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안 Sep 20. 2020

냥이 [키키]를 잃어버렸었어요!

-키키야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체력에 비쩍 마른 중년의 아저씨인 음악 PD 피터팬은, 오늘 저녁에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뻔했다. 정말 이렇게 심장이 쿵 떨어지면서, 식은땀이 계속 흐르고, 긴장과 걱정 속에서 한 시간여를 헤매고 다닌 것도 오랜만이다.      


나는 올해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엉망진창일까? 자괴감도 들고, 누구 말대로 어디 좋은 점집에 가서 점이라고 보구, 살풀이라도 해야 되는 걸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피터팬의 심장이 떨리는데, [키키]도 역시 놀라고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거 같다.      


지난주 금요일에, 러시안 블루 고양이 [키키]가, 청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피터팬이 살고 있는 제주까지 날아왔다. 첫날에 키키는, 낯선 환경에 적응을 못하는 듯도 했지만, 둘째 날부터는 바로 내 품에 안기거나, 내게 와서 애교를 부리며 장난을 쳤다.      


주 중반이 되자, 이젠 내가 만만해졌는지 내가 잠을 자고 있으면, 내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서, 내 발목을 베개 삼아 꿀잠을 자거나, 이불속 내 옆구리에 키키의 등을 딱 붙이고 같이 잠이 들었다. 피터팬은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키키가 너무 가까이 붙으면 좀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그래도 녀석의 따뜻한 체온과, 심장과 폐 사이에서 울리는 ‘그르렁 소리’가 대견하기도 해서 그냥 곁에 두었다.      


주 후반이 되자, 키키는 자신의 과도한 애정 표현에, 집사 피터팬이 불편해하는 걸 눈치챈 건지, 내가 컴퓨터 앞에 있으면, 컴퓨터 책상 옆 소파에 조용히 누워서 잠을 자거나, 노트북 모니터 바로 뒤쪽 공간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예쁜 짓도 했다.      

<피터팬이 원고를 쓸 때면, 모니터 뒤쪽에 조용히 앉아서 필자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착한 키키 ~>


오늘은 토요일 주말. 한 주동안 잘 적응해준 키키가 대견해서, 피터팬도 이벤트를 준비했다. 우선 고양이 용품 샵(www.09tom.com)을 하는 대학 친구가 삼각김밥 스크래쳐 하우스 (삼각형 모양의 냥이의 숨숨집인데, 안에 스크래쳐가 있어서 고양이가 긁을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고양이들은 수시로 손발톱을 스크래쳐에 긁어줘야지 그러지 않으면 대신 가구 등을 긁는다. 손, 발톱이 너무 길게 자라면, 손발 사이 틈에 끼어서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를 보내줬다. 그동안은 [키키]의 집이 따로 없고, 택배 박스를 사용했는데, [키키]는 택배박스가 싫은지 한 번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었다.

      

두 번째 이벤트는 고양이 산책용 목줄이었다. 원래 강아지와 달리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서, 자신의 체취가 묻어있는 곳이 아니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피터팬 같은 냥이 집사들은, 냥이와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거나, 혹은 우리 집 냥이도 들판에 데리고 나가서 뛰어놀게 하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에, 냥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자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고양이와 산책을 하는 방법도 나와있고, 고양이 산책용 목줄을 파는 곳도 있다. 설명을 보니, 강아지와 달리 고양이는 목에만 줄을 매면, 쉽게 빠져나와서 도망가버리기 때문에, 절대로 강아지 목줄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목과 가슴을 둘 다 묶는 고양이 전용 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동기 Y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양이 용품이 인기를 끌 거라고 예측하고 일찍 고양이 용품 시장에 뛰어들어서 지금은 09tom.com이라는 사이트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이미지 사진은 Y가 필자에게 입양 기념으로 보내준, '삼각김밥 스크래처 하우스'. 이젠 키키도 자기 집에서 자겠지? ^^>


오늘 드디어 고양이 산책용 목줄이 도착했다. 평소에 호기심이 많아서 늘 창밖을 바라보면서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던(이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우리 집 [키키]에게 첫 외출을 시켜주리라 다짐했다.     

 

목줄을 다 채우고 줄을 당기니까, 키키가 순순히 따라왔다. ‘히히 성공이구나!’ 하는 생각에 문밖에 나서려는 데, 그때부터 키키가 당황하고 엉덩이를 뒤로 빼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어리석었던 음악 PD 피터팬은, ‘키키가 산책을 하면, 분명히 기분이 더 좋아질 거라는’ 혼자만의 착각으로, 키키를 끌고 4층 계단을 내려갔다.     


