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변호사(6)

심판

by 추억바라기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312호 형사 합의부 법정. 오전 10시의 법정 안은 건조했다. 목재 책상에서 나는 니스 냄새와 먼지 냄새, 그리고 수천 장의 소송 기록이 뿜어내는 묵은 종이 냄새까지 조용하다 못해 차가운 법정의 침묵을 돕는 듯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조기의 기계음만이 차가운 법정의 정적을 깨웠다.

방청석은 한산했다. 앞쪽 줄에는 재민과 민수, 그리고 며칠 전 구조된 민수의 동생 민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민수는 긴장했는지 깍지 낀 손을 쉴 새 없이 꼼지락거렸다. 재민은 말없이 민수의 어깨를 툭 쳤다. 피고인석에는 수의를 입은 박 사장과 덩치들이 앉아 있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납치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박 사장의 어깨는 구부정했고, 눈빛은 초점을 잃은 채 계속해서 방청석 뒤쪽 출입문만을 힐끔거렸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처럼 보였고, 연신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사건번호 2025 고합 4821. 피고인 박철민 외 2명에 대한 선고 공판을 개시합니다."

재판장의 목소리는 감정이 섞이지 않고 차분하게 법정을 울렸고, 그 울림 때문인지 목소리는 한층 더 서늘하게 들렸다. 서기의 타자 치는 소리만이 서늘한 법정 내부에서 '탁-탁-' 리듬을 타는 것 같았다. 재판장은 두꺼운 판결문을 한 장 넘기고 안경을 고쳐 썼다.

"피고인 박철민은 미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하며 연 3,000%에 달하는 살인적인 이자를 수취하였고, 그 과정에서 조직적인 폭력과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특히 채무자의 미성년자 동생을 납치, 감금하여 채무 변제를 강요한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재판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피고인석을 내려다보았다.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며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피해자들과 합의에 이르지도 못했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을 사회에서 장기간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박 사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주문. 피고인 박철민을 징역 7년에 처한다. 압수된 범죄 수익금 5억 2천만 원은 전액 몰수하며, 피해자 장민수에게 편취한 5,200만 원을 배상할 것을 명한다."

탕, 탕, 탕. 판사봉 소리가 법정을 울렸다.

"아니… 판사님! 7년이라뇨! 말도 안 됩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박 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교도관들이 즉시 그의 양팔을 제압했다.

"억울해? 야! 변호사! 김 변호사 어디 갔어! 회사에서 나 빼준다고 했잖아!" 박 사장은 방청석을 향해 악을 썼다. 하지만 방청석에는 낯선 노인 몇 명과 재민 일행뿐이었다. 조직은 그를 완벽하게 버렸다. 꼬리 자르기였다.

박 사장이 질질 끌려나가며 재민과 눈이 마주쳤다. "너-, … 네가 나 엿 먹인 거지? 형량 거래 해준다며! 다 불면 살려준다며!" 재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입모양만으로 짧게 말했다. '그러게, 줄 잘 서라고 했잖아.' 박 사장의 절규가 닫히는 문 뒤로 사라졌다. 법정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형… 끝난 거예요?" 민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끝났어. 7년이면 민지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며 자리 잡을 때까지 세상 구경 못 할 거야. 저 녀석들. 물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우리가 완벽하게 해냈네."

그제야 민수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옆에 있던 민지가 오빠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남매는 소리 없이 울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라기보다, 긴 악몽에서 깨어난 생존에 대한 안도감에 가까웠다. 이젠 더는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사무쳤기 때문이었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 밖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겨울 햇살이 창문을 통해 길게 들어오고 있었다. 재민은 긴장이 풀려 목을 좌우로 꺾으며 뻐근함을 풀었다. 그때, 복도 구석의 자판기 불빛이 어른거리는 휴게 공간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한 손에 다 구겨진 종이컵을 쥔 채였다. 회색 캐시미어 코트에 행커치프까지 꽂은, 법원 복도와는 이질적인 세련된 차림의 중년 남성. 그는 박 사장이 끌려간 구치감 쪽을 무심하게 바라보더니, 천천히 재민 쪽으로 걸어왔다.

