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변호사(2)

어둠 속에도 빛이

by 추억바라기

철커덩. 무겁게 내려앉은 역무원실의 철문 소리가 좁은 공간을 울렸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청년의 어깨는 마치 부러진 날개처럼 한껏 움츠러들어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허공을 헤매고 있었고, 앙상한 무릎 위에 올려진 손끝은 제멋대로 덜덜 떨렸다. 쇳소리가 섞인 거친 숨소리가 그의 흉곽을 불규칙하게 흔들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문을 박차고 선로를 향해 내달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재민은 그와 조금 떨어진 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말없이 청년을 주시했다. 역무원과 경찰이 번갈아 가며 청년의 상태를 살폈고, 사고 경위서를 작성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학생, 이름이 뭐야?"

"……."

"사는 곳은? 신분증 좀 보여줄 수 있을까?"

하지만 청년은 입을 굳게 다문 채로 멍한 시선만 그들을 응시하며 있었다. 질문이 귓가에 닿기도 전에 허공으로 흩어지는 듯했다.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스스로를 투명한 감옥 안에 가둬버린 것 같았다.

결국 참다못한 역무원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요, 학생. 보호자나 가족 연락처 없어요? 지금 이 상태로는 혼자 못 보내요. 보호자가 와서 인계를 받아야 귀가 조치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청년은 들고 있던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정수리만 보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경찰이 어깨를 툭 치며 다시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거운 침묵뿐이었다. 마치 입을 여는 순간 억눌러왔던 비명이 터져 나올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재민은 잠시 갈등했다. 이대로 경찰에게 맡기고 돌아서야 할까. 아니면…. 1년 전, 그 남자의 뒷모습이 다시금 재민의 뇌리를 스쳤다. 그때 자신이 무관심하게 스쳐지나지만 않았다면, 아니 법정에서 진실을 보려고 노력했다면 그 사람은 지금 살아 있을까.

잠깐의 생각이었지만 재민은 이미 결심이 선 표정이었다. 재민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역무원과 경찰의 시선이 동시에 재민에게 꽂혔다. 의아함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혹시… 보호자분이십니까?"

재민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전 그냥… 목격자입니다. 조금 전 플랫폼에서 이 친구를 붙잡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 상태가 너무 불안해 보여서, 혼자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럽니다."

경찰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재민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재민의 깔끔한 외모와 선한 인상,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옷매무새, 그리고 무엇보다 흔들림 없는 눈빛에서 묘한 신뢰감을 느낀 듯했다. 허투루 말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경찰은 조금 표정을 편하게 풀고서 되물었다.

"…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만약 돌려보냈다가 또 사고라도 나면 선생님도 곤란해집니다."

"네. 책임지겠습니다."

그 대답에는 재민 스스로도 놀랄 만큼 무거움과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약속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거는 최면과도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역무원실을 나와 어둠이 내려앉은 역사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달아올랐던 숨을 식히려는 듯 차가운 밤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희미해진 가로등 불빛이 힘없이 걷는 청년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청년의 걸음걸이는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고, 재민은 그가 언제든 다시 도로로 뛰어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어 걸음 뒤에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걸었다. 시선은 한순간도 떼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묵묵히 청년을 뒤를 따랐다.

얼마나 걸었을까. 인적이 드문 골목 어귀에 다다랐을 때, 청년이 멈춰 섰다. 그리고 등 뒤를 향해 툭 내뱉듯 물었다.

"왜 저를 붙잡았어요?"

악을 쓰느라 목이 잠긴 듯 쇳소리가 섞인 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재민은 그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누군가는 붙잡아야 했으니까."

"그냥 두지… 왜 굳이…."

청년이 천천히 몸을 돌려 재민을 마주 봤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상해있었다. 눈물 자국과 먼지로 얼룩진 뺨, 터진 입술.

"죽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내가 선택한 건데, 왜 아저씨가 방해해요?"

재민은 청년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죽고 싶어서 그런 거 알아. 하지만… 네 눈에는 죽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살고 싶다는 마음도 보였어. 희미하지만 간절하게."

청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라기보단 차라리 울음을 참는 표정에 더 가까웠다.

"살고 싶다고요? 제가?"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여러 차례 쳤다.

"아저씨가 뭘 알아요? 제 눈에 뭐가 보였는 줄 아세요? 매일같이 날아오는 빨간색 빚 독촉장이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울리는 전화벨 소리, 현관문을 부술 듯 두드리는 대부업체 건달들. 그거 피해서 숨죽이고 사는 게 어떤 건지 아냐고요!"

청년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억눌렸던 댐이 터지듯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는 심장병으로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고, 아빠란 사람은 빚만 남기고 도망갔어요. 동생은 학교 가는 걸 무서워해요. 교문 앞에 그 덩치들이 서 있을까 봐…. 근데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요? 남은 건 빚더미뿐인데! 차라리… 차라리 내가 죽어서 보험금이라도 나오는 게 가족들한테는 더 도움이 된다고요!"

결국 청년은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삶이라는 거대한 무게에 짓눌려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된 한 인간의 처절한 슬픔이자, 비명이었다.

재민은 묵묵히 그 절규를 듣고 있었다. 변호사 시절, 그는 수많은 의뢰인의 눈물을 보았다. 하지만 법정에서의 눈물은 대부분 계산된 것이었다. 형량을 줄이기 위한 연기,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전략.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청년의 눈물에는 아무런 계산이 없었다. 그저 살고 싶지만 살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린 날 것 그대로의 고통뿐이었다.