[키키]는 계단에서는 많이 망설이기도 했는데, 그래도 저항하면서도 따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달은 아파트 1층 현관에서 일어났다. 세상 밖으로 나오자 키키는, 갑자기 겁에 질려서 현관 바로 옆에 있는 나무숲 사이로 들어가 버리더니, 줄을 세게 잡아당겨서 결국 목을 목줄에서 빼버렸다. 당황한 내가 줄을 더 세게 당기니까, 몸과 줄 사이에 난 빈 공간으로 몸통마저 빼버리더니 나무 사이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나는 크게 놀랐다. 밤은 어두워지고, 아무것도 안보이기에 얼른 4층 우리 집으로 올라가서, 휴대폰 플래시와 키키가 좋아하는 간식, 그리고 케이지를 들고 내려왔다. 플래시로 나무들 사이를 비춰봤는데, 키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범위를 더 넓혀서 찾아봤는데, [키키]는 아파트 1층과 지면 사이에 만들어진, 1미터 정도 깊이의 터널 같은 땅속에 들어가서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있었다.    

 

내가 ‘키키야! 간식 줄게~’ 하면서 불러봤지만, 억지로 밖으로 데려온 나에게,  이미 서운한 감정이 들었던 건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30 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틈으로 몸을 비집고 땅속으로 들어가서, [키키]를 꺼내오려고 했다. 하지만 내 몸이 채 바닥에 닿기도 전에, 키키는 반대쪽 터널로 달려가더니, 땅 위로 올라서 사라져 버렸다.   

   

앗! 큰일 났다. 이 밤에 키키가 깊은 숲 속으로라도 달아나면, 영영 찾을 수 없을 텐데... 나는 두려움과 걱정에, 내가 아는 지인들에게 이 상황을 카톡으로 알렸다.    

  

지인들은 [키키]가 길냥이는 아니었으니, 피터팬만큼 당황하고 있을 거라면서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해줬다. 처음 키키를 잃어버렸던 장소에서 기다리거나, 사방 100미터 근처 나무숲과 주차장의 차 밑 등을 잘 찾아보라고 일러 줬다.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 동과 앞동의 나무 숲, 그리고 뒷 숲과 주차장에 주차된 차 밑 등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키키는 보이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나를 믿고 키키를 분양해주었던, [충남 유기동물 보호 법인] 이경미 대표님께 죄송했고, 또 나에게 입양을 추천해줬던, 자원봉사자 김벼리 씨에게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피터팬과 팅커벨(별명 : 키키)이, 사이좋았던 이번 주 중반. 이때만 해도 키키를 잃어버릴 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와중에, 큰 아들이 여섯 살이었을 때,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한 시간 가량 큰 애를 잃어버렸던 아찔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큰 애를 인파 속에서 잃어버렸다!’고 다급히 전화를 하자 아내는 놀란 마음에, 여의도 공원 바로 옆의 12차선 도로를, 위험을 무릅쓰고 무단횡단을 해서 건너와서, 나와 함께 큰 아들을 찾았다.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했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경찰에 실종신고부터 해야 하나? 여의도 공원 내 관리사무실에 안내 방송을 요청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날은 5월 5일 [어린이 날]이라서, 인파는 많았고 큰 아이 또래의 5살~7살 아이들이 너무 많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아내의 전화벨이 울렸다. 핸드폰에 뜬 전화번호를 보니, 집 번호였다. 큰 아이는 여의도 공원에서 놀다가 나를 잃어버리자 당황했지만, 여의도 공원 옆의 12차선 대로를 건너, 어찌어찌 우리 집을 찾아가서, 집 전화기로 아내에게 울먹이면서 ‘엄마 나야~’ 하면서 전화를 했던 것이다.      


피터팬은 오늘도 그때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근처 나무 밑 어딘가에 혹은 바위틈 어딘가에서 키키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밤은 점점 더 어두워 가고, 1시간여 동안 헤매도 키키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4층 계단을 걸어서 집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4층 우리 집 대문 앞에서, 키키가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키키는 땅속 터널 같은 곳에서 올라온 뒤, 곧바로 4층 우리 집을 찾아내서, 1시간 동안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무사한 키키를 보자 피터팬은 안도의 한숨보다, “키키야 미안해~ 다시는 산책하자고 하지 않을게, 삼촌이 잘못했어ㅠㅠ”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가슴을 졸이며 걱정되고 무섭기고 하고, 아찔했던 가을밤의 소동이었다. 냥이 키키와 산책을 하고야 말겠다는 나의 무리한 욕심이 이런 사단을 낸 것이다.   

   

키키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옆 소파에서 쉬고 있지 않다. 나와 감정의 골이 생긴 것이다. 멀찌감치 떨어진 베란다 어둠 속에서, 우울하고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다. 첫 번째 주인에 이어, 피터팬도 자신을 버리는 건 아닌지, 겁이 나고 배신감인 든 밤이었을 것이다.      


오늘 밤이 지나면, 키키의 마음이 다시 돌아올까?      

     

<필자가 일을 하려고 하면 책상에 뛰어 올라앉아서, "키키와 놀아달냐옹~~"하며  투정을 부리는 키키 >

작가의 이전글 냥이 [키키]가 계속 울어요ㅠ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