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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셨어요?

수육 한 점, 굴김치면… 김장은 가족의 따뜻한 행사

by 추억바라기

"와-! 드디어 끝났다. 에고 삭신이야."


지난 21일, 올해도 2026년 한 해 우리 집 밥상을 책임질 김장을 마쳤다. 겨울을 앞두고 치르는 일종의 연말 의식 같은 행사.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마다 처가 식구들이 모두 모여 한 해의 마지막 큰일을 함께한다. 힘든 노동이지만 종일 추위 속에서 고군분투한 뒤 먹는 갓 담근 김치와 따끈한 수육은 그 어떤 보양식보다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결혼하고 쭈욱 처가에서 김치를 가져다 먹다 보니 김장에 참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면서 처가 식구들 중 단연코 우리 집 김치 소비가 가장 많다. 돈도, 몸도 더 많이 써야 하는 나지만 과거 난 매번 회사일을 핑계로, 애들 핑계로 아내만 처가로 보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장인어른의 부재와 아내의 권유로 김장행사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김장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20년 넘게 매년 이 일을 묵묵히 해온 장모님과 아내, 처가 식구들을 떠올리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고생했네. 내년에도 오게.'

장모님의 한 마디가 그간 이런저런 핑계로 아내만 보낸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그래서 올해 우리 집은 딸만 빼고 10월 전역한 아들까지 모두 총 출동했다. 분주한 손길, 연신 웃음이 새어 나오는 부엌, 오랜 시간 푹 삶은 수육의 향, 굴김치의 톡 쏘는 신선함이 뒤섞인 그 공간은 그 자체로도 축제였다. 집으로 보낼 김치 택배 박스를 싸면서 20Kg 3박스의 무게가 더욱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단순히 60Kg이 아닌 20년 넘게 누적된 장모님의 마음과 손맛, 가족의 시간이 축적된 무게였다


한국사람이면 모든 사람이 김치를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배추김치 형태의 김치 보급은 실제 조선후기(17세기 이후) 고추의 보급이 이루어지면서 본격화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실제 붉은 고춧가루를 사용해 먹는 김치 문화는 200년이 조금 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김치문화가 공동체, 계절에 맞는 저장 관습으로 발전하여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등재 명칭: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으로 등재되기까지 하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2025년 소비자 김장 의향 및 주요 채소류 공급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4인가족 평균 김장 배추량은 18.3 포기로 조사됐고, 실제 김장을 직접 할 의향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68.7%에 달한다. 물론 나머지 30여 퍼센트의 사람도 대부분 상품김치를 구매하거나, 지인으로부터 구매, 나눔 받는 형태로 김치를 조달한다. 대한민국은 결코 밥상에 김치를 빼고서는 구성이 어려워 보이는 게 현실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4인가족 기준 김장(20 포기 기준) 비용은 약 21만 3천 원이다. 비싸다면 부담이 되는 비용일 수 있어도 1년 동안 김치는 있는 그대로, 혹은 두고두고 먹으며 온갖 요리에 활용할 수 있으니 따지고 보면 오히려 경제적인 셈이다.

요즘 김치를 못 먹는다는 아이들을 종종 접한다. 가까운 곳만 봐도 그런 아이들이 있다. 물론 김치는 음식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난 김치가 일반적인 음식과는 다른 문화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단순한 음식이 아닌 가족 구성원이 모여서 김장을 하는 공동체 문화로, 뿔뿔이 흩어져서 지내다가 김장이라는 이유로 모든 가족이 모여서 조금은 고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족의 문화이지 않을까.

'요즘 김치 공장에서 잘 만들어져서 나오잖아요. 많이 먹지도 않는데 필요할 때마다 사 먹으면 되죠.'

가까운 후배 중에서도 김장이라는 문화에 특별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MZ들은 많다. 김장은 당연히 나이 드신 부모님 세대의 문화이고, 굳이 함께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들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모두들 부모님의 손맛을 찾곤 한다. 나도 그랬고, 가까운 분들 중에서도 부모님 생전에 모르던 맛들을 돌아가시고 나면 그리워하곤 하는 사람이 많다. 정말 있을 때 잘해야지 계시지 않고는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고, 맛이다.


"여보, 언제가 될진 몰라도 장모님이 김장 못한다고 해도 우린 김장 처가에서 해요. 처형, 처남 모두 모여서 절인 배추를 사서라도 김장날 모여서 같이 김장하고, 수육에 금방 해놓은 김치 찢어서 먹으며 가족행사하는데 의의를 두는 게 좋잖아요."

매년 돌아오는 김장철이면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우리는 결국 또다시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 고된 몸짓 하나하나에 우리 가족의 안부가 스며들고, 오가는 대화 속에 깊은 정이 깃들기 때문이다. 아마 내년에도, 그리고 먼 훗날에도 이 '힘든 일'을 멈추지 않을 듯하다. 이것은 일 년 치 식량을 준비하는 일을 넘어, 흩어진 마음들을 한데 모아 다시 '우리'라는 이름으로 엮어내는 소중한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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