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씨벌!"의 정신으로 2026년도를 건너자!

by 이안


사람은 말로 무너지고, 말로 다시 일어선다.


말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한 사회가 자신을 견디게 하는 최소한의 정신 장치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가장 거칠고, 가장 천박하다고 여겨지는 말 하나에 오히려 주목해 왔다.

바로 “씨발”, 혹은 “씨벌”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흔히 욕설로 분류된다.
품위 없고, 저속하고, 공적 공간에서 제거되어야 할 언어로 취급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 말은 단순한 분노의 배설일까, 아니면 한국 사회가 수백 년 동안 위기 앞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방식일까.


얼마 전, 신동엽이 진행하는 한 유튜브 방송에 강남이 출연해서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가 다투는 장면을 묘사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일본말로 한참을 떠들지만, 어머니가 단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은 길지 않았다.
“씨발.”


그 짧은소리 하나에 상황은 정리되고, 힘의 방향은 바뀐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 말이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 말은 “여기까지는 참았고,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존재 선언에 가깝다.


한국어의 “씨발”은 분노라기보다 한계선의 언어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마지막 경계선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의 힘은 개인의 삶에서도 반복된다.


체류탄이 공기를 가득 채우던 시절,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말은 길지 않았다.
“에이, 씨벌.”
그 말은 절망의 언어가 아니었다.
다시 한 발 내딛기 위한 숨 고르기였다.


이 언어는 한국의 역사 속에서도 반복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정규군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나라가 붕괴되는 광경 앞에서, 농민과 백성들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전략회의를 열지도 않았다.
그보다 먼저 튀어나온 것은 이런 감각이었을 것이다.


‘에이, 씨발. 저놈들이 내 가족을 이렇게 도륙하는데,
이걸 참고 살 수는 없지 않나.’


그 말 한마디가 사람들을 묶었고, 의병이라는 이름 없는 군대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역시 마찬가지다.
숨통이 조여 오는 일상, 말 한마디 잘못하면 끌려가던 시대, 이름과 언어와 삶 자체가 부정당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계산하지 않았다.
‘승산이 있느냐’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에이, 씨발 왜놈들!. 이건 정말 못 참겠다.’


그 감각이 사람들을 거리로, 산으로, 감옥으로 보냈다.
독립운동은 고도의 정치 전략이기 이전에, 존엄이 무너질 때 터져 나오는 언어적 반사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씨발”이라는 말이 폭력을 부추기는 언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것은 폭력을 멈추게 하는 마지막 자각의 언어에 가깝다.
이 말이 터지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더 이상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한다.

언어는 정신을 만든다.
그리고 어떤 언어는, 그 사회가 스스로를 끝내 포기하지 않도록 붙잡는 버팀목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씨발”이라는 말은 그런 기능을 해왔다.
너무 비루해져서, 너무 억눌려서, 더 이상 우아한 말이 나오지 않을 때, 이 말은 마지막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붙들어 왔다.


그래서 이 말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입문학이다.
고난의 입문학이고, 생존의 입문학이며, 정신의 입문학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래도 이대로 무너질 거냐?”


그리고 대답을 강요한다.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2026년의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요괴 같은 문제들이 있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 위기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시 이 말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망가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그러니 이 말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은 혐오의 언어가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늘 그랬다.
망설이면서도, 투덜거리면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일어났다.


“에이, 씨발.”
그리고 또 한 번, 시간을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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