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에 도착한 날은 봄비치곤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봄비는 한국이나 중국에서나, 신중현의 걸작, 박인수가 부른 [봄비]의 가사처럼, ‘외로운 가슴을 달랠 수 없게’ 만든다.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우산도 없이 옷과 배낭이 쫄딱 젖은 채 도착한 상하이의 호텔은, 상하이 최초의 호텔이라는 ‘푸지앙 호텔’이었다. 20개의 침대가 한 방에 있는 도미토리룸에, 1박당 55위안 (한화 대략 9000원)을 내고 묵기로 했다.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 학교 '호그와트'의 기숙사처럼, 천장이 매우 높은 건물이었는데, 내가 묵기로 한 방에서 나만 한국인이었고, 19개 침대는 일본 젊은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스무 번째 제일 끝에 있는 침대가 배정되었는데, 옆 침대의 일본 젊은이가 내게,
"혹시 남경에 가봤느냐? 남경(=난징)에서 한국 사람들은 별일 없었냐?’며 물었다.
자신은 상하이에 오기 전 남경에 들렀었는데, 그곳은 참 이상했다면서,
"일본인을 대하는 중국 사람들이 매우 불친절했다. 우리를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이 경멸하는 듯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가르치지 않은 일본 교육의 부작용을, 바로 내 눈앞에서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 때,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하고, 단 6주 만에, 30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난징 시민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내가 남경에 머물렀던 1999년 3월까지만 해도, 중국 난징 사람들의 일본인에 대한 증오는 상당했는지, 상하이에 오기 전 들렀던 난징에서는 일본인 관광객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내 옆 침대에 자리를 잡았던, ‘일본의 부끄러운 역사에는 무지했던 일본 젊은이’는, 아무 생각 없이 남경에 갔다가, ‘이유 모를 멸시’를 당한 분풀이를 내게 토로했던 거다. ‘난징은 참, 이상한 도시’라면서.
‘이상한 건 난징이 아니라, 너희 나라와 너다! 이눔아!!’,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는, 현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지!. 일본어로 된 너희 나라 여행 가이드북에, [남경을 되도록 피하라]고 적혀있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란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대학생쯤 돼 보이는 젊은 청년의 궁금증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말한다 해도 믿지도 않을 테고, 녀석의 주된 관심사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놀랍게 변해가는 상하이의 화려한 모습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난징 대학살 때 일본군에 의해서 희생된 30만 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중국의 [난징대학살 기념관]. 당시에 일본군이 촬영한 사진, 미국인 선교사 존 매기(John Gillespie Magee, 1884~1953)가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 난징 국제 안전지대에서 봉사했던 중국인 여성 청 루이 팡(程瑞芳, 1875~1969)의 일기(중국판 ‘안네 프랑크의 일기’로 알려짐) 등의 난징 대학살 기록물(Documents of Nanjing Massacre)의 전체 자료는,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1999년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장기간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도미토리에 묵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일본 대학생이었다. 우리나라는, IMF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서, 해외여행에 대한 수요도 적었겠지만, 대학생들도 거의 유럽 배낭이나 동남아 여행에 치중했지, 사회주의권 중국까지는, 아직 시선을 많이 돌리지 않던 때였다.
중국에 오기 전 인도와 네팔에서도 3개월을 머물렀는데, 그곳에서도 한국 대학생들보다 일본 젊은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행이 주는 이익이, 그저 유흥에 그칠 수도 있지만, 배낭을 메고 장기간 외국의 현지인과 해당 나라를 체험한다는 건, 개인의 자산은 물론, 나라 전체로 보면 글로벌한 인식을 갖춘 국민들이 늘어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일본 젊은이들 보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미국 유럽 등이 아닌, 중국이나 인도 등 다양한 나라에 대해서는 폭넓게 인지할 수 있는 기회가 늦춰지고 있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전 세계 어딜 가도, 외국인에게 밀리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활기차게 세계인과 어울리는 우리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으니까.
상하이의 ‘무지했던 일본 청년’ 같은 녀석을, 실크로드를 따라갔던 중국 둔황에서도 또 만날 수 있었다. 나만 이런 일본인을 만나는 건지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 건지, 아무튼 그 녀석은 더 황당했는데. 지면이 짧아 나머지 얘기는 내일로 미뤄야겠다.
한층 더 가을 가을 해진 아름다운 제주도의 푸른 밤에, 중국 여행기를 쓰느라, 과거의 일을 떠올리다 보니 기분이 영~ 개운치 않은데, 마침 오늘 표선면 5일장에서 산 매운 깍두기를 안주 삼아, 제주 생막걸리라도 마시면 씁쓸한 기분을 날려 보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