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장마가 다시 시작될 거라고 하더니, 한 여름 소나기 같은 굵은 비가 제법 내린다. 일요일을 지나 월요일로 향해가는 새벽 1시 15분.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내가 머물고 있는 익선동의 작은 숙소 외벽이 요란하다.
월정사를 나오고 얼마의 돈이 있었고, 그 돈으로 서울에서 머물면서 빨리 새 직장을 구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연이은 낙방 소식에 생활비가 거의 떨어져 가고 있다. 덕분에 지난 3주 동안 4번의 숙소를 옮기면서 방 크기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자리 잡은 3평 남짓 작은 방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들판에서 방목하는 양 떼 같은 정처 없는 생활을 한 지 4주가 되어 가는데, 익선동의 제일 작은 방에 머물고 있는 지금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
아마도 내 어린 시절의 고향이 서울시 도동구 쌍문동 수유리의 가난한 동네였고, 젊은 시절에도 인도와 네팔 중국을 여행하던 오랜 기간 동안, 6인 이상의 도미토리 숙소에서 주로 머물렀던 탓에 이런 불편한 궁핍함이 오히려 내 마음을 더 편하게 하는 듯하다.
자정이 넘어 빗방울이 거칠어 지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시 밖으로 나가봤다. 누군가는 우산이 없어 골목을 바삐 뛰어갔고, 또 누군가는 공중전화박스 같은 작은 가건물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이런 오래된 동네의 작은 골목들은 내게도 많은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나 역시 어리석은 사랑을 했던 숱한 젊은 날들에,
술에 취해 밤에 취해, 한국통신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서 짝사랑하는 그녀에게 참으로 애닳고 바보 같은 고백을 했었다. 그때 손에 땀이 흥건히 베이도록 잡고 있던 전화기의 촉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다시 비가 오니,
가을로 가는 이 즈음의 계절에 모든 청춘들의 어리석은 사랑은 어디에서 안식처를 구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번 비는 제법 오래 내릴 듯하다.
어둠이 짙어가고 새벽이 더 깊어지자 비가 더욱 세게 내린다.
그리고 누군가는, 비를 피해서 낡은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참으로 오랫동안 머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