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거지가 없다?

-베이징역에서 만난, 티베트 소년 거지와의 우울한 기억ㅠㅠ-

by 이안

콩을 삶는데 콩깍지로 불을 때니 [煮豆燃豆萁],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豆在釜中泣].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 [本是同根生],

어찌 급히 삶아대는가 [相煎何太急]?


삼국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詩)중의 하나인 이 시는, 위나라 조조의 아들 조식(曹植)이 지은 시다. 조식의 형 조비(曹丕)가 조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나자, 재능이 뛰어났던 동생 조식을 핍박했다. 어느 해엔, 동생 조식에게 일곱 걸음 안에 당장 시를 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는데, 동생 조식은 ‘자두연두기(煮豆燃豆萁)’ 혹은, 일곱 걸음 만에 시를 지었다 해서, 칠보 지시(七步之詩)라고도 불리는 이 시를 즉석에서 읊었다.


시의 내용은, 형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인 조식 본인을 콩에 빗대고, 위나라의 왕(王)인 형을 콩깍지에 빗대,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거늘, 왜 이토록 나를 미워하며 죽이려 하는가?라고 탄식하는 것이다. 조조의 둘째 아들 조식이, 얼마나 천재적인 시인이었던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인데, 내가 [삼국지]를 여러 번 읽었던 이유도, 이처럼 [삼국지]는 위, 촉, 오 세 나라의 전쟁 이야기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의 고풍스러운 향기도 함께 들려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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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 타운에 가면, 삼국지의 내용을 벽화로 그려놓은 골목이 있다. 그중, 일곱 걸음만에 시를 지었다는 천재 시인 조식의 시와, 당시의 모습을 그려놓은 벽화>


학창 시절 좋아했던 서극 감독의 무협 영화나,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와 [천녀유혼] 그리고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와 [동사서독] 또는, 홍콩 뒷골목 청춘들의 방황을 그린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도, 그곳에는 늘 중국 문화의 향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에서 24시간이나 배를 타고 도착한 천진은, 내가 상상한 중국이 아니었다. 지저분한 항구 대합실과 화장실, 그리고 우중충한 봄비가 내리는 하늘과, 잔뜩 흐린 공기에, ‘부모님께 지리산에 1주일 갔다 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3개월의 일정으로 힘들게 찾아온, 소설 [삼국지] 속의 문화 도시가, 겨우 이런 곳이던가?’라는 실망감만이 가득했다.


내가 애정 하는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중국] 편에서는, 이런저런 숙소를 추천하고 있었지만, 빨리 천진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항구 앞에서 제일 먼저 눈에 뜨였던, 한글 안내판을 내건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어서 중국의 수도 베이징으로 달려가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동방불패와 같은 도인’들도 만나고, [패왕별희] 속 두 주인공 ‘두지’(장국영)와 ‘시투’(장풍의)를 만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이곳까지 힘들게 왔는데 베이징에 가면, 반드시 영화 속 멋진 그들이 있어야만 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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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왕별희] 속 장국영과 공리의 모습. 영화는 '패왕별희'라는 경극을 하는, 두 배우의 사랑과 우정을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 패왕별희 : 중국 초나라의 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마지막 이별 장면을 그린 작품.>


다음날 천진에서 기차를 타고, 이미 어둠이 내려 어두 컴컴하던 늦은 밤에,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설레고 기대에 부푼 마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공산국가인 중국에 대한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중국의 만리장성을 단체관광으로 와서, 일부 국한된 지역만 여행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나처럼 배낭여행으로 장기간 머무르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나폴레옹도 말하지 않았던가? ‘중국은 잠자는 거인이다. 거인이 잠에서 깨어나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나는 놀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베이징 역에 기차가 도착하자, 천진에서의 우울한 기억은 어느새 싹 지워졌고, 중국에 대한 나의 상상 속 초기값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드디어 신비의 나라, ‘인민들이 국가의 공평한 혜택을 받고 사는 나라’, ‘국가가 인민들을 보살피기 때문에 거지가 있을 수 없는 나라’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부푼 마음으로 베이징 역을 나갔는데, 내 순진한 상상이 깨진 것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꾀죄죄한 얼굴에, 3월 초이지만, 아직은 추웠던 베이징의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상당히 낡은) 두꺼운 외투를 걸친 티베트 어린아이 한 명이, 내게로 와서 손을 내밀며 구걸을 하는 거였다!


‘아!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어떻게 거지가 있단 말인가?’, ‘마오쩌둥’이 전설적인 농민군과 함께, 위대한 대장정을 통해 건설한 ‘인민의 나라’의 수도 베이징에서, 첫 번째 인민과의 만남이 거지 소년이라니...


나는 깜짝 놀라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되어 반질반질한 윤기가 나는, 낡디 낡은 티베트 전통의상을 걸치고 있던, 6살 정도밖에 안돼 보이던 그 아이는, 구걸을 한다는 게 부끄러운 행동이라 걸, 아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이와 조금 떨어진 골목 후미진 곳에서 소년의 엄마가 뭐라고 얘기를 하자, 그쪽을 한번 보더니 다시 내게 구걸을 했다.


지금이야 러시아, 동구권,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 국민들의 빈부 차이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에는 거지가 없다는 선전을, 나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선언 이후 무너지기 시작한 동구 공산권 뉴스가, 국내에 알려진 지 몇 년 안 된 시점이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국내 지식인들도 많았을 거다.


아니, 중국에 거지가 없다고 믿는 건, 순진한 나만의 믿음이라고 하더라도, 1960년대와 70년대의 프랑스 지식인, 철학자,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를 비롯한 누벨바그 세대들도, 유럽 정치의 또 다른 대안으로 ‘마오 사상’과 중국 체제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었다. 나 역시 러시아와 동유럽이 망해버린 것과 달리, 중국은 새로운 사회주의의 모범 국가를 건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물결에 개방된 중국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빈부 차이와 가난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공안의 눈을 피해 베이징역의 어두운 그늘에 서서, 아들에게 구걸을 시켜야만 하는 소수민족 엄마의 슬픈 목소리에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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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의 생활은 상당히 비참하다. 1950년에 중국이 침공해서 합병해 버렸지만, 태어날 때부터 독실한 티베트 불교도인이 되는, 티베트인들은, 종교의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


론리 플래닛에서 추천해준 베이징 숙소로 찾아가는 늦은 밤, 거지 티베트 소년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가난은 사회주의고 자본주의고 할 거 없이, 어린 소년에게 비굴한 웃음과, 추운 저녁의 배고픔만 남겨줄 뿐이었다. 또한 시장개방으로 인한 빈부 차이는, 아들을 거지로 내몰 수밖에 없는 모진 엄마를 양산해 놓고 있을 뿐이었다.


베이징에서의 첫날, 중국 문화의 멋스러운 향기를 충분히 맡고 오리라는 나의 환상은, 다 깨져 버리고 말았다.


* <연재> [중국문화의 향기를 찾아서]는 매일 1편씩 올립니다.

---- ( 내일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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