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절망의 시작
서울의 겨울은 빌딩 숲 사이를 파고드는 칼바람으로 매서웠지만, 지하철 플랫폼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수백, 수천 개의 폐가 뱉어내는 날숨과 덥고 눅눅한 열기, 사람들의 옷깃에서 피어오르는 먼지 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체온이 뒤엉켜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퇴근 시간이 막 시작된 저녁 6시 10분. 신도림역 플랫폼은 이미 인간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피로에 절은 얼굴로 검은 코트 깃을 세운 직장인, 핸드백 끈이 끊어질 듯 꽉 움켜쥔 중년 여성,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하듯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숙인 학생들. 저마다의 사연을 등 뒤에 짊어진 채 하나의 거대한 군중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이었다. 누구도 마주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오직 도착할 열차와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만이 그들이 응시하는 세계의 전부였다.
재민은 그 빽빽한 인파의 틈바구니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기둥 뒤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그는 사냥꾼처럼, 혹은 관찰자처럼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과거, 법정이라는 사각의 링 위에서 그는 사람을 읽어내는 전문가였다. 의뢰인의 떨리는 눈꺼풀, 상대 변호사의 과장된 제스처, 판사의 미간 주름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말과 표정의 간극에 숨겨진 1센티미터의 허점, 그것을 파고들어 철저하게 부서 버리는 것이 그의 일이었고 승리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재민이 읽어내려는 것은 승소의 열쇠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놓아버린 죽음의 징후를 찾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민은 이 답답한 지하철역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1년 전, 그에게 변호사 배지를 떼어내게 만들었던 비극의 장소이자,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각인된 현장. 선로 위로 몸을 던지던 한 남자의 뒷모습은 여전히 밤마다 악몽이 되어 재민의 목을 졸랐다. 그날 이후 재민은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자신이 눈을 돌리는 순간,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남자처럼 검은 터널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름도, 직업도, 사회적 지위도 모두 잊은 채 유령처럼 이곳을 떠돌았다. 마치 이곳을 지키는 것만이 남은 생에 부여된 유일한 속죄의 방식인 것처럼.
그때였다. 무채색으로 흐릿하게 번지던 재민의 시야 한구석에, 묘하게 거슬리는 그림자 하나가 들어왔다.
플랫폼 가장 끝 안전문 스크린도어의 불빛이 닿지 않는 어스름한 곳.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앳된 청년 하나가 위태롭게 서 있었다. 세상의 모든 빛을 차단당한 듯 퀭하게 꺼져버린 눈빛, 계절에 맞지 않는 얇은 점퍼, 손잡이가 닳아버린 낡은 가방. 무엇보다 청년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재민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다. 그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생의 끝자락에 선 사람 특유의 모든 걸 놓아버린 위태로움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재민의 본능이 경고음을 울렸다. ‘위험하다.’
청년의 발끝이 미세하게 선로 쪽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스마트폰 불빛에 코를 박고 있어 그 누구도 청년의 작은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오직 재민만이 그 위태로운 무게중심의 이동을 읽어냈다.
[띵- 띵- 띵-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퇴근 시간 지쳐있는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플랫폼 내 안내 방송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터널 깊은 곳에서부터 어둠을 밀어내며 달려오는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 고막을 긁는 쇳소리, 그리고 열차가 밀어내는 거대한 바람이 플랫폼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청년의 등을 누가 떠미는 듯 보였다.
청년의 상체가 스르르 마치 끈이 끊어진 인형처럼 앞으로 기울어졌다.
“이봐, 학생!”
재민의 목에서 터져 나온 고함은 열차의 굉음에 묻혀버렸다. 청년은 재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아니, 이미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차단한 것 같았다. 그의 무릎이 꺾이는 순간, 재민은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폐가 찢어질 듯한 짧은 호흡. 발목이 비틀리는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재민은 전력으로 내달려 허공으로 몸을 던지려던 청년의 허리춤을 낚아챘다. 멈추지 않은 속도 때문에 둘의 몸은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으아악!”
두 사람은 엉겨 붙은 채 차가운 타일 바닥 위를 뒹굴었다. 콰아아 앙-! 불과 0.5초 차이였다. 수백 톤의 쇳덩어리가 그들이 서 있던 공간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스치며 멈춰 섰다. 열차 바퀴와 선로가 마찰하며 일으킨 불꽃 튀는 소음이 재민의 귓가를 때렸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정적은 짧았고, 곧이어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세상에, 방금 뛰어내리려고 한 거야?”
“저거 봐, 미쳤나 봐!”
놀란 사람들의 비명과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걱정스러운 눈빛보다는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더 많았다. 몇몇은 혀를 차며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를 그들에게 들이댔다. 타인의 불행이 실시간으로 전시되는 잔인한 순간이었다.
재민의 품에 깔린 청년이 짐승처럼 거칠게 몸부림쳤다.
“이거 놔! 놓으라고요! 제발 그냥 끝내게 해 줘요!”
“가만히 있어! 진정해!”
재민은 발버둥 치는 청년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내리눌러 제압했다. 청년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직 살 수 있어. 왜 포기하려고 해!”
“뭐가 남았다고요? 다 끝났어요. 나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요!”
청년의 절규가 플랫폼의 소음을 뚫고 재민의 가슴에 박혔다. 재민은 있는 힘껏 청년을 끌어안았다. 앙상하게 마른 청년의 등뼈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죽을 용기로 살면 되잖아. 넌 아직 젊어. 기회가 있다고!”
하지만 청년은 더욱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쉬어 있었다.
“젊으면요? 젊으면 뭐가 달라져요? 빚만 수천만 원에, 당장 갈 곳도 없는데. 내일도, 모레도 지옥일 텐데! 차라리 지금 여기서 끝내는 게 나한테는 구원이라고요!”
순간, 재민의 머릿속에서 잊으려 애썼던 기억의 파편이 튀어 올랐다.
‘억울합니다. 변호사님,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2년 전, 법정 복도에서 재민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부짖던 남자의 목소리. 패소 판결을 받고 1년 뒤, 차가운 선로 위에서 생을 마감했던 그 남자의 마지막 눈빛이 눈앞의 청년과 겹쳐 보였다.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구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다시금 재민의 심장을 짓이겼다.
‘아니, 이번엔 달라.’
재민은 이를 악물었다. 입 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곧이어 역무원들과 철도 경찰이 호각을 불며 달려왔다. 상황은 빠르게 수습되었다. 축 늘어진 청년은 역무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 위로 끌려가듯 사라졌다. 재민은 먼지투성이가 된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웅성거리며 찍어둔 영상을 돌려보거나 SNS에 올리느라 분주했다. 누군가 죽을 뻔했던 순간조차 그들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재민의 귀에는 그 소음들이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청년이 마지막으로 내보였던 텅 빈 눈동자만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검은 눈동자. 하지만 그 깊은 곳에는 ‘제발 나 좀 살려달라’는 처절한 구조 신호가 숨겨져 있었다. 재민은 알 수 있었다. 1년 전 그 남자가 보냈던 신호를 놓쳤던 그였기에 이번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저 아이를 그냥 두면, 결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거야.’
잠시 뒤 반대편 플랫폼으로 또 다른 열차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일상의 거대한 톱니바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민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의 흙을 털어내며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청년의 뒷모습을 좇아 시선을 옮겼다.
재민은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고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변호는 법정이 아닌 거리에서, 법전이 아닌 마음으로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끝까지 책임져야만 했다. 그것만이 그가 스스로에게 내린 판결을 집행하는 유일한 길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