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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Sep 19. 2020

"이 누나는 누군데 목소리가 이토록 아름다울까?"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 2 with 양희은 (1부)-

음악 PD 피터팬의 대학시절 같은 과 동기 중에, 부산에서 올라온 용규(당시 용팔이라 불림)라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용팔이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외모는 잘생긴 모범생 스타일이었는데, 하는 행동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웃 여학교 축제에 가서 소위 말하는 '깽판'을 치기 일쑤였고, 술을 마시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눈에 보이는 건 다 들고 가서, 술값 계산에 보탠다고 억지를 부리곤 했었다. 그런데, 그 잘생긴 부산 친구가, 어느 날 통기타를 배운다고 했다. 


목적은 오로지 예쁜 여대생과 사귀기 위해서. 

녀석은 다른 노래는 다 필요 없고, 오로지 딱 한 곡!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 속성으로 배우면, 여대생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포크송의 명곡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피터팬 PD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에도, 대학가에서 큰 사랑을 받던 곡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슬로 록 리듬에, 코드도 기타 초급자가 처음에 배우는, C-Am-Dm-G7으로만 이뤄진 곡이기 때문에, 여대생을 꼬시기 위한 목적으로, 부산 사나이 용팔이가 도전해 볼 만했다.     


그런데 용팔이란 친구는 기타를 치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가사를 부르지는 않고, ‘씨~ 에이 마이너~, 디 마이너~, 쥐 세븐~’ 이런 식으로 코드의 이름을 가사처럼 불렀었다. 오로지 여대생을 꼬시겠다는 사명감에 불타 기타를 배우기는 했는데, 노래 가사를 부르면 코드 외운 게 헷갈린다면서, 코드 순서를 가사처럼 부르면서 기타를 치는 거였다. 


이래서야 양희은의 명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애절한 감정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었겠는가? 
결국 그 친구의 짝사랑은, 노래 가사처럼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후로 녀석은 기타 배우기도 싫증이 났는지 그만두었고, 짝사랑의 실패를, '그 여대생에게 음악성이 별로 없었던 거 같다'며, 엉뚱한 핑계를 댔다.   


<1973년에 발표된,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 3집>. 통기타를 배울 때 제일 먼저 연주하는 노래들 중의 하나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행복의 나라], [가난한 마음]등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다.>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당시 여대생이었던 김정선 씨가 작사/작곡한 노래로, 양희은이 3집에 재발표하기 전에, 이미 대학가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곡이었다. 그런데 명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관련해서, 대부분의 한국 대중음악사에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그 내용과 관련해서 양희은 본인의 얘기를 들어보자.      


[아침이슬]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1971년 같은 해에 나왔어요.
제 독집인 [아침이슬] 외에, 이 가수 저 가수의 노래를 편집한, 꼭 빽판 겉표지처럼 외국사람 쟈켓 사진의 앨범이 또 있었던 거죠. 소위 짜깁기 컴필레이션 음반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넣었는데, 그게 글쎄 대박 났다네요.
그래서 아까우니까 [고운 노래 모음] 3집에 또 집어넣은 거지요~ㅎ     

제가 재수하던 1970년에, 서울여대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친구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배웠어요. 이 노래는 실연한 친구를 위로하려고,
김정신 씨가 만들어 주었대요. 서울여대 학생들 사이에서 이 노래가
대유행이었대요. 이 노래는 취입한 후에, 작사 작곡가를 수소문해서 찾아냈어요.

 이화여고 동창이자, [세노야]의 작곡자인, 당시 서울대 음대생 김광희 언니가
대뜸 찾아 주신 덕분이었죠. 나중에 김정신 씨는 [민들레 홀씨 되어](85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박미경이 불렀던 노래)를 작곡하시기도 했지요. 

양희은은 한국 가요사의 명곡인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실렸던, 데뷔 앨범 [고운 노래 모음 1집]을, 1971년에 발표했고, 같은 해에 컴필레이션 음반을 한 장 더 발표했던 거였다. 


이어서 1972년에 [아름다운 것들]과, 역시 김민기가 작사 작곡하고, 암울했던 유신 시대에 대한 비판 정신이 담겨있던 [작은 연못]이 실린, [고운 노래 모음 2집]을 발표하면서 튼튼한 팬층을 확보했다. 


양희은의 [고운 노래 모음] 1집과 2집이, 당시에 서울대 미대생이었던 김민기에 크게 의존했던 반면, 3집은 함께 참여한 음악가에, 큰 변화를 주면서 방의경, 조동진, 한대수, 서유석, 신중현 등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피터팬 PD는, 양희은의 [고운 노래 모음] 시리즈 중에서 백미는, 단연 [2집]이라고 생각한다. 불후의 명곡 [아름다운 것들] 외에도, [백구], [서울로 가는 길] 등, 한 편의 단편소설을 보는 듯한 서정적이면서도, 애틋한 가사, 그리고 한국인의 감성에 금세 친숙하게 들리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가 다수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음악 PD 피터팬은, 김민기 작사 작곡의 [백구]에 대해서 특별한 추억이 있는데, 중학교 1학년이던, 1982년에 같은 학급의 짝이, 교실에서 [백구]를 불렀었다. 그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가 너무 좋아서, 


"도대체 누가 부른 노래니?"

라고 물어봤더니, 필자의 짝은, 

"가수 이름은 모르겠고, 집에 레코드 판이 있는데 너무 슬픈 노래지?"라면서,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듣자!"라고 제안을 했었다.     


당시에 서울 서초동에는, 칠성사이다의 큰 물류 창고 부지가 있었는데, 짝의 집은 그 부지 옆에 지어진 새 아파트였다. 친구의 형님 방에 몰래 들어가서, 레코드 판으로 [백구]를 들으면서, 피터팬 PD는, 


‘이 누나는 누구길래 이토록 목소리가 아름다울까?’ 


하며, 호기심이 생겼는데, 레코드판의 쟈켓을 보니 ‘양희은’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었다. 희은이? 희은이? 이름도 예쁘네?    

<1972년에 발표된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 2집>, [아름다운 것들], [백구], [서울로 가는 길]등의 명곡이 수록된, 양희은의 <고운 노래 모음 시리즈>중 최고의 앨범이라 할만하다.>


앨범 쟈켓 속 희은이 누님은, 큰 아름드리나무 위에 맨발로 앉아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와 이렇게 큰 나무에, 이 누나는 어떻게 올라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단발머리에 청바지와 분홍색 셔츠를 입고 있던 누님의 모습이, 꼭 필자의 대학생 사촌 누나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어딘가 자유로와 보이고, 똑 부러지게 말도 잘하는 똑똑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당시만 해도 피터팬 PD는, 반에서 공부도 못하고 친구들도 잘 못 사귀는, 소위 반에서 '찐따'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소년의 가슴에 훅 들어와 버린, 아름다운 목소리의 양희은 누님을, 필자는 MBC 라디오에 입사를 하고, 20여 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뵐 수 있었다.


--------------------- (2부에서 계속)------------


* 음악 PD 피터팬은,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이라는 음악 칼럼을, 인터넷 신문사 <한국 뉴스>에도 연재하고 있다. 


http://www.24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0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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