재민의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2년 전,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억울합니다"를 외치던 그 남자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때의 무력감이 다시금 재민을 덮쳤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니, 달라야만 했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을 거야. 끝까지 지켜볼 거야.'

재민은 주저앉은 청년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름이 뭐지?"

청년은 흐느끼며 대답을 망설였다. 한참 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수요. 장민수."

"그래, 민수야. 네 얘기, 조금만 더 해줄 수 있겠니?"

잠시 머뭇거리던 민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띄엄띄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민수는 지방 소도시의 평범한 가정의 장남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한 가정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빚쟁이들이 들이닥쳤고,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민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갔다. 최저임금으로는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에도 벅찼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급하게 제3금융권, 아니 사채까지 손을 댔다. 그렇게 민수의 청춘은 저당 잡혔다. 스무 살의 꿈 대신 독촉과 협박이 그의 일상을 채웠다.

"처음엔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잠 안 자고 더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다 갚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근데… 빚은 갚을수록 더 커지더라고요. 마치 늪처럼,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었어요. 이제는 숨 쉬는 것조차 힘에 부쳐요. 정말… 너무 지쳤어요."

민수의 앙상한 손등 위로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재민은 그 차갑고 거친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온기가 전해졌다.

"민수야. 네가 겪고 있는 그 지옥 같은 상황… 법으로 싸우면 방법이 있어. 개인회생이나 파산 절차도 있고, 불법 추심을 막는 법도 있어.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제도가 있고, 널 도와줄 법이 있어. 네가 혼자라서 몰랐을 뿐이야. 싸우면 길은 반드시 있어."

민수는 고개를 저으며 힘없이 웃었다.

"법이요? 그런 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 편 아닌가요? 변호사 선임할 돈도 없는 저 같은 놈한테 법이 무슨 소용이에요."

재민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민수의 말이 맞았다. 과거의 자신이 바로 그런 변호사였으니까. 돈이 되는 사건, 이길 수 있는 사건만 골라 맡았던 승률 100%의 엘리트 변호사. 정의나 사명감 따위는 촌스러운 것이라 여겼던 지난날들.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성공의 샴페인 소리가 더 달콤했던 그때의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지금 민수에게 '법'을 운운하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위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부끄러움이 지금 그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재민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민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네게 변호사가 필요하다면… 내가 되어줄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던 민수의 눈동자가 커졌다.

"네?"

"내가 네 변호사가 되어주겠다고."

"지금… 농담하시는 거예요? 아저씨가 변호사세요? 왜요? 아니, 저 돈 없어요. 한 푼도 못 드려요."

"돈 필요 없어.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난 진심이야. 나, 변호사였어. 그리고 꽤 유능했지. 지금도 법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해. 네가 짊어진 그 무거운 짐, 내가 같이 들어줄게. 네가 하는 그 싸움, 내가 같이 싸워줄게."

민수는 잠시 숨을 멈춘 채 눈을 두어 번 껌뻑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던 시선을 다시 들어 천천히 재민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마치 재민의 말 한마디라도 놓치면 벼랑 끝으로 떨어질 사람처럼. 민수의 불신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으로 바뀌는 찰나의 변화였다.

그날 밤, 재민은 민수가 사는 고시원까지 데려다주었다. 도심 외곽의 허름한 건물,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좁은 복도를 지나 도착한 민수의 방. 성인 남성 한 명이 눕기에도 벅찬 쪽방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그곳에는 컵라면 용기와 미처 뜯어보지도 못한 독촉장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벽지 대신 붙여놓은 듯한 '채권추심 방문 예정 안내문'이 붉은색 글씨로 민수의 삶을 옥죄고 있었다.

민수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여기가… 제 전부예요. 변호사님… 아니, 아저씨가 뭘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긴 구멍 난 배나 마찬가지예요."

재민은 방 안을 둘러보다가, 민수의 축 처진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네가 더 이상 이 좁은 방에 혼자 갇혀 있지 않게 하는 거다. 그리고 구멍 난 배라면 같이 물을 퍼내면 돼."

재민은 주머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려다 멈칫했다. 변호사 시절의 명함을 들고 다니지 않은 게 이미 오래였다. 대신 그는 민수의 책상 위에 놓인 낡은 메모지에 자신의 번호를 적어 건넸다.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 우리 같이 법원에 가자.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아니, 반드시 찾을 거야."

민수는 받아 든 메모지 속 숫자들이 차오르는 눈물로 번져 보일 때까지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그의 어깨가 속절없이 떨려왔다. 그는 얇은 종이 조각이 마치 끊어질 듯 팽팽한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구겨질세라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 쥐었다. 입술을 달싹이던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겨우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재민은 고시원 건물을 빠져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에 가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흐린 하늘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공기가 맑게 느껴졌다.

'다시는 법정에 서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던 1년 전의 맹세. 하지만 재민은 알고 있었다. 그 맹세를 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속죄의 시작이라는 것을.

'지하철 선로 위에서 끝날 수도 있었던 한 생명을 이번엔 반드시 지켜낼 거야.'

재민은 낡은 다이어리를 펼쳤다. 첫 장에 적힌 '법무법인 태산 최재민'이라는 글씨 위에, 그는 굵은 펜으로 가로줄을 그었다. 그리고 그 아래, 삐뚤빼뚤하지만 힘 있는 글씨로 민수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장민수'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