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세계가 현실로 내려온 장면
겨울의 황혼, 눈이 내리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줄을 서 있다. 어떤 이는 아이를 안고, 어떤 이는 말을 끌며 세금 신고를 위해 관청으로 향한다. 그 한가운데, 낡은 마차 위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앉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주위에는 천사도, 광채도 없다.
피터르 브뤼헐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는
예수의 탄생 직전, 성서 속 장면을
16세기 네덜란드의
현실 속으로 옮겨온 그림이다.
신화는 하늘이 아닌
눈 덮인 마을로 내려왔고,
인간의 구원 이야기는
세금 징수의 현실 한복판에서 시작된다.
이 그림은 얼핏 풍경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화면 곳곳이 문명적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중앙에는 세금 창구가 있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이름을 적고 돈을 내고 있다. 오른쪽에는 관청의 문지기와 관리들이 서 있으며, 왼쪽에는 가난한 농민들이 담벼락 아래 웅크리고 있다.
브뤼헐은 구원과 통치,
신성한 이야기와
세속적 현실이 교차하는
‘성서의 세속화’를 그렸다.
요셉과 마리아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구원의 주인공이 군중 속에 섞여 버린 장면. 신성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인간 사회의 질서와 무관심이다.
피터르 브뤼헐(대),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The Census at Bethlehem), 1566년, 목판에 유채,
116 × 164.5 cm, 브뤼셀 왕립미술관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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