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베네치아에서 마셨던 맥주 두 병

-비 오는 쑤저우(蘇州(소주)의 운하와 칭따오 맥주-

by 이안

나는 굳이 말하자면 맥주 파다. 물론 한국 남성이니까, 막걸리와 소주를 비롯해서 차례에 올리는 청주, 전통 소주, 인삼주 그리고 남자에게 좋다는 복분자주에 와인까지 다 마실 수 있고, 또 좋아하기도 하지만, 가장 편하게 즐겨 마시는 술은 맥주다. 맥주 중에서는 벨기에산 [호가든]을 제일 좋아하는데, 서울에서 MBC 라디오 PD로 일할 때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매일 생방송을 연출하면서 쌓인 과도한 긴장감을 날려버리려고, 에일 맥주인 호가든 한 캔과, 작게 개별 포장된 김 2 봉지를 안주 삼아 먹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내가 99년 봄에 3개월 동안 여행했던 중국은, 칭따오 맥주로 유명하다. 이미 1906년에 ‘뮌헨 국제 전시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을 정도로 맛과 품질이 우수한데, 칭따오 맥주는, 1903년 칭다오 양조회사(Tsingtao Brewery)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하면발효’ (맥주를 저온에서 발효시킨 뒤 효모를 가라앉히는 방식. 실온에서 발효시켜 효모가 뜨는 상면발효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낮고 부드러운 맛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대체로 독일계 백주는 하면발효, 영국계 맥주는 상면발효로 만들어진다.) 방식의 라거 맥주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이기도 하다.


중국 기행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칭따오맥주의 맛에 빠지기 시작한 건, 후베이성[湖北省]의 비 오는 쑤저우 [Suzhou, 蘇州(소주)]에서부터 였다. 쑤저우에 대해서 중국 사람들은 하늘엔 천당, 땅엔 쑤저우와 항저우(上有天堂, 下有蘇杭)라고, 과장해서 말할 정도로, 예부터 쑤저우를 아름다운 도시로 쳐줬다


중국 사람들은 또, '소주에서 나서 항주에서 살고 광주(廣州)에 가서 먹고, 류주(柳州) 가서 죽자'는 말도 하는데, 부유하고(소주), 놀기 좋고(항주), 음식 잘하고(광주), 관을 잘 만드는 곳(류주)을 각각 이르는 말이다. 물론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나서, 지금은 부자 도시가 상하이 등 서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지만, 중국의 오랜 역사를 통해 쑤저우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의 성북동 혹은 평창동처럼 전통적인 알짜배기 부자가 많은 동네였다.


쑤저우가 중국 수나라 때부터, 부자 도시로 떠오른 데에는, 쑤저우의 지리적 위치가 큰 역할을 했다. 수 양제(煬帝)는 605에서 611년까지, 중국 대륙에 장장 2천3백 킬로미터의 운하를 준설했는데, 쑤저우는 장강 유역의 풍부한 쌀을 장안(長安)이나 낙양(洛陽) 등지로 직송하는 수상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돈이 모이고 부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쑤저우는 총길이 35킬로미터에 이르는 직사각형의 인공 운하에 둘러싸인 도시인데, 쑤저우의 구시가지는, 아직도 수로를 따라서 전통 가옥이 줄지어 있어서, 그 옛날 수나라 시대나 당나라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쑤저우는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비 오는 날에도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인데, 특히 원(元) 나라 때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이곳을 방문해, 자신의 고향 베니스와 매우 닮았다면서 '동양의 베니스'라고 이름 짓기도 했다.


중국 이탈리아의 두 도시를 다 여행해본 나의 경험으로는, 베니스가 화려하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더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동양적 아름다움이 가득한 쑤저우를 선택하겠다. 쑤저우의 전통 가옥들과, 아름다운 수로가 무척이나 멋들어지기도 했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중국 무협지와 무협영화에 빠져 지냈던 터라, 쑤저우에서는 골목을 돌아서면, 강호의 멋진 무사들이, 갑자기 튀어나올 것만 같은,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부자 도시인 데다, 물이 좋아서 그런지 쑤저우에는, 특히 피부가 뽀얀 미인들이 많았다. 수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식당에 들렀을 때도, 중국 소설 속 4대 미인중 한 명인, 삼국지의 ‘초선’의 환생 같은 분이 서빙을 하셨는데, 읽을 줄도 모르는 메뉴판의 음식보다는, 그 아름다운 여인의 환심을 사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다.


그래서 고급 닭요리와 칭따오를 몇 병을 시키고,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앉아 그분에게 미소를 날렸지만, 결국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그분 역시 한국에서 온 ‘제주도 표선면의 송중기’ 피터팬 PD를 잊지 못하고 계시지 않을까? 가끔 생각한다.


쑤저우의 비 오는 수로와 아름다운 가옥들을 바라보며, 전통 깊은 중국 맥주를 마시니, 1500년 전 수나라 때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특히 처음 먹어 보는 ‘차갑게 조리해서 나오는 닭 볶음 요리’와 칭따오 맥주는 정말 환상적인 궁합이었다. 내가 메뉴판을 읽기 어려워서, ‘뭘 시킬지 모르겠다’고, 손짓 발짓을 하니까, 마음까지 착하신 ‘초선’을 닮은 식당의 아름다운 여인이, ‘친히’ 나를 위해 직접 추천해주셨는데, 내 입맛에도 딱 들어맞았다. 역시 선남선녀끼리는 입맛도 비슷한가 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약에, 쑤저우에서 내가 맥주를 마시지 않고, ‘마오타이’ 같은 명품 중국 고량주를 마셨다면, 취중에 용기를 내서, 초선보다 어여쁜 그 여인에게 '29살 한국 청년'의 고백을 전할 수 있었을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고주망태가 되어 비틀거리다가, 쑤저우 수로에 빠져서, ‘술에 취해 사회 미풍양속을 헤친 자본주의 국가의 외국인’이라는 혐의로, 중국 공안에게 붙들려 갔을 것이다.


쑤저우에서 행복한 2박의 일정을 마치고, 중국의 역사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황저우(Huangzhou, 黄州(황주)]의 서호(西湖)에 들렀을 때 마침 그곳에서도 봄비가 내렸는데, 나는 아름다운 서호를 바라볼 수 있는 유리창이 큰 식당에 앉아, 탕수육과 비슷한 요리와 역시 칭따오를 비워냈다.


봄비 속에서 물방울무늬를 만들어내던 아름다운 서호는, 밤이 다가오고 비가 그치자, 물 위에 달 하나를 띄워놓고 있었다. 서호와 달이 그날 밤의 주인공이었다면, 세계 6대 맥주 중 하나라는 ‘칭따오’는, 주연을 더 빛나게 했던 훌륭한 조연이었다.


PS 1. 지금은 세계적인 맥주로 성장한 칭다오 맥주는, 1903년에, 독일의 뛰어난 맥주 기술을 바탕으로 수입 곡물과 직접 재배한 홉, 라오샨 지방(Laoshan)의 맑고 깨끗한 광천수를 사용해서 라거 맥주를 생산했고, 1904년 12월에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1972년에는 미국에 처음으로 수출되어 미국 내 가장 잘 팔리는 중국 맥주로 인정받았다. 또한 같은 해 세계적인 맥주 보고서 바르트 리포트(Barth Report)에 의해 세계 6대 맥주로 선정되었다. 톡 쏘는 탄산, 풍성한 거품과 깔끔한 맛으로 청량감이 높기 때문에 기름기가 많은 중국 음식에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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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6대 맥주 중 하나라고 불리는 중국의 칭따오 맥주는 이미 1904년부터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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