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브런치에 중국 기행문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에 썼던 [광활한 대륙, 다면적 평가]를 다시 읽어보았다.
<중국 문화의 향기를 찾아서>의 머리글에 해당하는 위 글에서, 나는 나름 거창한 포부를 밝혔지만, 제대로 지켜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비록 3개월 동안, 중국 대륙의 서쪽 [텐진]에서, 동쪽 끝 신장 위구르의 [카슈가르]까지 중국 대륙을 횡단했다지만, 중국이라는 대륙은 너무나도 거대했고, 그 안에 사는 십억 명이 넘는 중국인들은 다양했다. 나의 짧은 여행 경험으로 중국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지나친 무지와 욕심의 소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필자의 20대 끝자락에 중국을 여행하면서 20여 개의 도시를 다녔던 경험은, 나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처음에는 ‘삼국지의 마니아’이자, 홍콩의 무협영화와, 김용 선생의 [영웅문]을 비롯한 무협지에 대한 환상에서 무작정 중국으로 떠나는 배를 인천에서 탔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해서 [동방불패]의 임청하와, [중경삼림]의 장만옥과 같은 아름다운 여인과의 ‘썸’은 ‘1도 없었고’, 강호의 고수를 만나 뒷골목의 불량배쯤은 단숨에 때려눕힐 수 있는 무공을 배우겠다는 꿈도 이루지 못했다.
<중국을 긴 시간 동안 여행했지만 나의 사랑 임청하 누님과의 만남은 없었다 ^^. 당연했다 청하 누님은 홍콩에 사시니까...>
그렇지만, 막연한 두려움과 환상을 갖고 있던 중국이라는 ‘비밀스러운 거인’에 대해서 하나 둘 알아 갈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곳에서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소수민족과 한(漢) 족도 많이 있었다.
한 번은 내가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쑤저우’에 밤에 도착해서 숙소를 정하지 못하고 있자,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재워준 상하이의 젊은 직장인도 있었고, 중국어에 서툰 나를 보고, 먼저 다가와서 본인의 대학 기숙사 방에서 재워준 [절강성 공업대학]의 조선족 엘리트 청년도 있었다. 중국 대륙의 서남쪽으로 갈수록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소수민족들은, 경제적으로는 한(漢) 족보다 가난한 사람들이었지만, 멀리 한국에서 온 외지인에게도 친절하고 본인들의 ‘거친 삶’에서도 행복을 찾으려는 분들이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88년에, 우리 사회에서는 중국어 열풍이 불었었다. 덩샤오핑의 중국 경제개방 정책으로 앞으로 중국 시장이 한국 경제에 매우 중요 해질 테니, 영어보다 중국어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중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 되었고, 국내 기업 [이랜드]를 비롯해서, [아모레퍼시픽]등 국내 화장품 업체 등, 중국 소비자 덕분에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간 기업들도 많이 생겨났다. 물론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그 위상이 공고한 삼성전자, LG, 현대차, SK 등도 중국 시장에 매우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부당한 보복으로, 롯데 등 우리나라의 대형 유통업체가 많은 적자를 안고 철수한 사례도 여럿 있었다. 대중문화와 관련해서는 20여 년 전부터 한류 바람이 서서히 불다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었고 지금은 다시 주춤한 상태다. 그 사이에 ‘중드’라고 불리는 중국 드라마의 마니아층이 한국에서도 제법 많이 생기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중드 [삼생삼세 십리도화]의 한 장면. 나의 또 다른 사랑, 여자 주인공 양미 동생은 상하이에 살고 있지만, 필자와 양미 동생과의 만남 역시, '1도 없었다'. >
중국은 이처럼 늘 변화하는 거인이다.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를 여러 번 침략해서 우리 민족에게 큰 고통을 주었고,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을 목숨처럼 여기던 사대부들이 명나라에 ‘사대의 예’를 갖추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물론 나라 경제를 위해서도 중국에 어쩔 수 없이 잘 보여야 하는 실용과, 대등한 상호 외교를 펼치며 나라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절충의 지혜로움’도 반드시 필요하다.
겉으로는 중국과 상당히 가까운 관계로 보였던 북한의 김정일 전 위원장도 유서에서, “역사적으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면서 “중국은 현재 우리와 가장 가까운 국가지만 앞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국가가 될 수 있는 나라”라면서 “그들(중국)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경고했었다. 그만큼 중국은 까다롭고, 그러기에 잘 배우고 알아야만 하는 ‘이웃 나라’이다.
이번에 연재한 <중국 문화의 향기를 찾아서>는 20년 전의 기억을 되짚으면서 쓰다 보니,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흥미 위주의 사건을 중심으로 쓰여서, 중국에 대한 ‘통찰력’을 들려줄 만한 내용은 많이 부족했다. 20년 전에 내가 중국기행을 하고 나서 바로 기록을 남겨 두었다면, '지금 훨씬 더 좋은 기행문 연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많이 남았다.
그때는 필름 카메라로 2,000장이 넘는 진귀한 사진도 많이 찍었었는데, 몇 번 집을 옮기면서 다 없애버리고 말았다. 그러기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부족한 기록을 남겨두면, 후에 다시 중국을 여행하고 많은 공부를 한 뒤에, 더 좋은 글을 쓸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쓸 용기를 냈었다.
아직도 미처 얘기하지 못한 도시들과, 사람들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남아있다. 특히 티베트를 가기 위해서, 들렀던 간수성의 란조우와 샤허 그리고, 전 세계의 오지 탐험가들이 ‘죽기 전에 반드시 가고 싶은 10대 명소’로 꼽는, 카슈가르에서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그렇다. 특히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1년 동안 배낭을 메고 돌아다녔던 인도와 중국, 유럽의 많은 여행지 중에서, 다시 가고 싶은 곳 공동 1위이기도 하다. (또 다른 공동 1위는,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국경지대이다).
<히말라야의 절경을 뚫고 지나가는 중국 최서단과 파키스탄의 국경을 잇는 카라코람 하이웨이>
하지만 [브런치 북]을 빨리 발간하고 싶은 욕심에 여기서 마무리를 짓는다. 카슈가르는 중국령이지만 문화적, 지리적으로 파키스탄과 더 가깝기에, 3개월 동안 머물렀던 인도 여행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그때 상세히 언급하고 싶다.
그동안 피터팬 PD의 <중국 문화의 향기를 찾아서>를 사랑해주신 모든 구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