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의 장민을 만나기 위해
운남성으로

-소오강호에서 동방불패까지-

by 이안

주성치 주연의 [무장원 소걸아]라는 코믹 무협영화가 있다.

망나니로 살던 부잣집 도련님 주인공(주성치)이, 아름다운 여인(장민)을 얻기 위해서, 황제가 주최한 무술 시합에 나가고, 우여곡절 끝에 황제의 미움을 사, 거지가 되었지만 다시 복수에 성공한다. 뭐 이런 내용인데, 희극지왕 주성치 특유의 기절초풍, 황당무계, 코믹 무협의 집대성 같은 영화다.


한국 사회에서 80년대와 90년대는 홍콩 영화의 시대였다.

정통 사극 무협부터 코믹 무협, 현대식 퓨전 무협까지 온갖 무협영화가 세대를 초월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다. 또한 '홍콩 르와르'라고 해서, 주윤발과 장국영 등의 [영웅본색]으로 대표되는 뒷골목 깡패들의 영화 또한 모든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로망이었는데, ‘윤발이 형님’이 100달러짜리 지폐에 불을 지펴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 반해, 모든 흡연자들이 종이에 불을 붙여서 흉내를 내던 시대이기도 했다.


당시는 홍콩영화가 한국영화보다 훨씬 더 인기가 많았지만,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홍콩 영화계는 점점 활력을 잃어 갔고 이후, 중화권 영화의 주도권은 중국 본토의 거대 시스템과 대만의 소규모 청춘 멜로물이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물론 90년대 초반에 이미, 중국 장이머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이나 [국두], 천 카이커 감독의 [패왕별희] 같은 명작이 전세게적으로 상당한 화제와 인기를 모은 걸 보면, 홍콩 영화계의 인맥 외에, 중국 본토에도 실력 있는 영화계 인사들이 상당했던 걸로 보인다.


윈난성(운남성)의 다리와 리장을 얘기하기 전에, 홍콩 영화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내가 사랑하던 홍콩 여배우 ‘장민’을 말하기 위해서다. 나는 ‘장민’을 신필 김용 선생의 명저 [소오강호]를 영화화한 동명의 영화 [소오강호](1990)에서 처음 보자마자, ‘장민은 내꺼 하며, 찜!’하게 되었다. 물론 [동방불패 2]의 임청하를 만나기 전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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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첫눈에 사랑에 빠졌던 소오강호 속 장민의 아름다운 모습 >


임청하는 동방불패 개봉 이후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어서 주윤발과 왕조현이 그랬던 것처럼 내한했고, MBC 예능 [일밤]에도 출연했었다. 그때 청하 누님을 국내 TV에서 뵐 수 있다는 생각에 손을 꼽아 일밤을 기다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소오강호]의 ‘내꺼 장민’을 주성치의 걸작 [무장원 소걸아]에서도 만나보았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청하 누님에게 가 있었고, 이후 청하 누님에 대한 짝사랑은 왕가위 감독이 [중경삼림] 속 장만옥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내가 1999년 중국 운남성에 간 유일한 이유는, 나의 첫 짝사랑 (중국 여배우 한정, 첫 짝사랑이 넘후 넘후 많음)이었던, 바로 그녀 [장민]때문이었다. 불세출의 무협 배우였던 허관걸이 주인공 영호충역을 백만 퍼센트 소화해낸 [소오강호]에서, 장민은 운난성의 소수민족 족장으로 나온다.


그 소수민족들은 지네나 독거미 등의 독충 혹은, 뱀을 무기로 쓰는데. 팔을 한번 휘두르면 뱀이 총알처럼 수백 마리가 발사된다. 영화 속 장민이 입었던 소주 민족들의 의상이 너무 예뻤고 또 그들의 전통문화가 독특하고 화려해서 '언젠가는 나도 운남성에 꼭 가보리라' 결심했던 걸 실행에 옮긴 것이다. '나도 운남성에 가면 독충을 마구 발사해대는 고수를 만나서 한 수 배울 수도 있겠다'라는 황당무계한 생각도 했는데 막상 가보니, 강호의 독충 고수는 만나지 못하고, 10미터 떨어진 위치에 놓인 찻잔에 찻물을 따르는 '주전자 고수'는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애호가들이 있는 보이차의 고향이 바로 운남성이다. 차문화가 발달하다 보니, 차를 따르는 묘기도 많이 하는데, 운남성의 성도 쿤밍(곤명)에서 이름난 찻집에 가면 주둥이를 2~3미터 정도 길게 만든 주전자를 사용해서, 종업원들이 5미터~1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찻잔 속으로 정확하게 차를 따른다.

