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급등한 조회수에도 기쁘지 않았던 이유

창작자 서로가 상대방을 대할 때 예의와 책임이 필요합니다

by 추억바라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나의 내면을 밖으로 꺼내기 위한 결심이 필요했던 조용한 시도였다. 내게 글쓰기는 감정의 알맹이를 어루만지고, 조심스레 꺼낸 문장들을 세상 밖으로 내어 놓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줄, 두 줄 써 내려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페이지 수가 늘고, 어느덧 완성된 글을 브런치에 발행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날도 비슷했다. 긴 글을 썼고, 분위기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무료 공유 이미지 사이트 몇 곳을 뒤적였다. 가끔은 글보다 그 한 장의 그림을 찾는 일이 더 오래 걸리곤 했다. 말과 이미지의 결을 맞추는 건, 내겐 일종의 정서적 페어링이다. 그날 선택한 그림은 색감이 부드럽고, 오래된 추억처럼 강렬함 없이 묘하게 감정을 끌어올리는 파스텔톤의 이미지였다. ‘이거다’ 싶었다. 사진을 내려받아 메인 이미지로 올리고, 작성한 글을 발행했다.


글 발행 후 몇 시간이 지나서 일이 터졌다.


조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놀라긴 했지만 가끔 있던 일이라 조회수 급증의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포털 메인에 글이 실렸고, 카카오 스토리와 안드로이드용 구글 뉴스, 심지어 브런치 인기 글 상단에도 내 글이 걸렸다. 낯선 독자들의 구독 요청, 좋아요, 응원의 댓글이 밀려들었다. 창작자로서 더 바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내가 꺼낸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있다는 실감은, 그 어떤 지표보다 강하게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들뜬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늘어나는 조회 수로 들뜬 기분에 찬물을 끼얹었다. 글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사용하신 이미지는 제가 출간한 책에 사용한 이미지입니다. 지금 무단 도용하신 겁니다. 책임을 물을 수 있으니 그림은 당장 내리시기 바랍니다.'

눈앞이 멍해졌다. ‘무단 도용’이라는 단어가 글자 그대로 '땅'하고 내 머릿속을 울렸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는 잘 알려진 공유 사이트였고, 사용 조건은 분명히 ‘상업적 이용 가능 / 출처 표기 불필요’였다. 나는 다시 그 사이트로 돌아가 그림의 출처를 찾았다. 그리고 확실히 내가 이해했던 문장 그대로 적혀 있음을 확인했다.

'이 이미지는 저작자가 자유롭게 공유한 콘텐츠로, 상업적 이용 및 수정이 가능합니다. 출처 표기 없이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문제는 내가 그림을 무단으로 도용한 것이 아니라, '무단도용'을 주장한 작가가 저작권 개념을 오해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출간한 책에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지에 대한 독점 사용 권한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해당 이미지를 독점 계약한 것도 아니었고, 원작자가 그림 사용을 허용한 플랫폼에서 나 또한 정당한 조건 하에 사용한 것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답글을 달았다.
'해당 이미지는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무료 이미지로, 원작자가 별도의 조건 없이 배포한 것입니다. 귀하가 주장하는 도용은 저작권법상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며, 오히려 원작자와의 정식 계약이 없다면, 책에 사용하신 것도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활용 범위에 해당됩니다. 필요하시다면 원작자에게 직접 문의해 보시길 권합니다.'

내 댓글이 달린 이후, 그 사람은 아무 대답 없이 자신의 글을 지웠다. 그 어떤 사과도, 설명도 없이 자신의 흔적만을 지우고 사라졌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저작권이라는 단어는 종종 '힘'처럼 휘두르거나, 휘둘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도치 않은 오해로 누군가의 창작물에 도장을 찍으려 하거나, 감정적으로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이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창작은 말처럼 그리 간단하고 명료한 일이 아니다. 하나의 창작물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고, 감정을 고르고, 표현을 가다듬는다. 때로는 전체적인 글보다 이미지 하나, 문장 하나에 더 큰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창작자들은 저작권 앞에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짜 자기 것인지, 누군가의 것인지, 혹은 모두의 것인지.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또 애쓴다. 그래서 창작은 기쁨이면서 쉼 없는 고통이지 싶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이미지를 고를 때마다 습관적으로 두 번, 세 번 확인한다. 단지 법적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창작자의 노동과 의도를 존중하기 위해서다. 그와 동시에, 저작권은 누군가의 감정이 아닌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사건으로 난 저작권이란 단어가 단순히 ‘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법적 도구가 아니라, 창작물을 대하는 태도와 배려가 기반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창작물을 사용할 때 우린 종종 무엇이 가능한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만 따지느라 정작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노력에는 무심해지곤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용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지 싶다. 그림 하나가 나에게 알려준 건 창작자 서로가 상대방을 대할 때 필요한 예의와 책임이지 않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