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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Jun 08. 2021

들개와 친해지는건 사회악 일까?

-피터팬의 버려진 개 돌보기(3)-

평창동 들개 출몰 사건의 간략한 개요는 이렇다.

1. 4월 중순부터 평창 파출소 앞 평창 11길에, 주인 없는 개 2마리가 나타났다.
크기는 1미터가 넘어 작은 개는 아니었지만, 2살~3살 정도로 젊어 보였다.  
(이 둘은 남편과 아내라서 항상 같이 다닌다)      

2. 5월 초순부터 비슷한 크기의 수컷 개 한 마리가 더 나타나서 총 3마리 되었다.
하지만 뉴페이스인 새로 나타난 개는, 먼저 나타난 2마리의 개와 함께 다니지는 않았다.      

3. 먼저 나타난 두 마리의 커플 개는 주로 밤에 나타나서 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가는데,
이미 야생화가 많이 진행되어서 사람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생활 영역을 갖고 있다.
      
4. 늦게 나타난 또 한 마리의 개는 비교적 최근에 주인과 헤어진 듯, 동네 아주머니들이 길을 걸아가면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듯 따라나선다.
이 놈은 아직 자신이 버려졌다는(혹은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다른 일반적인 개들도 그렇듯 성인 남자를 보면 두려워해서, 성인 남자를 보면 피한다.      

5.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수컷과, 흰색의 커플 들개가 깊은 밤에 은밀히 스윽~ 나타나면,
동네 개들이 일제히 짖어대서 그들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 피터팬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먹이를 준다.      


<오늘 밤에도 피터팬이 서 있는 곳에서 30미터 정도 떨어진 건너편 골목에서 갈색 유기견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녀석은 내가 자신에게 다가가서 먹이를 줄 때까지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


밤에 우리 동네에 나타나는 들개와 피터팬은 일종의 줄다리기 같은 걸 하고 있는데, 피터팬이 다가서면 그들은 도망가고 피터팬이 안 보이는 곳으로 숨으면 그들이 다가온다. 가로등이 서 있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꽤 긴 시간 동안 서로 눈치싸움을 하기도 한다. 갈색 들개는 외모는 좀 사납게 생겼지만, 머리는 상당히 좋아 보이는데 피터팬이 이 동네에서 먹이를 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또 어디에 가면 피터팬을 만날 수 있는 지도 알고 있다.      


갈색 수컷 개는 피터팬에게 맛있는 육포를 얻어먹고 싶으면, 평창 11길과 평창 14길이 갈라지는 삼거리로 와서 서성인다. 그러면 동네 개들이 짖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나타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 와서 3거리 주변을 맴돌면서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갈색 들개는 피터팬과 일종의 '밀당' 같은 걸 즐기는데, 서서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으면, '팔자 좋게' 앉아서 내가 오기를 기다린다 >


옆집의 큰 골든리트리버가 무서워서 피터팬 집 앞까지는 오지 못하지만, 녀석은 손자병법이라도 읽었는지 이이 재이(以夷制夷) 전략을 알고 있다. 골든리트리버의 사나운 짖음이 피터팬을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녀석은 길 건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집개들의 성질을 돋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자신보다 힘이 더 세고 무서운 개가 사납게 짖어대는 걸,
자신이 육포를 얻어먹을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ajyW0eqJPc

<영상 1. 우리 동네에 들개 2마리가 나타나자 예외 없이 옆집 골든리트리버가 사납게 짖어댔고, 피터팬은 밖으로 나가서 육포를 던져 주었다. 하지만 하얀색 암캐는 사람을 무서워해서 가까이 오지 않고 수컷만 용감하게 다가와서 먹이를 받아먹는다. 하지만 이 녀석도 사람을 경계해서 먹이를 물면 잽싸게 뒤로 돌아가서 다 먹고 나서야 다시 돌아온다>


서울에서도 제법 잘 사는 동네에 속하는 평창동에 들개가 출몰하는 것에 대한 동네 주민들의 의견은 대략 아래와 같다.      


1. 저도 봤어요! 험상궂게 생겼는데 아이들에게 위험하지 않겠어요? 경찰에 신고해야죠.
구청에서는 잡아가지 않고 뭐 한 대요? 

2. 불쌍해서 어떡해요. 주인이 버렸나 봐요. 순진해 보이던데....
(들개를 불쌍히 여기는 분들은 거의 자신의 집에서도 개를 키우는 분들이다. 자신의 개를 아끼기 때문에 주인 없는 개들한테도 측은지심을 갖고 있다.)

3. 들개는 쫒아야 돼! 쟤네들 계속 이 동네에 오게 하면 안 된다고!

4. 길냥이들한테 먹이를 주는 것처럼, 얘네들을 위해서도 일정한 장소에 먹이를 놓으면 들개들이 배고픔에 자칫 난폭해지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5. 동네 주민 누군가가 구청에 강력히 항의해서 포획단이 가끔 오더라고요! 그런데 얘네들은 잡혀가면 안락사되는 거 아닐까요?      


실제로 이들 들개가 포획단에게 잡혀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유기동물 보호소]에 가게 되면, 이들은 안락사를 당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의 '공공 유기동물 보호소'의 규정은, 보호소에 도착한 반려동물을 입양해줄 사람이 14일 안에 나타나지 않을 때엔 이들을 안락사시키게 되어 있다. 


공공 유기동물 보호소의 이런 규정으로 인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매해 15만 마리 정도의 반려동물이 안락사된다. 더구나 우리 동네에 나타난 들개들은 크기가 제법 크기 때문에 작고 귀여운 댕댕이들보다 입양될 확률이 훨씬 낮을 듯하다. (개인이 운영하는 프라이빗 보호소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서 규정이 다르다))


피터팬은 고민에 빠졌다. 

1) 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면 이들은 어떻게 될까? 
배고픔에 지친 시간이 길어지면 오히려 더 야생화 돼서 더 위험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닐까? 

2) 피터팬이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들의 (추정) 이동 경로로 볼 때, 이들은 하루 또는 이틀에 1~2번 정도 평창동과 정릉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계속 돌고 있으니까, 
어차피 이 동네 또는 이웃 동네 어딘가에서 먹이를 구하려고 하지 않을까?

3) 인간이 먹이를 주면, 이들은 동네 주민들에게 위협이 될까?

4) 유기견 포획단은 이들이 나타나는 시간도, 또 이들의 습성도 모르니까, 그야말로 오리무중의 상황 속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차를 몰고 나오는데, 포획단을 돕는 게 옳은 일일까? 
그렇게 포획이 되면 이들은 14일 안에 안락사를 당할 텐데...     

5) 동네 할머니 말씀으로는 들개들은 절대로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고 하시던데,
이들에게 지금처럼 먹이를 준다고 이들이 과연 길들여질까? 


https://www.youtube.com/watch?v=ytbU8pl8RNY

<동네 주민분 중 한 분은 저녁마다 셰퍼드와 골든리트리버를 산책시키시는데, 들개가 나타나면 셰퍼드로 멀리 쫓으신다. 들개가 우리 동네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 

<우리 동네에는 길냥이들도 상당히 많은 편인데, 얼마 전부터 보이던 흰색 길냥이가 우리 집 담장에 앉아서 피터팬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들개에게 먹이를 줬던 사람인 걸 알고 자신에게도 맛있는 간식을 달라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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