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요즘 행복하니?”
어느 날 한 친구가 나를 향해 이런 간단한 질문을 했을 때 난 말문이 막혀 답을 할 수 없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한참을 생각에 잠겨야만 했었다. 오랜 침묵이 흘렀지만 나는 결국 그 침묵을 깰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회사생활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문득 그 친구의 물음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 나는 지금 행복한가?”
고된 업무와 늦은 퇴근, 잦은 회식으로 피곤에 찌들어 그나마 활력을 주는 취미생활도 못하고 주말엔 잠만 자는 게 일상인 시기였다. 회사에서는 중간관리자였기에 현장의 소리와는 반대되는 본사의 지침으로 중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다. 현장에서는 힘들고 지친다는 현장직원들의 볼멘소리를 매번 들어야만 했고, 본사에서는 더 몰아쳐야한다는 소리와 함께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아야만 했다. 정작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하고, 동료들과 함께 퇴근 후 마시는 소주 한잔으로 풀어야만 하는 것이 전부였다.
회사를 다닌 지도 어느 덧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취업이 어렵다고 하던 시기였지만 다행히도 졸업 전에 취업을 할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상경을 했지만, 무일푼으로 시작한 사회 생활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사회 초년생 월급만으로 비싼 월세에 생활비까지 빠지고 나니 다른 걸 할 수 있는 여유도 없었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반문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달려왔지만, 막상 7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도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내 인생을 살았던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집에서는 그저 남들처럼 직장 잘 다니는 아들이 되기 위해 살아왔고,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회사원이 되기 위해 열심히 일만 해왔다. 내가 부족해서였겠지만 무얼 위해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방향성을 찾지도 못한 채 오로지 앞만 보며 무작정 달려왔었다.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매 상황 어떤 선택이 필요할 때에도,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위한 선택을 해오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내 인생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인생을...
그럼 난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솔직히 뭐가 행복한 것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생각해보니 내 스스로 행복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행복한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더 늦기 전에 내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단순했던 하나의 물음, ‘나는 행복한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삶을 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에,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를 위한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해 여름, 정확히는 2014년 8월 중순. 나는 7년을 몸 담아왔던, 내 젊은 날의 열정을 쏟았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스스로도 걱정이 많이 되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오히려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을 했다. 하긴, 한창 일 할 나이. 열심히 일 해야 하는 시기이자 가정도 꾸려야 하고,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시점에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사소한 결정하나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눈치만 봐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기에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 누구로부터 만들어진 틀인지는 몰라도 그 틀 안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야만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
어쩌면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라는 괴테의 명언처럼, 위험할 수 있지만 존재의 이유를 찾아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한 척의 배가 되고 싶은 것 이었을 수도...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걱정 보다는 한결 가벼운 마음과 이전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물론 점점 줄어드는 주머니가 아쉽긴 했지만 오히려 마음만은 더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2015년 4월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미지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백패킹이라는 취미를 시작하고부터 늘 마음속에 품어왔던 동경의 무대, 미국의 서부를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4천 킬로미터가 넘는 머나먼 길을 가로지르는 트레일. 걸어서 종주하는데 5개월이란 시간이 걸리는 이 긴 길을 걸으며 나는 그 시간동안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즐기면서 ‘나는 행복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이 글은 약 5개월에 걸친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의 서부를 종단하는 약 4,300km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PCT), 영화 ‘WILD’의 무대로도 잘 알려진 그 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과 소중한 시간들을 추억하는 글이다.
3년 전 PCT를 알고 나서부터 꼭 가야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여정이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국 땅을 배낭 하나 둘러메고 무작정 떠난 여정. 이 글을 통해 그 길에서 만난 수많은 하이커들과 함께 했던 즐거웠던 시간,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며 인생과 행복에 대해 느꼈던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다.
“Almost There!”
그 길 위에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항상 들려왔던, 힘들고 지친 친구들을 위해 항상 외쳤던 말. 하지만 여정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정작 이 말이 필요한 사람은 그 길 위에 있던 친구들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시간도 없이 취업준비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막상 졸업하고 나니 취업의 벽에 부딪혀 취업 준비생으로 어렵고 서러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 좁은 문을 비집고 들어가 시작한 사회생활 속에서 가장 혹은 워킹맘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버리고 다른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친구 혹은 선배님들...
그분들께 주제넘고 예의 없을지 모르지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Almost T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