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만에 마주한 미역국

일 년을 기다렸던 간절함의 결과를 마주하다.

by 추억바라기

"와,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미역국이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그릇을 보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오늘 저녁 밥상에 내가 좋아하는 아니 오히려 그리워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미역국이 올라왔다. 지난 1월부터 입에 대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열흘이 모자란 1년 만의 조우다.


올해는 딸 인생에서 딱 한 번 뿐이라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되는 해였다. 누군가는 "요즘 세상에 무슨 그런 미신을 믿느냐"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렇다. 합리적인 이성보다는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앞서는 법이다. 미역국의 미끈거리는 식감이 혹여 딸아이의 시험 운을 안 좋게 할까 싶어,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을 1년간 끊는 것으로 우리만의 결의를 다졌다. 집 밥상에서는 물론이요, 바깥 식사 자리에서도 미역국은 철저한 금기였다. 직장 동료들과 백반집이나 구내식당에 갔을 때 국으로 미역국이 나오면, 나는 숟가락조차 담그지 않고 국그릇을 멀찍이 밀어두곤 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나는 미역을 철저히 외면하며 살았다.

그토록 참아왔던 미역국을 마주한 날인데...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공기는 무겁고, 냉랭했다. 수시 모집에 지원한 딸아이가 연거푸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지난주까지 아이는 자신의 어제를 자책했다가, 다시 내일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가를 수없이 반복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아빠, 나 재수할게요.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아."

며칠 전, 풀이 죽어 축 늘어진 어깨로 딸이 말했다. 그 얼굴에는 지난 시간 동안의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지만, 정작 내년을 기약하는 결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패배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내린 마지못한 결정 같아 보여 덜컥 걱정이 앞섰다. 나는 무거운 마음을 누르며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딸-, 많이 고민해서 내린 말이겠지. 하지만 정시로라도 들어갈 수 있는 학교에 일단 원서를 넣고, 내년에 학교를 다니면서 다시 준비하는 '반수'라는 길도 있잖아. 정말 재수를 결심했다면, 올해처럼 해서는 안 돼. 아주 독하게 마음먹어야 해. 일주일만 더 치열하게 고민해 보자."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힘겹게 입을 뗀 딸에게 너무 현실적인 잣대만 들이댄 건 아닌가 미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당장의 감정보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도피가 아닌 선택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건넨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조언이었다.


우리가 겪은 이 진통은 비단 우리 가족만의 사연은 아니다. 올해 입시는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한 환경 속에 치러졌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고교학점제를 기반으로 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다. 즉, 현행 교육과정과 입시 체제는 내년이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 '마지막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올해 수능에는 전년 대비 6%나 늘어난 총 554,174명이 지원했다. 2007년생 '황금돼지띠' 아이들의 높은 출산율도 한몫했겠지만, 내년부터 바뀌는 입시 제도로 인해 수능 지원자 수가 폭증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N수생들을 대거 시험장으로 불러들인 탓이다.

통계는 현실의 벽을 더 차갑게 보여준다. 전국 4년제 대학교의 수는 193개, 2025학년도 기준 입학 모집인원은 340,934명이다. 이는 올해 수능을 접수한 재학생(371,897명)의 91% 수준이며, 전체 지원자의 61%에 불과하다. 시야를 '인 서울', 서울 소재 대학으로 좁히면 문은 더욱 좁아진다. 서울의 48개 대학교 모집인원은 약 6만 8,500여 명. 전체 수능 지원자의 상위 12%만이 들어갈 수 있는 바늘구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학생과 학부모는 서울학교 입학을 꿈꾼다. 지방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해 신음할 때, 수도권 대학들의 경쟁률은 적게는 7~8대 1에서 많게는 수십 대 1까지 치솟는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해야 그나마 좁디좁은 취업의 문턱이라도 넘어볼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당연한 출발선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아이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숫자가 증명하듯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대다수는 실패에 좌절하고, 그나마 일부는 예비 순번을 부여잡고 전화기가 울리기만을 기다리며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낸다. 1차, 2차, 3차... 대기 순위가 하나씩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희망 고문 그 자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예비 번호조차 받지 못한 수많은 학생에 비하면 배부른 넋두리일지 모른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수능 성적표를 쥐고 정시라는 더 차가운 전쟁터로 나가거나, 기약 없는 추가 합격의 기적을 바라며 긴 겨울을 버텨야 한다.

이 잔인한 레이스 속에서 속이 타들어가고 피가 마르는 건 수험생 당사자뿐만이 아니다. 부모, 형제, 가까운 지인들까지 온 가족이 함께 앓는 열병이다. 사회의 인식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취업을 목적으로 특성화고에 진학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고 학생들의 종착지는 여전히 '대학'이다. 입학 당시만 해도 대학 진학에 큰 뜻이 없던 아이들도 고3 교실의 분위기에 휩쓸리면 결국 자신이 갈 수 있는 학교를 찾게 된다. 불안한 청춘에게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다'는 안도감은 그 무엇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런 폭풍우 같던 시간을 지나, 딸은 어제 드디어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려온 결과였기에 기쁨은 몇 곱절로 다가왔다. 지원한 학교들의 연이은 불합격 소식에 좌절하며 어깨를 떨구던 딸의 얼굴에 오랜만에 함박웃음이 피어올랐다. 비록 아이가 지원한 대학 리스트 중 후순위에 있던, 소위 '안정권' 학교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딸도, 아내도, 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울의 명문대가 부럽지 않다. 더 이상 초조하게 전화기를 붙들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했다. 딸아이에게 드디어 '소속'이 생겼다는 현실적인 안도감에 비로소 우린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숟가락을 들어 미역국을 한 술 뜬다. 미끈하고 부드러운 미역이 목을 타고 따뜻하게 넘어간다. 1년 전, '미끄러질까 봐' 두려워했던 그 식감이 오늘은 막혔던 속을 뚫어주는 위로의 맛으로 느껴진다.


입시라는 거대한 관문을 통과하며 우리는 알게 되었다. 대학 간판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비록 우리가 원했던 '1 지망'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아이는 실패를 견디는 법을 배웠고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서로를 다그치기보다 기다려주는 인내가 사랑임을 알게 됐다.

오늘 밥상에 오른 미역국은 단순히 금기가 해제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1년간 딸이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그 곁을 지킨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마침내 응답을 받은 듯하다. 이제 이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딸은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는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늘따라 미역국이 참 맛있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우리 가족의 12월이 이제야 비로소 끝이 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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