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잔영이 사라지고 사막의 별이 떠올랐다.

-사막의 더위를 식혀주던 바람과 별-

by 이안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 편 3]에서, 둔황을 떠나 투르판으로 이동하는데, 고비사막은 밤기차로 이동하고, 이후 투르판까지는 버스를 탔다고 적었다. 그래서 현장법사가 닷새 동안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다가, 늙은 말이 샘물을 찾아내는 덕에 간신히 살아났다는, ‘악마의 고비사막’을 볼 수 없었던 게 많이 아쉬웠다는 소회를 밝혔다.


1999년 봄에 나는, 밤기차 편이 여의치 않았고 또 당시에는 젊었기에 사막을 버스로 횡단해보고 싶어서, 둔황에서 투르판까지 버스로 이동했었다. 덕분에 한국 사람이 평생 동안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막 폭풍을, 여러 번 경험할 수 있었다. 20인 정도를 태울 수 있었던, ‘고비사막 횡단용’ 중국 신장의 낡고 털털거리던 버스는, 폭풍이 불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폭풍이 멎을 때까지 정차를 했는데, 그럴 때면 창문을 꼭 닫고 수건으로 입을 막아야 했다.


털털거리는 낡은 버스의 창문도 세월의 연륜이 있어서인지,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이 워낙 강력해서인지, 닫힌 창문으로도 모래바람은 여지없이 들어와 머리카락을 온통 모래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중국 기행을 한 지 20여 년이 지나고 나서, 내게 탈모가 시작되고 있는데, 원인이 우리 집안의 대머리 유전자 때문이 아니고, 고비사막의 중금속을 함유한 모래를 당시에 너무 많이 뒤집어썼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고비사막을 건너기 전에 주위 여행객들에게서, 모래폭풍이 불 때면 사막에서 손바닥을 펴고 들여다봐도 손금이 안 보일 정도라고 했는데 과연 그 말이 실감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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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비사막을 건너는 낙타들>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허리와 엉치뼈를 고통스럽게 만들던, 50시간 인지 60시간이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는, 사막 여정도 ‘이 역시 지나가리라’는 예언처럼 끝나고, 꿈에도 그리던 나의 오아시스 ‘투르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투르판은 날씨는 더웠지만 온화한 분위가 감도는 안락한 도시였다. 사막 오아시스에 만들어진 중국 소수민족의 삶의 터전이, 북경이나 상하이의 부자 한족들이 사는 동네보다 내겐 더 포근하게 느껴졌다. 중국은 땅덩어리는 엄청 큰 대륙이지만, 동쪽 끝 헤이룽장성의 성도 하얼빈부터, 서쪽 끝 신장성의 카슈가르까지 다 베이징 표준시를 쓰기 때문에, 투르판에서는 봄에도 (베이징 시간으로) 저녁 8시는 넘어야, 우리나라로 치면 오후 6시쯤의 해넘이가 시작되었다.


투르판의 해질 무렵은, 고비사막의 모래 봉우리들이 아찔하게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투르판 중앙광장의 전통시장이 활기를 찾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막의 날씨답게 아침부터 뜨거웠던 해가 지고 나면,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와 휴식을 취하면서 고됐던 하루에 대한 보상을 받거나, 양꼬치구이에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즐겼기 때문이다.


나도 저녁마다 그곳에 가서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갓 잡은 신선한 양꼬치구이’를 먹었는데, 한 꼬치에 1위안(150원)을 받던 아저씨한테 죄송할 정도로, 다섯이 먹다가 열이 죽어도 모를 만큼 육질은 쫄깃쫄깃, 육즙은 달콤, 기가 막힌 맛이었다. 3개월 동안 중국 기행을 하면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 2가지를 고르라면, 투르판에서 먹었던 양꼬치와, 카슈가르에서 먹었던 양고기 볶음국수였다. 이젠 나이가 들어, 그렇게 힘든 여행을 다시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20여 년 전에 내가 먹었던 그 음식을 그대로 다시 준다면, 오늘 밤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신장으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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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에게는 미안하기도 하지만, 갓 잡은 양꼬치 구이가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는~~>


신장에 머무르는 동안, 밤이 되면, 종종 숙소 옥상에 올라서, 맥주 한 병을 비우며 서쪽 사막으로 이미 넘어가 버린 햇빛의 잔영이 사라져 가는 걸 지켜봤다. 빛의 잔영이 지워질수록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둘씩 떠올랐고, 그럴 때면 저 멀리 사막에서부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사막 오아시스 도시 투르판의 더위를 식혀주었다.


‘사막의 밤과 별’에 대해서는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더 있는데, 나는 인도의 서쪽 라자스탄주에 있는 자이살메르 사막과,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도 여행했었다. 낙타를 타고 떠난 인도 자이살메르 사막 여행의 묘미는 느긋함과,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신비함이었다.


터번을 쓴 여행 가이드 인도 아저씨 한 명과, 9살 소년이 낙타를 번갈아 몰면서 나를 인도해줬는데, 하루 3번 먹었던 감자만 넣은 카레와 밥을 만드는 식사 시간 외에는, 낙타를 타고 가다가 힘들면 나무 그늘 아래서 쉬었고, 소년과 나는 하릴없는 장난을 쳤다. 그런 한가로운 시간에 아저씨는 이슬람식 기도를 올렸고, 가장 짧아졌던 나무의 그림자가 다시 길어지면 우린 길을 떠났다.


나는 아저씨에게 "아무런 이정표도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2박 3일 동안 길을 찾느냐?"라고 물었는데, 아저씨는 그냥 손으로 앞을 가리키면서, "내 눈에는 모래 위의 길이 보인다"라고 답했다. 내 눈에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햇빛을 튕겨내는 반짝이는 모래와,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검은 모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검은 모래는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더 까맣게 되나 보다’하는 멍청한 생각과 함께.


인도의 사막에서 나의 낙타를 잡아주었던 9살의 어린 소년이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이른 나이부터 사막의 길을 익히고 있듯이, 가이드 아저씨 역시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길안내를 배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수백전에도 지금이 우리들처럼, 낙타와 간단한 식사 거리만을 갖고 이 길을 걸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탔던 낙타를 무척이나 애지중지 하던 그 아저씨는, 혹시라도 내 몸무게에(당시 내 몸무게는 56킬로 밖에 되지 않았다) 낙타의 허리라도 다칠까 봐 노심초사했었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엉치뼈가 아프다는 핑계로 걸어서 가겠다고 하자 반색을 하며 좋아했었다.


2박 3일의 자이살메르 횡단 여정을 짤 때, 가격이 어떻게 되냐고 묻자 아저씨는 두 가지 있는데, ‘One is uder the sky, and the other is under the tent’라고 말했었다. 무슨 말인가 했는데, 전자는 하늘을 이불 삼아 아무것도 없이 사막의 모래 위에서 그냥 노숙을 하는 저렴한 상품이고, 후자는 텐트에서 잘 수 있는 비싼 상품이라는 거였다. 나는 Under the sky라는 말이 예뻐서 저렴한 상품을 택했는데, 덕분에 평생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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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와 초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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