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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05. 2023

게으름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이제 회복해 갑니다

게으름과 나태함이 불러오는 관계의 오류

난 능동적이고, 에너지가 있어 보인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소위 말하는 MBTI에서 'E'형인 외향적 성격이다.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더욱 그렇게 생각들을 많이 한다. 먼저 보면 인사하고, '안물안궁'의 마음일 텐데 자주 안부를 묻는다.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식사하자'라고 말하는 건 기본 습관처럼 되어있으니 '외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누가 시킨 적도 없고, 가르쳐 준 적도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 정도였고, 이런 일이 습관처럼 몸에 뵌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함께 일하는 사이끼리 불편하거나 어색함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일부러 먼저 인사하고, 가까운 척하고, 밥이라도 한 번 먹어야 조금은 어색함을 지울 수 있어서 이런 행동들을 해왔다. 사실 이렇게 행동하는 패턴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 재직 중인 회사 대표와 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다. 대표님도 외향적인 성향이 아니고, 함께 동석한 관리자나 동료들도 대표이사 앞이라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꿀 먹은 벙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고,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색하고, 불편함은 더 커져갔다.


이런 분위기 자체를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밥 먹는 내내 그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려고 꽤나 입을 놀렸다. 마침 자리도 대표님 맞은편이어서 오히려 침묵하는 순간 주변 동료들의 독려 어린 간절한 눈빛이 따갑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는 오히려 함께 간 관리자가 김 부장은 '말을 많이 해서 심심할 틈이 없다'는 칭찬(?)을 할 정도였다. 다행히 식사 자리는 무사히 끝났고, 동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들 불편하고, 어색할 자리에서 그래도 내 덕에 본인들이 어색할 일이 없었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이렇게 나를 '일'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표면적으로 나타난 나를 본다. 적당히 수다스럽고, 사람들을 잘 챙기고, 능동적이라고. 하지만 난 수년 전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는 스스로가 피곤해졌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님 갱년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한동안은 부쩍 회식자리에 가서도 자주 입을 닫았고, 차 한잔, 밥 한 끼 먹자는 사람들의 제안도 다른 핑계를 대고 피하기 시작했다. 이게 단순히 일시적인 증상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이런 귀찮음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일이 업무에도 영향을 미칠까 조금은 걱정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난 이런 연결고리들을 귀찮아했고, 피곤해했었다. 이게 단순히 업무적인 관계에서뿐만이 아니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인간관계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이런 나태함으로 관계가 예전만 못해졌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말이다. 당시 바뀐 업무로 부서가 변경된 지 2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주로 외부 고객지원이나 업체들을 만나는 부서에 있다가 개발조직으로 부서가 변경될 때부터 걱정했던 일이었다. 19년 업무 스타일에 대한 변화로 인해 생존을 위해 끓어 올렸던 표면상 외향적 성격의 내가 사라지거나 위축될 것을 무척이나 걱정했었다. 그러나 걱정했었던 게 현실이 될지는 몰랐다. 그것도 스스로의 게으름과 나태함이 이런 관계를 끊어나가는데 일조하고 있으니 스스로에게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요즘 말로 '손절'에 들어간 것도 아니면서, 스스로 가지치기 정도가 아닌 나무를 베고 있었으니 말이다.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든 연결이 필요하다. 이게 정말 끈끈한 연결고리로 맺어진 관계이든, 아니면 같은 목적을 갖고 함께하는 관계이든. 꾸준하지 않더라도 그 연결이 끊어지지 않게 잘 매듭 져야 한다. 나이가 들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부지런하던 사람도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으니 종종 '게으름'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드는 시기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으름이란 게 삶에 도움 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관계에서도 독이 되면 '독'이 됐지 '득'이 되진 않는다


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계에 있어서 귀찮음과 나태함이 일상처럼 익숙해져 있었다. 이 핑계, 저 이유로 사람과의 연결을 스스로 쳐냈었다. 당시 난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냈던 시기였다. 자칫했으면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 길고 길었던 게으름의 터널을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던 행동은 이직이라는 결과를 맞았다. 결국 내겐 이직이라는 환경의 변화가 게으름 탈출의 솔루션이었다.


그렇게 2년 전 이직을 하고 난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동안 연락이 소원했던 모임도 연결고리를 이어가려고 한다. 꾸준히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연락해 그 관계의 끈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물론 사람과의 관계는 단방향일 수가 없다. 항상 쌍방이 필요에 의해서 관계가 이어져 나가고, 이런 관계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면 꾸준히 서로 간에 노력이 필요하다. 박수도 마주하는 손바닥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이 혼자 아무리 허공을 휘둘러 봤자 시원한 소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게 50대 50으로 정확한 균형을 맞추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절한 비율의 균형은 이루어야 관계도 꾸준히 이어질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한다. 나이 들면 사회적 활동 영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협소해진 활동 영역 때문이라도 기존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구축해 놓은 인간관계의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나태함이나 게으름은 치명적일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관계에 대한 자만을 버리고, 조금은 부지런을 떨어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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