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으로 덮인 불상보다 더 반짝이던 아미산의 설봉들-
아미산에 오르기 전에 고민에 빠졌다.
중국은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성(省)과 성(省)을 이동하려면, 버스를 타던 기차를 타던, 20시간~30시간이 넘는 건 보통이다. 황산을 오른 후에 아미산으로 바로 가려면, 쓰촨 성의 성도 청두로 가야 하는데 기차와 버스로 72시간 이상은 달려야 할 거 같았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48시간 이상을 달리는 기차는 여러 번 타봤는데, 침대칸이 있다고 해도 저렴한 티켓은 문을 닫을 수 있는 쾌적한 침대 좌석이 아니다. 중국에 오기 전에 인도(india)에서 3개월간 여행할 때도 24시간이 넘는 기차 여행을 수십 번 넘게 했는데, 중국과 인도의 2등 칸 침대 좌석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2등 칸 좌석은, 기차 복도에 침대 좌석이 마치 2층 침대처럼 2칸씩 가로로 만들어져 있다. 간이침대를 기차 복도에 가로로 2개씩 매달아 놓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2등 칸 기차를 타고 48시간 이상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1층 침대를 배정받은 현지인들과 친구가 될 수밖에 없다. 48시간 이상을 계속 2층 침대에 누워만 있을 수는 없으니, 기차 복도로 내려와서 1층 침대 좌석 손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는지도 모르겠으나, 1999년 봄 당시만 해도, 베이징이나 난징, 상하이 등을 운행하는 고속 열차는 상당히 고급스러웠지만, 신장 위구르 등 중국 대륙의 서쪽 끝으로 갈수록 기차도 ‘정겹고 푸근한 낡은 기차’들이 많았다. 한 번은 중국에서 48시간은 기차, 이어서 버스로 다시 30시간 정도를 달리는 일정이 있었는데, 그때 나와 같은 기차 칸에 배정된 중국인 부부를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었다.
그 부부는 딸이 하나 있었고, 남편의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로 되어 보였는데, 식사 시간이 되면, 1층 침대에 편하게 누워있던 아내가, 반대편 의자에서 졸고 있던 남편을 발로 한번 툭 찼다. 그러면 남편은 마치 군대에서 ‘이등병이 딴짓을 하다가 고참에게 들킨 것 마냥’,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서 주섬 주섬 컵라면에 부을 뜨거운 물을 받으러 갔다. (장거리 중국 기차여행 중에는 주로 컵라면 같은 걸 식사로 먹는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면, 당연히 화장실로 가서 설거지를 하는 것도 남편이었고, 몸집이 아주 컸던 아내는 침대칸에 바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가끔 설거지를 하러 가던 그 아저씨와 얼굴이 마주쳤는데, 그 아저씨는 나를 보면 계면쩍게 웃었는데 마치 솔로인 나를 부러워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중국이 한국보다 여권(女權)이 훨씬 더 신장되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었지만,
‘아~~ 저런 식이라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구나!’
생생한 현장을 목격하고 나자, '혹시라도 기회가 생긴다 해도 중국인 여성분과 결혼하지는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물론 한국인 남편으로서 내가 식사를 차리고 설거지를 할 수도 있겠으나, 중국처럼 식사 담당은 아예 남편 몫으로 정해져 있고, 아내는 손짓이나 발짓으로 지시를 내린다면, 나처럼 게을러터진 남자는 가족에게 건강한 식단을 성실히 제공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오해하지 말아주셈~~같이 할 수는 있지만, 남편 혼자만 하는 건 좀...ㅎㅎㅎㅎㅎ )
재작년부터 중국과 한국에서 초절정 인기를 누렸던 중국 드라마 ‘삼생삼세 십리도화’에 푹 빠져서, 여자 주인공 백천 역의 ‘양미’나, 봉구 역의 ‘디리러바’ 같은 중국의 절세가인과 같이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중국 기차 안에서, 아내의 발길질에 바짝 쫄아서 벌떡 일어나던 그 아저씨를 생각하면 나는 안될 거 같았다.
