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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Oct 28. 2019

노안을 대하는 자세

반갑지 않은 녀석의 초대

붐비는 퇴근 지하철 안,  난 오늘도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사람들 사이로 보려고 폈던 책과 내 눈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책의 글씨가 어른 거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에게 온 달갑지 않은 녀석 이야기다. "노안"

직업병이라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리도 더디 오기를 빌었던 그 녀석이 온 것이다.


  불과 2~3년 전부터 들여다보는 노트북 글씨가 어른거리는 증상에서 시작해, 스마트폰 글씨 그리고 최근엔 그 좋아하는 책 글씨까지.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다닐 일은 흔치 않았던 출퇴근길이었지만, 사무실 이전으로 이런 행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매일이 지옥철에 갇혀 안 그래도 원망스러운 내 작은 몸뚱이가 더 아쉬울 때가 많아져 버렸다.  


  흔들리는 전동차 안에서 팔다리라도 길었으면 손잡이라도 잡았을 텐데, 종종 중간에 덩그러니 놓여 사람들에게 앞뒤로 꾸욱 눌려 손은 고사하고 온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버리기 일쑤다.  오죽하면 지하철 안에서는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런 지옥철을 타다 보니 책을 든 손은 뻗을 수 없게 되고, 당연히 책은 코앞까지 다가올 때가 많다.  코 앞에 당겨놓은 책은 안경 너머로는 도저히 글씨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고, 한 몸이어야 하는 글자는 어느 순간 분신을 해서 눈을 어지럽힐 때가 많아졌다.  


  처음엔 사람들 사이로 책을  펴고 보려다 글씨가 어른 거리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는데, 놀란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안경을 살짝 올려 안경 아래로 책을 봤더니 글씨가 잘 보였다.

  노안,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서글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나의 눈 상태에 조금은 헛웃음이 나왔다.


  '내 몸도 이리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이 익숙해진 것 같더니, 지하철을 타서 이렇게 안경을 벗어야 하는 일이 생기니 조금은 더 서글픈 감정을 느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눈은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 나를 도와 부지런을 떠는 신체 기관 중에 하나였다. 

  46년을 썼으니 녀석도 늙는 건 당연한 건가 싶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예고라는 게 있지 난 맘에 준비도 안되었는데 이렇게 '' 들어와 버리면 어찌해야 하나 하는 허망함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직업을 탓해야 하나?' 아님 이제부터라도 이 녀석을 위해서 '눈에 좋은 무언가를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출, 퇴근길에 책 글씨가 잘 안 보이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오랫동안 괴롭히고, 많이 썼으니 당연히 힘들고, 지칠 때가 되었어.'


 그래도 조금은 인정하기 싫은 기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세월이 비껴가거나 거꾸로 가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이리 흘러가는 세월에 순응하고,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걸 새삼 느끼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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