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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Nov 19. 2019

몸이 내게 준 세 번의 기회

건강하려면 운동하셔야죠!

내 나이 마흔여섯, 꾸준히는 아니어도 몸 관리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쓰고 있는 평범한 중년이다. 일주일에 3회 이상 운동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운동은 집 주변 피트니스 센터를 장기로 끊고, 새벽 5시 30분 기상해서 운동을 다닌다.

  나에게 새벽 운동을 있게 한 사연은 지금부터 10년 전 무릎을 다치면서부터이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다니던 회사에 농구, 마라톤 동아리가 있어서 젊은 혈기와 농구에 대한 사랑으로 두 동아리 모두 활동해서 나름 날렵한 몸매와 탄탄하고, 지구력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30대 초중반에 이직 이후로는 운동을 할 시간도, 여력도 별로 없어서 운동을 하지 않고 스스로 몸을 망쳤다. 그러다 온 무릎 통증. 병원을 찾고서야 상태의 심각성을 알았고, 병명은 무릎 연골 연화증. 대학병원과 관절전문 병원 두 곳에서 수술을 권유했고, 결국 무릎 연골의 70%를 염증이라는 놈이 녹여놔서 걷어내야만 했다.  


"젊으시니 꾸준히 무릎은 근력 운동하셔야 합니다. 통증이 심하면 인공관절 같은 시술을 받으셔야 해요."


수술 후 의사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고, 나에겐 생존을 위해서는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동기 부여를 제공해 주었다. 무릎이 어느 정도 회복된 다음부터 집 주변 자치센터에서 새벽 운동을 다녔다. 꾸준히 5~6년 운동했더니, 콜레스테롤 수치, 지방간 등 원래 조금씩 높거나, 있었던 질환들도 모두 낮아지고, 없어진 보너스도 받았다.  

  그러다 지금 사는 고양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이사를 온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운동을 다니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하루 유약한 몸으로 내 몸을 만들던 어느 날 나에겐 4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여러 가지 병이 차례로 왔고, 내 몸을 계속 쓰려면 꾸준히 갈고닦아야 함을 깨닫게 된 사건들이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나의 직장 생활은 개인적으로 시련의 시기였다. 상사와의 불화에 보직 해임에, 팀까지 박살 나는 과정에서 육체와 정신은 피폐해졌고, 이 시기에는 그냥 회사를 다니지 말까 고민할 정도로 의미 없는 날들과 힘겨운 날들의 반복이었다. 17년 11월 어느 날, 그런 사정을 몸이 먼저 알고, 갈고닦은 걸 잊어버린 내 몸에 적신호를 보냈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약속이 있어서 저녁을 먹고, 이른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던 중 상복부에 심한 통증이 왔고, 호흡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반복되었다. 급하게 타고 있던 지하철을 내려 내 생애 두 번째 긴급 전화 버튼을 눌러 119 응급 호출을 하였다. 까무륵해지는 기억에서도 구급대원들이 반가웠고, 조금 안심이 되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러다 이 세상과 종지부를 찍고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극심한 통증에서도 할 일은 해야 했기에 아내에게 전화하고, 구급대원에게 어디로 가는지 아내에게 설명해 주라고 부탁했다(부탁이었나 싶긴 하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응급실에 대기 중에 검사 진행을 했고, 검사 결과를 확인 후 병원 측에서는 '급성 췌장염'이라고 했다. 의사는 일단 3~4일 입원하면서, 금식해야 한다고 했다.


 4일 동안 물과 음식을 일체 먹질 못해서 자연스레 강제 다이어트가 진행되었고, 4일 동안 몸무게는 4~5Kg 정도 감량된 듯했다. 그때 당시 몸무게가 61Kg 정도까지 줄면서, 안 먹으면 정말 많이 주는 걸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의사는 금주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나의 금주 생활은 약 4개월 정도는 지켜졌던 것 같다. 하지만 급성 췌장염은 말 그대로 급성이었고, 그땐 더 안 좋은 상황이 계속 진행되는 줄 몰랐었다.


 같은 해 10월, 회사에서 산행을 다녀온 후 발목 상태가 이상했지만, 그냥 괜찮을 거라고 미련을 썼던 게 더 큰 화근을 불렀다. 발목이 계속 붓고, 가까운 병원을 찾아 부은 곳 물을 빼주고 나면 며칠 괜찮다가 또 붓고를 반복하였다. 결국 대형 관절병원에 가서 MRI를 찍고서야 상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의사 말이 인대 2곳이 파열되었고, 더 심각한 것은 발목에 염증이 심각해서 긴급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참고 회사를 다녔는지 그것도 신기하다.) 또 한 번 찾아온 시련에 좌절했고, 운동을 하지 않고 보내온 내 40대를 뼈저리게 후회했다.


 검사 다음 날 긴급하게 수술을 했고, 수술은 1차 염증 제거 수술 후 4일 경과 후 발목 인대 파열 접합 수술까지 2차에 걸쳐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경과는 좋았지만 부위도 부위이고, 내 몸도 어느덧 40대 중반이라 회복은 더디게 이루어졌고, 수술 후 정상(?)적인 도보가 가능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 경각심이 들법한데, 난 어느새 그 수술이 준 교훈을 잊어버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핑계로...

그러던 17년 초여름,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동네 동호회 중에 탁구가 있어서 탁구 동호회를 들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 함께한 동호회 분들과의 교감은 쉽지 않았고, 내 몸 또한 예전만 못했다. 의욕에 앞선 나머지 무리를 했는지, 엘보우가 고장이 나고 말았다. 테니스 엘보우 염좌 판정을 받고, 또 한 번 수술대 위에 누웠다. 수술 이후 염증 수치가 문제가 되어 3개월 가까이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검사, 치료를 받으러 다닌 듯하다. 


 긴 염증 치료 끝에 초여름에 시작한 치료는 초겨울이 되어서야 끝났고, 이번에야 말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으로 생각해 겨울이 지나고부터 새벽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바뀐 햇수로 4년, 긴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새벽 기상이 그리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내 나이 40대 중반에 몰아친 병환들이 내게 말한다.


'당신은 운동하지 않으면 금방 다 고장 날 몸이야. 그러니 오래 쓰려면 열심히 운동해~!'

지금까지도 관절 염증 질환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다만 가끔씩 오는 관절 통증들에 난 민감해 할 수밖에 없고, 이젠 고장 나면 잘 고쳐지지 않는 나이가 되었음에 슬프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얼까? 지금까지 경험해 본 바로는 꾸준히 운동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몸도 알고, 나도 안다.


'어떻게 그렇게 이른 시간에 운동을 다녀요? 일어나기 힘들지 않아요?'라고 리스펙까진 아니더라도, 놀란 눈으로 묻곤 한다. 그럼 난 속으로 그들에게 답한다.

"그냥 살려고요, 걸어 다니며 살려면 운동해야 해요."라고.

  이리 얘기하면서도 급성 췌장염 진단한 의사 선생님 말은 죽으라고 안 듣는다. 술 먹지 말라는 말, 정말 끊기 어려운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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