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안 Sep 12. 2020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할 사람"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 1 with DJ 배철수-


세상만사 모든 일이 /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 세상 / *이러 구러 살아가오


*이러구러 :  이럭저럭 일이 진행되는 모양.


필자(=피터팬 PD)가 어렸을 때,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서민들의 유일한 여름휴가는, 청평 유원지에 가서 2박 3일 동안 민물고기 매운탕을 먹는 거였다. 1982년 여름에는, 청평호수에 많은 비가 내렸다. 물놀이를 할 수 없게 되자, 어른들은 여럿이 함께 모여 술판을 벌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주병에 숟가락을 꼽고,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서,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으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를 어어갔다. 


어른들 옆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꼬맹이들과 어린 피터팬PD는, 소주병 대신 칠성사이다병을 잡고, 노래를 불러젖혔는데, 모두가 합창할 수 있었던 곡은 단 두 곡, ‘저 푸른 초원 위에 / 그림 같은 집을 짓고’로 시작하는 남진의 [님과 함께]와, 송골매 2 집속 [세상만사]였다. [님과 함께]는 불멸의 히트곡이었고, [세상만사]는 당시에 수유리 265번지 골목길을 주름답던, 당대의 히트곡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초등학교에도 안 들어간 나의 사촌형제들이, 세상만사에 대해서 뭘 안다고, 장마 빗속에서 내리치는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그 노래를 불러댔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 세상/ 이러 구러 살아가오’를 반복해서 목청껏 외쳤다. 대중가요 속 가사의 힘이란 그토록 놀라운 것이어서, 아직도 나는 막걸리가 한잔 들어가면, 1982년 청평 유원지의 꼬맹이들한테 빙의되어, 폭포수 같던 소나기를 뚫는 낭랑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 댈 수 있다.  


<1982년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한 송골매 2집 앨범.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48위에 오를 정도로 

음악성까지 평가받은 명반이고, '세상만사', '모두 다 사랑하리',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의 명곡이 

수록되어 있다.>


1982년 TV에서 [세상만사]를 부르던 배철수는, 확실히 [양아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을 풍기는 ‘건달끼’와, 남자다운 목소리가 그야말로 확! 땡기는 맛(?)이 있었다. 이후 배철수는 송골매 3집에서, ‘돌아선 그대 등에 흐르는 / 빗물은 빗물은 / 이 가슴 저리도록  흐르는 / 눈물  눈물’ 이라면서, 사내의 가슴속에 깊숙이 숨겨진, 눈물 같은 [빗물]을 노래했고, 85년에 발표한 [배철수의 사랑이야기]에서는, ‘흰 눈이 송이송이 내리던 날 / 난 그 애와 처음 만났지’ 라며, [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들]을 들려주는, 부러운 남자로 변신해있었다. 


골목 건달(?) 형님 같은 이미지에서, ‘꿀보이스의 상남자’로의 변신이라니, 상전벽해라 할만한데, 피터팬 PD는 못난 재주에도 어쩌다 운이 좋아서, 방송국에서 25년간 생활하면서, 1982년 여름에 소년의 가슴속에 들어와서 짝사랑하게 된 배철수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알면 알수록 철수 선배님은, 점잖고 배려 깊은 선비 같은 성품을 가진 인생 선배였는데,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의 1회 손님으로 모셨다. 


<1971년 서울대 미대생이었던 김민기가 발표한 앨범. '친구', '아침이슬' 등이 수록된, 한국 포크 음악계의 혁명과도 같은 앨범이다.>


첫 번째 질문, 배철수가 가장 사랑한 한국 대중가요 속 가사 한 줄 이란 질문에 대해서, 송골매의 수많은 히트곡 중 하나를 꼽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김민기의 노래 [친구] 중,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 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


배철수에게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나의 젊은 시절이었던 70년대는 집단주의, 전체주의 시대였지. 
나는 그 당시에 히피처럼 살고 있을 때라서,
생각 없이 몰려다니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었네


아!, 놀라웠다. 40년간 짝사랑했던, 배철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똘끼 충만한 표정과, 건들거리던 몸짓으로, 활주로의 [탈춤]을 부르던 청년 배철수가


얼굴을 가리고 / 마음을 숨기고 / 어깨를 흔들며 / 고개를 저어라 /
마당엔 모닥불 / 하늘엔 둥근달 / 목소리 높이 하여 /허공에 외쳐라


라며, 소매자락을 휘날렸던 건, 1970년대라는 암흑시대에 대한 저항이었다. 


서울대 미대에 재학 중이던 김민기가, 1971년에 발표한 그의 데뷔 앨범 속에 나오는 [친구]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한국 대중음악사는 흔히 김민기를, 한국 포크음악의 1세대, 그리고 송골매는 한국 록 음악의 전설이라고, 기록한다. 하지만, 김민기의 [친구]에서도, 배철수의 [탈춤]에서도, 불의한 시대에 대한 저항이라는 공통분모는, 살아있었던 거다.


배철수는 MBC 라디오에서 30년간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DJ로 활약하며, 여전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김민기의 [친구]에 이어서 접속곡으로 선곡하고 싶은 팝송은 무엇인지도 배철수에게 물어봤다. 


Bob Dylan - Blowin’ in the wind
나에게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준 두 곡이니까. ㅎ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t /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사람들은 /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The answer, my friends, is blowin' in the wind, /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 그건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다네)


사족이 필요 없다.

오늘은 무조건 김민기의 [친구]와 Bob Dylan의 [Blowin’ in the wind]를 이어서 들어볼 일이다. 

가사의 의미를 음미해보면서.


--------------------

* 음악PD 피터팬은,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이라는 음악칼럼을, 인터넷 신문사 <한국뉴스>에도 연재하고 있다. 


http://www.24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0145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