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후이성의 황산(黃山)과 호색한(好色漢)-
지는 노을 속에 서호(西湖)와 근처의 유적지들이 붉게 물들어 가던 아름다운 도시 항저우와 아쉽게 이별을 하고,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안후이성의 황산(黃山)에 올랐다.
중국 무협 소설을 보면, 강호의 고수들이 무시무시한 악당들과 싸우다가 내상을 입으면 중국 제일경(第一景)이라고 불리는 황산을 찾는다. 고수들은 황산에서 기암괴석과 끝없이 펼쳐진 운해(雲海) 속을 헤맨 끝에, 신묘한 소나무를 찾아간다. 그리곤 소나무 아래에 앉아 운기조식 (運氣調息:몸안의 기를 돌리고, 호흡을 조절하는 양생법)을 하며 기력을 회복하는데, 진기한 소나무와 황산의 정기를 받은 주인공들은 내공이 상승한다.
안후이성의 황산이 뿜어주는 정기는, 드래곤볼 속 ’ 손오공의 에네르기파‘ 보다 강력해서, 그토록 무시무시하던 악당들도, 리턴 매치에 나타난 ’ 우리의 주인공‘이 발사하는 장풍 한방에, 낙엽 떨어지듯 벌러덩, 벌러덩 나자빠진다.
이렇게 좋은 정기를 나눠준다는 그 유명한 ’ 황산‘이니, 내가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기행을 시작한 지 한 달, 그동안, 한국의 김치와 고추장을 먹지 않았더니, 다리가 후달리고 기력이 바닥이었는데, 나도 전설의 소나무를 찾아서 운기조식을 하고, 다시 기력을 회복해야만 했다는 것이었던, 말이었던, 거라는~~
백과사전이나,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같은 책에 나오는 ’ 황산에 대한 찬가‘를 대략 살펴보자
......... 황산은 중국 진나라 때는 이산(黟山)이라고 불렸으며, 이후 당나라 현종 때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는데, 둘레가 250km에 이른다. 이곳에는 2개의 호수, 3개의 폭포, 24개의 시냇물, 그리고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72개나 있다.
호수는 맑은 파란색에 옥색 또는 초록색을 띠며, 다양한 수종이 풍부해서
가을에는 온갖 색으로 물드는 단풍이 다채롭기로도 유명하다........
약 1억 년 전에 형성된 황산의 봉우리들이 절경을 이루는 이유는, 수직 방향의 절리(지층의 변화 등으로 암석에 갈리진 틈)가 발달하여 깎아지른 절벽이나 기암괴석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빙하 작용과 지질구조의 변화로 생긴 습곡과 단층, 그리고 석회질 모래사장, 폭포, 계단식 호수 등 고지대 카르스트(karst) 지형의 백화점 같은 곳이다.
황산은 해발고도에 따라서 각기 다른 종류의 소나무가 자라는데, 특히 해발 800m~1800m 사이에는 황산이 원산지인 잎이 크고 짧은, 학명 ‘황산 소나무(黄山松, Huangshan Pine, Pinus hwangshanensis)’가 뒤덮고 있다.
사람들이 황산을 찾는 이유는, ’ 빛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구름을 보기 위해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연간 200일 이상 펼쳐져 있는, 황산의 운해(雲海)와 소나무, 그리고 우뚝 솟은 화강암 봉우리들은 황산의 명물이다. 이런 절경은 중국의 문학과 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특히 16세기 중엽에는 황산의 모습을 그리는 산수화 양식이 유행했었다고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했던 중국 황산의 기암절벽들>
황산은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보니, 험준한 등산로를 깎아 4만 개에 이르는 돌계단을 설치해 놓았는데, 험한 산길이 아닌 손쉽게 돌계단을 이용해서 올라도 황산의 절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안개가 낀 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진짜 코앞도 안 보이네~~ㅠㅠㅠ!”
바로 필자의 첫 황산 등반이 그랬다. 절경을 보며 눈호강을 하고, 운기조식을 통해 남은 두 달여의 일정 동안, 중국을 여행할 힘을 얻으려고 오른 황산에는 안개와 비구름만 가득했다. 나는 1999년 3월에 중국 제일경 황산에서, 황산 소나무도, 기암절벽도, 운해도, 그밖에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하고, 그저 자욱한 안개와 처량하게 내리던 이슬비만 질리도록 볼 수 있었다.
그래도, ’ 오후엔 날이 갤지도 모르니 ‘ 하고, 더 높이, 더 높이 수박만 한 땀방울을 흘리며 올라갔으나, 올라가면 갈수록 바로 한 걸음 앞, 계단 한 개만을 겨우 볼 수 있도록, 나를 ’포근히 감싸주는 안개‘만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결국 상실감만 잔뜩 안은 채 황산에서 내려왔는데, 우리들의 절친 론리 플래닛 가이드북에서는, ‘황산에 가거들랑, 남쪽의 온천에 꼭 들르라’라는 산신령의 예지(叡智) 같은 친절한 설명이 있어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위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하산길에, ‘씻을 세(洗)’자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더구나 건물 앞에서는 중국 3대 미인에서 빠진다면 통곡할 만한, ‘절세미녀’ 한 분이 미소를 지으면서 들어오라고 부드러운 손짓도 하고 계셔서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곳을 찾았다. 그런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뭔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머릿속으로 기대하던, 뜨거운 김이 오르는 커다란 온천탕 같은 건 안 보이고, 여관처럼 각각 방이 나뉘어 있었다.
나는 개개인별 ‘독실 최고급 온천’인가? 중국의 온천 문화는 특이하구나!‘ 하고 방문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낡아빠진 욕조 하나와 녹슨 수도 파이프만 보였다. 그리고 물을 틀어 봤는데 물이 뜨겁지도 않았다.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며 황망해했지만, 그래도 우선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나왔는데, 아까 입구에서 본 ’ 절세미인‘이 나를 보며
요염하게 웃고 있었다.
’헉! 이곳은 어디 매뇨?‘ ’도대체 나는 어디에 들어온 것이란 말인가?‘
’ 절세미인은 왜 요염한 모습으로 나에게 손짓을 하는가?’
순간 중국 여행을 했던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멋모르고 중국 홍등가(紅燈街)에 들렀다가, 공안에 붙잡혀서 여권에 ‘호색한(好色漢)’이라는, 빨간 도장이 찍힌 채 쫓겨나는 한국인이 종종 있다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중국에서 이렇게 추방될 수는 없지!‘.
나는 부랴부랴 짐을 챙겨 ‘씻을 세(洗)’의 그 건물을 도망 나와야만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건물의 정체가 오리무중이다.
또 그 여인은 왜 내게 추파를 던졌을까? 물론 ‘제주도의 송중기+ 서울 평창동의 원빈’인 내가 세계 그 어느 나라의 여인이 보더라도, 훈남이라는 건 팩트이지만, 초면인 그녀와 내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았는데.... 황산은 내게 아픈 기억과, 당혹스러운 ‘36계 줄행랑’의 기억을 안겨줬다. 줄행랑을 치면서 생각했다. 다음 일정엔, 무협지 속 9대 문파의 하나인 아미파(峨嵋派)의 본거지 쓰촨 성의 아미산에 오를 텐데,
‘제발 아미산에서는, 황산의 36계 줄행랑 같은 건 되풀이하지 않기를!’
<중국의 또 다른 명산, 아미산아! 기다려라~ 피터팬 PD가 간다. 아미산에서는 꼭!, 황산에서의 아쉬움을 달래 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