 충고를 하냐는 식의 그의 반응에 난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그날 이후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불편했고, 그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화가 났다. 속 마음을 다 보인 것 같아 스스로를 자책했고, 관계를 오해한 실수로 그 순간을 만들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짧지 않은 인연으로 만남을 이어갔던 사이였지만 그 사건 이후 더 이상의 관계 유지는 없었다. 상처를 남기긴 했지만 내게도 한 가지 잊지 못할 교훈을 남겼다. 적당한 관계에서는 모든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싼 값을 치렀다는 생각은 들지만 돌아보면 그때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마음이다.


얼마 전에 과거 다녔던 직장의 후배를 만났다. 한 동안 연락을 못하고 지내다가 얼마 전 연락이 와서 자릴 함께 했다. 긴 시간 함께 회사를 다니진 않았지만 몇 년간 한 팀에 있으면서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을 함께한 전우 같은 후배였다. 서로 직장은 다르지만 얼마 전까지도 자주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던 가까운 관계였다.


함께 식사를 하며 술잔이 여러 차례 비워졌다. 과거로 이어졌던 인연이라 고생하며 함께 일했던 시절의 이야기로 시간이 채워졌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연락되지 않던 짧지 않은 기간 휴직하며 지냈던 후배의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졌다.


휴직한 이유와 지금의 건강상태(휴직 사유가 병가였던 것으로 기억해서), 휴직기간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등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화 도중 예전 후배 소식을 들었을 때 한달살이로 해외에 나갔다는 다른 후배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직장인 주머니가 뻔한데 얼마나 잘 계획 있게 살면 제주도도 아닌 해외에 긴 시간을 나가 즐길 수 있는 건지 물어봤다. 돌아온 후배의 대답은 너무도 놀랍고, 부러운 이야기였다. 아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소설, 드라마 속 이야기 같았다.


 '선배 이제 와서 얘기지만 저 꽤 큰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해외여행도 다녔어요.'


후배의 이야기의 요점은 이랬다. 갖고 있던 돈으로 코인을 시작했다가 거의 모든 돈을 다 까먹고, 본전 생각에 꽤 큰돈을 대출해 다시 코인에 넣었다고 했다. 당시 본인이 무엇에 씌었는지 아니면 정말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다 내려놓았던 건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그 '미친 짓(?)' 한 방으로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 됐고, 평생 만져보지 못할 큰돈을 코인 수익으로 냈다는 것이다.

후배는 그 돈으로 최근 제법 핫하다는 지역에 아파트를 한채 사고, 고가의 외제차까지 구입했다. 물론 그렇게 쓰고도 돈이 남아서 가족들과 해외여행도 자주 다녔고, 해외 한달살이도 했다고 말했다. 평소 해보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일들을 마치 인생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기듯이 해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행복한 시간은 끝이 났고, 후배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현실 앞에 다시 섰다. 그렇게 후배는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급여를 받으며 직장을 다녀야 하는 현실 삶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걱정이 됐을 것이다.


일 년 가까운 시간에 거의(?) 모든 돈을 다 썼다는 후배는 걱정을 안고서 회사로 복직했다. 그날 모임을 하면서도 난 여러 차례 후배의 말을 믿었다, 불신했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현실에서 그것도 내 가까운 사람이 이런 일을 경험했다는 게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속에서는 부러움과 아쉬움이 파도를 쳤다. 속에 하고 싶은 말들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속 얘기는 후배와의 건설적 관계를 위해 글로만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돈 쓰기 전에 연락해야지. 다 쓰고 나서 옛날 얘기하듯이 그냥 넘기려고 하지 마'

 '앞으로 자주 봐야지. 볼 때마다 저녁은 네가 사라'


살면서 일확천금의 꿈을 꿔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가끔 꿈자리가 괜찮으면 어김없이 복권방에서 있지도 않은 운을 시험하곤 한다. 한 번을 제대로 된 적이 없지만 그래도 복권 결과 발표전까지는 터지지도 않은 '잭팟'을 미리 쓸 궁리부터 하곤 했다. 대출부터 갚고, 부모, 형제들에게 일부 주고 나머지로는 하고 싶은 일 모두 해봐야지 하고 마음먹곤 했다. 써보지도 않은 버킷리스트를 그제야 머릿속에 쓰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모두 돈 드는 일이니 그 순간에나 써봤지만 떠오르는 생각이 궁상맞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이 생각난다.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도 신기한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가까운 후배라니 부럽다 못해 살짝 '울컥' 올라오는 뭔가가 느껴졌다. 잠깐이지만 배가 아플 뻔했다. 나에게 없는 행운이 찾아든 후배가 부러운 건 현실이니까.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아주 조금은 부러움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마음 들키지 않으려면 앞으로 만날 때마다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후배와 가까운 사이라도 굳이 내가 가진 모든 '패'를 까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지 싶다. 좋은 관계를 앞으로도 유지하려면 말이다.


얼마 전 그 후배의 생일이었다. 평소에도 생일이면 간단하게 카카오를 통해 선물을 주고받던 사이라 카카오 톡을 열었다. 몇 년 전부터 주고받던 선물함을 뒤져봤다. 뭘 선물하지 잠깐 망설여진다. 돈이 많아 아쉬운 게 없는 후배에게 어떤 선물이 어울릴지 조금은 걱정이다. 아쉬운 게 없더라도 내 마음만은 고맙게 생각할 후배라고 생각하고 평소같이 선물을 골라서 톡 선물을 보냈다. 이내 후배에게 회신이 왔다.


'아이참~ 뭐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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