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침묵과 빛의 기원
인류 문명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친 사건은 드물다. 그러나 이 거대한 사건의 연대기적 출발점은 역설적이게도 ‘공백’으로 남아 있다. 기독교의 근간인 정경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그 어디에도 예수가 12월 25일에 태어났다는 명시적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복음서 저자들은 탄생의 장소(베들레헴)와 정치적 배경(헤롯 왕조와 가이사 아구스도), 그리고 신학적 전조(동방박사와 목자들)에 대해서는 세밀한 묘사를 아끼지 않았으나, 정작 ‘월’과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이러한 성서적 침묵은 단순한 기록의 누락이라기보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가졌던 시간관과 존재론적 태도를 반영한다. 이 글에서는 성서가 날짜를 기록하지 않은 이유를 초기 기독교의 종말론적 구조 속에서 파악하고, 이후 4세기 로마에서 12월 25일이 ‘선택된 역사’로 정착하기까지의 문헌적·철학적 과정을 추적하고자 한다.
역사적 실증주의 관점에서 볼 때, 12월 25일은 예수의 탄생일로서 치명적인 기후적 모순을 안고 있다. 누가복음 2장 8절은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라고 기록한다. 성서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12월 탄생설의 허구를 지적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12월은 우기에 해당하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혹한기이다. 유대 문헌인 『미쉬나(Mishna)』에 따르면, 목자들이 양 떼를 노지에서 방목하는 시기는 보통 유월절(3월) 전후부터 첫 비가 내리는 10월 중순까지로 한정된다. 겨울철의 양들은 우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했기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밤을 지새웠다는 서사는 오히려 봄이나 가을의 기후적 특징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초기 교부들은 이 날짜를 어떻게 인식했을까? 2세기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는 그의 저서 『스트로마타(Stromata)』에서 예수의 탄생일을 추적하려는 이들을 언급하며, 어떤 이들은 파키온(Pachon) 월 25일(양력 5월 20일), 다른 이들은 파르무티(Pharmuthi) 월 24일(4월 20일)을 주장한다고 적었다. 중요한 점은 클레멘스조차 12월 25일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서기 200년경까지도 기독교 내부에서 예수의 생일을 특정 날짜로 기념하는 관습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성서가 날짜를 명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기독교의 ‘시간론’과 맞닿아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의 개념을 두 갈래로 나누었다. 흐르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결정적이고 질적인 의미의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다.
복음서 저자들에게 예수의 탄생은 연대기적 연대표에 점 하나를 찍는 ‘크로노스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원이 시간 속으로 틈입(Intrusion)해 들어온, 인류 역사의 근본적인 단절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카이로스적 사건’이었다. 성서의 침묵은 예수를 과거의 인물로 박제하지 않으려는 의도적 장치로 읽힌다. 날짜가 비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사건이 특정한 날에 고착되지 않고 ‘모든 날’로 확장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게 한다.
중세 신비주의 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는 이를 두고 “신의 아들이 베들레헴에서 천 번을 태어난다 한들, 지금 당신의 영혼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반문했다. 즉, 성탄은 ‘과거의 어느 날’을 추억하는 기념제가 아니라, 신자들의 실존 안에서 매 순간 반복되어야 하는 ‘사건의 현존’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12월 25일인가? 이 날짜의 확정은 4세기 로마 제국의 정치적·문화적 상황이 빚어낸 산물이다. 당시 로마에는 동지(Winter Solstice)를 기점으로 낮이 길어지는 것을 축하하는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숭배와 대축제인 ‘사투르날리아(Saturnalia)’가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교회는 이교적 축제 문화를 무력으로 말살하는 대신 기독교적 가치로 ‘수용적 변용(Assimilation)’하는 전략을 취했다. 354년의 기록인 『필로칼루스 달력(Chronograph of 354)』은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명시한 최초의 문헌적 근거가 된다.
교회는 태양의 빛이 다시 강해지는 동지의 천문학적 현상을 구약 성서 말라기 4장 2절의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라는 예언과 연결시켰다. 여기서 12월 25일은 ‘천문학적 사실’이 아니라 ‘신학적 메타포’로 기능한다. 가장 깊은 어둠의 정점에서 빛이 탄생한다는 역설적 상징은, 로마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강력한 인문학적 매개체가 되었다.
중세로 넘어오면서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더욱 심화된다. 중세인들에게 12월 25일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에 대한 경외였다. 절대적인 신이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그것도 짐승의 먹이통(구유)에 누웠다는 사실은 당시 계급 사회였던 중세 유럽에 혁명적인 인간관을 제시했다.
가장 비천한 장소에 임한 신의 모습은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자신들과 동일시되는 신의 형상을 보여주었다. 이는 훗날 프란치스코 성인이 베들레헴의 구유를 재현하며 민중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구유 안치’ 전통으로 이어진다. 중세의 성탄은 화려한 소비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온 신의 사랑에 대한 실존적 응답이었다.
현대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1년 중 가장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날이다. 백화점의 조명과 캐럴은 성서의 침묵을 지워버렸고, 자본은 베들레헴의 어둠을 가려버렸다. 그러나 성서에 날짜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대면할 때,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가 ‘날짜 없는 날’이라는 점은, 우리가 그 빛을 달력의 특정 칸에 가둬둘 수 없음을 뜻한다. 그것은 소외된 타자를 향한 환대, 어둠 속에 있는 자를 향한 연대 속에서 매일 새롭게 탄생해야 하는 정신이다. 다음 편에서는 로마의 이교 축제가 어떻게 기독교 절기로 정착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문화적 충돌과 융합의 과정을 사료를 통해 상세히 고찰할 것이다.
[연재 예고] 제2편: 로마의 동지 축제와 무적의 태양신 - 이교의 심장에서 피어난 그리스도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