재민은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태산' 시절 숱하게 봐왔던 부류였다.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타인의 인생을 난도질하는 진짜 나쁜 놈들. 남자는 재민 앞에서 멈춰 섰다. 고급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안경을 추어올리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최재민 변호사님. 오랜만입니다." 재민의 미간이 좁혀졌다.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저를 아십니까?" "알죠. 태산의 에이스셨잖습니까. 1년 전 그 사건으로 나가신 뒤로 소식이 묘연하더니… 이런 곳에서 재능 기부를 하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남자의 시선이 민수와 민지를 훑었다. 진열대에 놓인 싸구려 상품의 흠집을 찾아내듯, 단순히 물건을 보는 것 같은 차가운 시선이었다. 민수가 본능적으로 동생을 등 뒤로 숨겼다.

"누구십니까. 박철민이 보낸 사람입니까?" 재민의 목소리는 감정이 증발해 버린 듯, 물기 하나 없이 건조했다. 남자는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박철민? 아, 방금 7년 받은 그 친구 말입니까? 에이, 급이 다르죠. 저는 그저… 청소를 좀 하러 왔습니다. 너무 시끄럽게 구는 똥파리가 있어서." 남자는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재민의 양복 주머니에 꽂아주었다. "박철민이가 입이 좀 가볍더군요. 장부를 넘겼다던데. 덕분에 우리가 좀 귀찮게 됐어요. 사업장 몇 개를 옮겨야 해서."

"……너희들이구나. 일진 파이낸스 뒷배." 재민의 손이 주먹으로 말려 들어갔다. 쌍칼파, 아니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자금줄. 박 사장이 '윗선'이라고 불렀던 실체가 눈앞에 있었다.

"칭찬해 드리러 왔습니다. 변호사님 덕분에 썩은 환부를 잘 도려냈거든요. 박철민이는 언제 쳐내나 고민 중이었는데, 손 안 대고 코 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는 재민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근데, 여기 까집니다. 너무 깊이 들어오진 마세요. 이번엔 꼬리 하나로 끝났지만, 다음엔 변호사님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지하철에서 노숙자들 돕는 거, 보기 좋잖아요? 거기까지만 하세요."

남자는 대답도 듣지 않고 민수 일행을 지나쳐 걸어갔다.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복도를 울렸다. 재민은 주머니에 꽂힌 명함을 꺼내 보았다.

'JS 홀딩스 이사 강동철' 아무런 로고도, 주소도 없이 이름과 직함만 박힌 하얀 명함. 재민은 명함을 구겨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끝난 게 아니었다. 박 사장은 그저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놈들은 재민이 무엇을 했는지, 민수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재민의 입가에는 묘한 오기가 서렸다. '도망 안 가. 이 새끼들아.'

"형? 누구예요? 아는 사람이에요?" 민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재민은 표정을 싹 바꾸고 씩 웃었다. "아니, 그냥 옛날에 알던 사람. 별거 아냐. 야, 배 안 고프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재민은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떠들며 민수의 등을 떠밀었다. 지금은 민수 남매에게 불안감을 줘서도 안되고, 또 이 승리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법원 앞 허름한 순대국밥집. 점심시간이 지나 식당은 한산했다. 뚝배기 세 그릇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많이 먹어라. 민지 너도. 이거 먹고 힘내서 공부해야지." 재민이 깍두기 접시를 밀어주며 말했다. 민지는 수줍게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민수는 밥을 말아 한입 가득 넣고 우물거렸다.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얼어붙었던 속을 녹였다.

"형, 저… 내일 내려가요."

"고향으로?"