기차 얘기가 길어졌는데, 아무튼 황산에 오르고 나서 아미산으로 직행하는 건 너무 힘든 여정이 될 거 같아서 진시황의 무덤이 있는 시안(서안)에 들러서 병마용갱(진시황 묘에 함께 묻힌 병사들과 말의 토기인형)을 보며 며칠을 쉬다가 아미산을 오르기 위해서 쓰촨 성으로 넘어갔다. 그동안 다녔던 중국 동쪽 해안의 도시들이 비교적 세련되고 현대적이었다면, 시안이나 쓰촨 성 등 서쪽으로 갈수록 중국의 예스러운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서, 내가 기대하던 ‘삼국지’ 속의 향기를 많이 맡아볼 수 있었다.
아미산은 중국 무협 9대 문파 중의 하나인 ‘아미파’이 본거지이다. 신필(神筆) 김용 선생이 쓴 소설 영웅문 3부작 중 [의천도룡기]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주지약’이 수련을 했던 곳이다. 영웅호색이라고 나 같은 ‘대한의 영웅’이, ‘나의 지약 동생’이 머물렀던 곳을 안 가볼 수야 없지 않겠는가?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쓰촨 성의 아미산은, 높이 3,092m의 아름다운 산으로 중국의 4대 불교 성지중 하나이다. 또한, 수많은 동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5,000여 종의 식물과 2,30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한다고 한다. 특히 아미산 정상에 자리 잡은 금정사(金頂寺)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이른 아침부터 일출이나 운해를 관람하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모인다.
아미산은 혼자 오르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담도 되고, 황산에서처럼 ‘호색한으로 몰려 쫓겨날지도 모를 요상한 체험’을 하게 될까 봐, 중국 여행사를 통해 예약을 했고, 49명의 중국 현지인과 한국인 1명인 나, 이렇게 50인이 함께 타는 미니버스에 배정되었다. 아미산으로 출발하는 아침은 4월 초순인데도, 전날 밤에 중국 쓰촨 성[四川省] 어메이현(縣)의 남서쪽에 엄청난 눈이 내려서 세상은 온통 하얀 ‘눈의 나라’였다.
미니버스를 타고 아미산을 오랐던 이른 새벽의 1시간 동안, 새벽 별빛에 반짝이던 눈을 가득 덮어쓰고 있는 울창한 나무들과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는데 동이 터오는 시간이 되자, 붉은 햇빛을 받은 산의 윤곽이 드러났고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나 역시 대자연이 주는 장엄한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는데, 거대한 산 전체가 눈으로 뒤덮인 ‘설산’을 이렇게 마주하는 건, 네팔의 안나푸르나 트랙킹 이후 처음이었는데, 안나푸르나가 무시무시한 거대함으로 인간을 압도했고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면, 아미산은 입이 다물어지기는 했지만, 감탄의 신음소리를 계속 뱉어내야 했다.
아미산 정상인 금정사는 중국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의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건립한 사찰이라고 전해지는데, 사찰 동쪽에 높이 48m의 ‘사면십방보현좌상(四面十方普賢座像)’이 금으로 덧칠해진 채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금덩어리보다, 일출에 빛나던 아미산의 눈 덮인 봉우리들이 훨씬 더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미산을 관람하고 나서, 8세기에 산자락을 깎아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인 높이가 자그마치 71미터나 되는 러산대불(樂山大佛)을 보러 갔는데, 이 불상은 세 강이 만나는 지점을 내려다보고 있어서 전망이 상당히 멋들어졌다.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끝이 안 보이게 흘러가는 거대한 강줄기를 바라보니, 마음의 크기가 한 자락은 더 자란 듯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71미터 높이의 러산대불. 산을 깎아 만들었는데 정말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