(차는 그냥 내가 따라도 되니, 독충 고수나 불러주지능.....ㅠㅠ)


윈난성(운남성)과 관련해서는 삼국지에도 ‘칠종칠금 (七縱七擒)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유비의 나라 촉(蜀)의 재상 제갈량이 남만(지금의 운남성)이 반란을 일으키자 남만 정벌에 나섰다. 그곳에 남만의 왕 맹획을 7번 잡았으나 7번 풀어주었다 해서 '종금칠획'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는데, 이에 감동을 받은 맹획은 촉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대목이다. 중국의 삼국시대부터 윈난성에는 중국 본토의 한족과는 다른 소수민족이 많이 살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쿤밍[昆明, 곤명]에서 ‘차 묘기’와 여러 사찰을 관람하고, 쿤밍 서쪽 약 260km의 얼하이(洱海) 호수 서안, 해발고도 2,086m의 고지에 위치한 다리(Dali, 大理(대리)로 이동했다. [다리]는 여름 기온은 20℃를 넘고 겨울에는 온난해서 예로부터 벼농사가 발달했고, 당(唐) 나라 때에는 남조국(南詔國), 송(宋) 나라 때에는 대리국(大理國)의 도읍지로 번창했었다. 대리국 하니 아는 게 병이라서, 또 무협지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역시 신필 김용 선생의 대하장편소설 [천룡팔부, 전 10권]를 보면, 지금은 소실되어 없어진 대리국의 면모가 아주 상세히 나온다.


내가 [다리(대리)]를 갔던 1999년만 해도 쿤밍에서 다리까지 기차로 8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지금은 급행열차가 생겨서 3시간 이면 간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엔 아직도 예스러운 중국 북송 시절 대리국의 감성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현대식 관광지 느낌이 많이 나서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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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가옥의 모습이 아직도 건재한 운남성의 마을들>


다리를 둘러싼 성벽 안쪽에 위치한 구시가지는 중국 내에서도 참 쾌적하면서도 중국 송나라 시절의 문화의 향기가 많이 남아있는 멋스러운 곳이었다. 이미 1999년부터 운남성의 다리는 해외 배낭여행객들에도 유명해서 내가 3개월 동안 머물렀던 중국 일정 중에서 서양의 젊은 배낭여행객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카페나 레스토랑 등에서 중국 관광지라기보다는 태국의 치앙마이나, 유럽의 작고 예쁜 소도시 같은 느낌도 강했다.


[다리]는 불교가 융성했던 곳이라서 관련 유적지도 상당히 많은데, [다리]에서 예스러운 골목과 찻집들 그리고 유적지들을 여유롭게 돌아보면서 그동안 힘들었던 중국 기행의 피로가 다 풀리는 듯했다. 3개월의 중국 여정 중에서 '꼭 다시 가고 싶은 곳 3곳을 꼽으라면' 단연 운남성의 [다리]와 [리장]을 선택하고 싶다. 밤마다 볼 수 있던 소수민족들의 문화공연과 음악 연주도 멋졌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의 전통문화를 연상시키는 소수민족들의 의상과 생활방식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어서 즐거운 체험이었다.


다리에 이어 방문했던 리장은 해발 2400m의 고원도시라서 이른 봄에도 설산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느껴졌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리장 고대마을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모계 전통이 강한 리장에서는 아직도 할머니들이 남색 전통 의상과, 대나무로 엮은 가방을 등에 메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그 모습이 참 고풍스러웠다.


특히 리장의 고대 가옥들과, 돌담들, 그리고 구시가지 마을을 흘러가던 맑은 시냇물 등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자꾸 사진기를 눌러 댈 수밖에 없었다. 리장에서의 마지막 날, 뒷산에 올라 리장 전통 가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당시에 내가 필름 카메라도 찍은 사진은 없어졌지만, 인터넷에서 구한 사진을 대신 걸어둔다. 우리나라의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의 양동 마을 같은 오래전 전통 가옥에서 위안과 휴식을 얻고자 하는 여행자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나의 베스트 여행지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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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성 리장의 아름다운 전통 가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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