"네. 엄마 요양병원도 그쪽으로 옮기기로 했어요. 민지도 거기서 학교 다니는 게 좋을 것 같고요. 서울은… 당분간 좀 지긋지긋할 것 같아요." 민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잘 생각했다. 거기가 공기도 좋고, 사람들도 덜 빡빡하겠지. 가서 뭐 하게?"

"작은 가구 공장에 일자리 구했어요. 월급은 적지만 기술 배우면 나중에 제 가게도 차릴 수 있대요. 땀 흘려서 버는 돈이니까, 떳떳하잖아요."

재민은 숟가락을 멈추고 민수를 바라보았다. 처음 지하철역에서 봤을 때, 죽음의 문턱에서 비틀거리던 청년은 이제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 땅을 딛고 서려는 단단한 가장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 그거면 됐다."

"형님은요? 이제 다시 로펌 가시나요? 아까 그 사람도 로펌 사람 같던데." 재민은 국밥 국물을 들이켜고 입가를 닦았다.

"아니. 안 돌아가."

"왜요? 형님 실력이면 오라는 데 많을 텐데."

"체질에 안 맞아. 에어컨 바람 쐬면서 서류 만지는 거보다, 지하철 먼지 마시면서 사람 냄새 맡는 게 더 낫더라. 그리고…." 재민은 주머니 속 구겨진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할 일이 좀 남았거든. 청소를 하다 말아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거리, 버스 정류장 앞. 헤어질 시간이었다. "가보겠습니다, 형님.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민수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민지도 배꼽 인사를 했다.

"감사는 무슨. 네가 용기 낸 덕분이지. 가서 잘 살아. 밥 굶지 말고."

"형님도 건강하세요. 나중에 성공해서 꼭 다시 올게요. 그때는 제가 제일 비싼 소고기 사드릴게요."

"오냐. 이자까지 쳐서 받을 거니까 돈 많이 벌어놔라."

버스가 도착했다. 남매가 버스에 올랐다. 민수는 창가에 앉아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재민도 손을 들어 화답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지자, 재민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시원섭섭함. 변호사가 의뢰인을 떠나보낼 때 느끼는 가장 익숙하고도 낯선 감정.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채워진 느낌이었다. 1년 전, 지하철 선로 위에서 잃어버렸던 누군가의 생명을, 이번에는 지켜냈다는 안도감이었다.

재민은 코트 깃을 여미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자 익숙한 소음이 그를 반겼다. 개찰구를 통과하는 기계음, 사람들의 발소리, 쇠바퀴가 레일을 긁는 날카로운 마찰음. 재민은 승강장 의자에 앉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아까 그 남자가 준 명함을 꺼냈다.

'JS 홀딩스 이사 강동철'

재민은 명함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반으로 찢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잘게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청소? 누가 누굴 청소하는지 보자고."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박 사장을 잡은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민수 같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공장, 그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놈들과의 싸움은 이제 막 막이 올랐을 뿐이었다.

'띵- 띵-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내 방송과 함께 거센 바람이 승강장으로 밀려 들어왔다. 사람들은 몸을 움츠렸지만, 재민은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때, 저만치 구석 자판기 앞에서 낡은 점퍼를 입은 한 노인이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손에는 꼬깃꼬깃한 서류 봉투를 쥐고, 초조한 듯 입술을 물어뜯고 있는 노인. 그 눈빛은 얼마 전의 민수와 닮아 있었다. 절박함, 그리고 누군가 내밀어줄 손길을 기다리는 간절함.

재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설임은 없었다. 그는 자판기로 다가가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 뽑았다. 그리고 뚜벅뚜벅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

"어르신." 노인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재민은 캔커피를 건네며, 낡은 가죽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냈다. 잉크가 번지고 모서리가 닳았지만, 그 어떤 로고보다 선명한 이름이 박힌 명함이었다.

'거리의 변호사 최재민'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좀 봐드려도 될까요?" 재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열차 문이 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소란스러운 인파 속에서, 재민은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어둠은 여전히 짙었지만, 그는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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