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삭 속았수다]의 계급성 문제에 관하여

by 이안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폭삭 속았수다]에 4.3항쟁이 나오지 않았다는 문제제기에 대하여 나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드라마의 역사성과 계급의식 그리고 예술정신에 관하여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채) 나의 생각을 밝힌다.


1. 드라마에서는 애순(아이유 분) 아버지의 죽음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초반에 그저 아버지가 죽었고, 남편이 죽었기에 살아남은 가족의 가장이 된 애순 모(염혜란 분)와 애순의 애달픈 삶을 그린다. 애순의 모는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서 목숨을 맞바꿔야 하는 물질(해녀)을 하며 살다 결국 죽음에 이른다.


특히 애순의 할머니 춘옥(나문희 분)은 드라마 속에서 수차례, 큰 아들(애순 부)의 죽음에 억장이 무너지는 설움을 토해내면서 죽은 자식을 자신의 가슴속에 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토록 절절히 아파하면서도 죽음의 원인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48년에 발발한 제주 4.3 항쟁은,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해 주민들이 저항하다 무참히 희생된 사건이다. 특히 당시에 25만에 달하던 제주 인구의 거의 1/3에 해당하는 8만여 명(최대치)에서 1/5까지 학살당했다고 전해지기에 6.25 한국 전쟁 다음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이 정도 사망자가 나왔다는 건, 거의 한 집당 혹은 한 집 걸러 한 명씩의 가족이 학살당했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토록 처참한 탄압이 있었기에 4.3 이후에 제주도민은 오랜 기간 그저 그 억울함을 가슴에 묻고 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일부에서 지적하는 애순이 항구에서 "엄니도 아버지도 다 바다에 잃었다"며 우는 장면에서 애순 부의 죽음의 원인을 찾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 당시 이승만 정권 상황에서 어린 애순에게 아버지 죽음의 원인을 사실대로 말해 줄 주위 어른들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특히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다수 해녀들은 남편이 없어 보이는 듯이 등장한다. (물론 드라마 설정상 남편 등장이 굳이 필요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으나, 당시에 4.3 항쟁으로 희생당한 인구수를 추정해 보면 남편을 잃은 해녀가 많았으리라는 점은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통해 우리는 애순의 아버지 역시 4.3 항쟁의 희생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이라고 할 때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이를 직접적으로 적시해야만 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특정 장면을 통해서 드러내야만 역사/계급의식이 뛰어난 드라마일까?

3. 1970년대 가장 뛰어난 민중소설중 하나로, 우리는 흔히 [난쏘공](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언급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이후 80년대 후반부터 크게 유행했던 다수의 리얼리즘 소설들처럼 계급투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외된 도시하층민의 고통을 환상적 분위기로 다룬다. 하지만 다소 몽환적이기도 한 작가의 표현을 통해서도 우리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이런 조세희 작가의 문체와 설정에서 문학의 위대함을 느끼기도 한다.


4. [폭삭 속았수다] 역시 4.3 항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않지만(적어도 아직까지는.... 마지막 회쯤 애순의 할머니(나문희)의 회상 씬을 통해서 아들이 4.3으로 희생됐다고 말할지 또 누가 알겠는가?) 당시 제주도에서 아버지이자, 아들, 남편을 잃고 눈물겹도록 가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감동적으로 이미 그려내고 있다. 비극적인 역사에서 살아남은 혹은 버려진 이들의 삶을 통해서 이미 역사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5. 드라마 속 거의 유일한 자본가 역할을 하는 성격 파탄자 부상길(소위 학씨!)은 가난한 이들을 핍박하는 부자로 나온다. 이 장면에서도 우리는 쉽게 당시 자본가들이란 족속들의 속성을 알 수 있는데, 이미 부상길의 부친 때부터 부자였다는 설정은, 이 집안이 과거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였고 그런 이유로 민중의 고통쯤은 아주 똥으로 여기는 악덕 지주의 집안이었을 것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학씨! 일가가 어촌계에서 완장을 차고 부조리하게 권력을 휘둘렀다는 해녀들의 증언을 보면, 부상길에게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그리고 지금의 [국민의 힘]까지 이어지는 부당한 권력자에 부역하던 모리배들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 않나?


6. 반면 이 드라마에서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힘없을 수 있는 애순(아이유 분)을 어촌계의 부계장으로, 가장 힘없는 해녀들이 추대해서 선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이 드라마가 역사성과 계급성을 성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7. 예술은 역사성과 계급성을 직접적으로 말하면서 드러낼 수도 있지만, 행간을 통해서 혹은 은유를 통해서 또는 오히려 침묵함으로써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로 평가받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 년의 고독] 역시, 어떤 소설보다 계급성을 말하고 있지 않는 듯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구사하지만, 동시에 그 어떤 소설보다 15세기 이후 학살당하고 탄압받으면서 살아온 남미 민중의 삶을 절절히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8. 설혹 애순의 아버지가 4.3의 희생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4.3이라는 역사의 아픔이 지나고 난 후, 분노와 울분을 간직한 채 살아남아, 현실이라는 역사를 살아내야만 했던 많은 등장인물들, 애순, 애순의 어머니, 애순의 할머니, 다수의 해녀들, 가난하고 굶주리고 헐벗었던 당시의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역사의식을 갖고, 또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인간적인 연민으로 살아남은 자의 세상을 온몸으로 감당해야만 했던 당시 사람들의 삶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지 않은가? 이런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야 말로 뛰어난 역사/계급의식이 있는 예술 작품이 아니겠는가?


PS. "제목 '폭싹 속았수다'는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제주어 표기법에 의거하면 쌍시옷 받침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폭삭 속앗수다' 또는 '폭삭 속앗우다'가 맞는 표현이다."라는 지적에 대한 이안작가의 생각.


드라마에서 제주도 방언의 구현 및 표기법 관련해서는 노희경 작가의 명작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많이 제기되었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 넷플릭스 [폭삭...]에서도 1950년대~90년대를 거쳐오면서 실제 제주도에서 사용했던 제주도 방언은 단어 몇 개와 문장의 어미만을 쓰는 식으로 '흉내 내는 정도'에서 타협점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제주 방언에 대한 몰이해나 오류라는 지적보다는 제작진의 의도였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1950년대 제주도 해녀들이 실제로 쓰던 방언으로 드라마를 찍으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테니까.


대사뿐만 아니라 표기법에 있어서도 대한민국에서 표준어를 구사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더 이해되기 쉬운 친절한 방식을 찾았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제주도 방언은 '구현 문제'보다는, 오히려 현재의 우리들에게 '번역의 문제'가 더 크게 대두된다고 할 수 있으니까.

참고로 마크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의 경우, 실제 원문은 굉장히 심한 미국 남부의 어투(사투리)로 쓰여졌는데, 그래서 민음사간 해당 작품의 경우, 대사의 상당 부분이 전라도 사투리를 인용, "톰이 거길 갔당께라~~" 라고 번역되어 있다. 원문에 충실했다는 번역자의 변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번역이 현대 독자들에게 더 친절한 방식인지, 원문을 더 잘 구현했다고 봐야 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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