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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28. 2023

내 등에 칼 꽂은 인간을 다시 만나는 이유

사랑의 상처는 새로운 사랑으로, 관계의 상처는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게 답

 '최 선배, 잘 지냈어요? 이게 몇 년만이야'


그는 얼마 전까지 내게 악연이었다. 몇 년 전 누가 물어보면 '내 등에 칼 꽂고 간 X 인간'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하지만 더 이상 그에게 그런 표현과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와 다시 연락을 하게 됐고, 가끔은 볼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참으로 인간 관계란게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내 속에 있는 나조차도.

 


절대 상종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과거 악연과의 만남...


승승장구까진 아니었어도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위아래 구분 없이 좋아하는 동료들도 많았던 시기였다. 한 회사에만 쭉 재직했던 다른 동료들에 비해 다양한 제품들과 기술들을 경험하고 이직한 회사이다 보니 업무적 시각도, 생각도 조금은 달랐다.


난 무엇보다 기술과 영업의 경계에서 유연한 사고가 장점이었다. 그래서인지 기술은 절대 영업과 친해질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깨고 영업직원들과 유독 가까이 지냈었다. 기술적인 이슈가 있으면 알아서 함께 외근을 가고, 때로는 영업 대신 홀로 고객을 만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술자리를 해도 먼저 피하는 일이 없었고, 기쁜 일, 슬픈 일을 겪으며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직장에서 만난 관계가 지속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말 그대로 숫자가 사업부의 평가 지표이다 보니 매출이 나오지 않게 되자 영업직원들도, 우리 팀원들도 삐걱대기 시작했다. 사소한 의견 차이에 대립각을 세웠고, 예민하게 굴기 시작했다. 좋았을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서먹해지고, 분위기는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를 믿고 의지했고, 그 또한 나를 신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협의되지 않은 고객사 지원을 협조가 아닌 일방적 요청으로 부서 팀원에게 통보했다. 그것도 연말 연휴를 하루 앞둔 전날 저녁에. 게다가 그 팀원은 연휴와 붙여 휴가까지 낸 상태라 곤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난 원칙대로 협조요청해 달라고 정식으로 따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쩔 수 없었다'라는 회피성 회신뿐이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에게 조금은 감정 섞인 문자를 보내고서는 그 사건은 일단락이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정작 사건은 다음날부터 불 번지듯이 더 시끄럽게 퍼져갔다. 당시 본부장의 요청으로 결국 인사위원회까지 열리게 됐고, 경위서 몇 장만을 쓰고서는 내겐 변론할 기회조차 없었다. 결국 팀해체와 소속 팀원 전체의 타 부서 전배로 징계가 결정되고서 사건은 종결됐다. 억울한 마음에 몇 번을 인사팀장을 찾아가고 나서야 왜 변론의 기회가 없었는지 알게 됐다.


사건 당일 화가 나서 그에게 보낸 문자가 결국 화근이 됐고, 본부장의 과장된 '립 서비스(?)'로 예전부터 난 무책임한 관리자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 징계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그렇게 믿었던 그가 내가 보낸 문자를 본부장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절대 그런 일 없었다'는 말로 자신의 잘못을 부정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회사를 떠났고,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 23년, 돌아보면 가장 가슴 뛰고, 뜨거웠던 시기였었다. 이직 후 회사 내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생각에 참으로 열심히 일했다. 동료들도 좋았고, 힘들긴 해도 늘 즐거웠던 몇 년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새롭게 받은 일도, 옮겨간 조직도 힘이 들었고, 힘에 부쳤다. 그렇게 한동안은 그를 미워했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그 후로 그의 소식을 가끔씩 접했지만 그냥 몰랐던 사람인 것처럼 무시하려고 애썼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고, 사건에 대한 감정도 어느덧 까맣게 잊혀 갔다. 그럴 즈음 난 새로운 곳으로 회사를 옮겼다. 그렇게 옮겨온 곳에서 난 오랜만에 다시 재미나게 일하게 됐고, 열심히 한 만큼 또 성과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회사 사업의 확장으로 보안제품을 함께 제안해야 할 일이 생겼고, 여러 제품들을 비교하며 제품을 선정했다. 여러 제품을 선별 중에 그와 연락이 닿았고, 우린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됐다. 만나기 전만 해도 불편한 마음이 조금 있었지만 만나서는 언제 그런 감정이 있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그와 옛날을 추억했다. 그 후로도 그는 과거의 일을 미안하게 생각했고, 자신의 선에서 도울 수 있는 업무적 배려를 최대한 내게 지원했다.

더 이상 보지 말아야 할 악연으로 선을 그었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그는 이제 가끔 연락해서 '얼굴 한번 봐야지'하며 너스레를 떠는 사이로 가까워졌다. 아직까지 당시 감정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손 내미는 그가 싫지는 않다. 사람 감정이란 게 이렇게 간사한가 싶기도 하지만 그땐 그도 '살아가려니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정도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게 지금의 내 마음도 편할 듯싶고, 당시 내게도 위로가 될 테니.


사람 관계에 정답은 없다. 어제만 해도 인상 쓰며 이를 갈던 사이였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다. 내 가족을 죽이거나,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지은 철천지 원수가 아닌 이상 헤어져도 언젠가 다시 보는 게 인연이다.


불교에서는 옷깃정도 스치는 짧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는 500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인생에 있어서 자신과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같은 직장에서 일, 이년을 근무한 동료, 학교에서 3년을 공부한 친구, 몇 달을 사귄 연인이라도 긴 시간을 돌아 만난 인연이라고 생각하면 그 관계 또한 가볍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 1겁(劫)은 1,000년에 한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로 큰 바위에 구멍을 내거나 100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치맛자락에 바위가 닳아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  - 나무위키 中에서-


살다 보면 가볍게 다툰 언쟁이 커져 감정싸움이 되고, 오해가 오해를 부르는 일들이 생길 수 있다. 실제 오해가 아닌 누구의 실수, 잘못이라도 한 순간의 선택이 부른 참사라면 그 또한 시간이 가면 이해가 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모든 일이 사람에서 시작하고, 이런 일들이 관계로부터 발전된다.


어제의 적도, 오늘의 동지도 결국은 나와 누군가가 만들어낸 관계에서 비롯된다. 악연 때문에 갈았던 마음의 칼이 결국 자신을 향하고 있을 수도, 아니면 이미 자신을 상처 내고 있을 수도 있다. 관계 때문에 다친 상처로 다른 관계를 갖지 못하는 사람으로 지낼 수도 있다. 사랑의 상처는 또 다른 사랑으로 덮어야 한다는 말처럼 관계에서 온 상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거나, 기존 관계에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 또한 그런 시간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훨씬 편안해진 마음을 보니 어느새 회복한 관계가 도움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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