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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Oct 01. 2020

[낭만에 대하여] 그리고 [입영전야]의 최백호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 4 with 최백호-

피터팬이 방송국에서 25년 동안 음악 PD로 살아오면서, 가장 존경해온 뮤지션 중 한 명은 바로, 최백호 선생님(이하 최백호)이다. 최백호를 지근거리에서 종종 보면서, 그의 인품에도 홀딱 반했지만, 25년 전 방송국에 입사를 하고, ‘저 멋진 중년의 사내’가 바로 [영일만 친구]와 [입영전야]를 불렀던, 가요계의 전설이구나! 하며 감탄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쉬운 밤 흐뭇한 밤 / 뽀얀 담배 연기
둥근 너의 얼굴 보이고 / 넘치는 술잔엔 너의 웃음이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에는, 입영을 앞둔 친구들을 위로할 때면, 모든 젊은이들이 항상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불렀다. 대학 캠퍼스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서, 또는 대학로의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마주 쥔 두 손엔 사나이 정’을, ‘뜨거움 피는 가슴에’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면서,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를 외쳤었다.     


1977년의 아름답던 가을에 발표된 [입영전야]는, 최백호가 작사/작곡을 했는데, 70년대와 80년대에, 군입대를 앞둔 청년과 그의 친구들, 또는 연인과의 이별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히 잘 표현하고 있다.      


당시에 군입대를 앞두고, 사랑하는 애인 ‘영희’와 헤어져야 하는, 불쌍한 청년 ‘철수’는, 자신의 속도 새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옆에서 철수의 손을 꼭 붙잡고 울먹이던 ‘영희’를 달려줘야만 했다. 그리고 그 옆자리의 친구들은,      


철수야!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다녀와라. / 야 인마! 눈물 나게,
왜 너까지 울고 그래! / 뭐 죽으러 가냐!/ 나라 지키러 가는 거잖아~ /
인마, 3년, 생각보다 금방 지나간다 힘내라!' 

라는 격려를 했었다.     


하지만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의 마지막에, 친구들 모두가 다 같이 일어나서 막걸리잔을 높이 들고, 거룩하게(?)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합창하면, 철수도 영희도, 친구들도, 모두 큰 소리로 울음들 터뜨리고 말았었다. 
군 병장 제대를 이미 오래전에 마친, 옆 테이블의 40~50대의 아저씨들은 함께 [입영전야] 흥얼거렸었다


<1977년 11월에 발매된 최백호의 첫 독집. 이 앨범으로 최백호는 그해 MBC 10대 가수상에서 ‘최우수 신인 남자 가수상’을 타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 앨범 속 최대 히트곡인 [입영전야]에 대해서 최백호는, 

“어느 날 연세대 앞을 지나는데, 학군단 수백 명이 모여서 함께 [입영전야]를 부르고 있어서,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사진=최백호 첫 독집 앨범 커버)>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푸른 파도 마시며 /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최백호 하면, 입영전야 외에도, [영일만 친구]를 힘 있는 목소리도 부르던, 패기 넘치는 멋진 ‘부산 사나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피터팬 PD 역시, ‘젊은 날 / 뛰는 가슴 안고 / 수평선까지 달려 나가는’ 최백호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러던 중 피터팬이 방송국에서 제법 잘 나가는 PD로 근무할 때인, 1996년 어느 날 최백호의 

[열여섯 번째 이야기]라는 앨범이 소위 대박을 쳤다. 


<최백호의 1990년대 히트곡 [낭만에 대하여]가 실린 16집 앨범의 재킷 사진. 이 앨범은 발표 후 2년 동안 1,000장이 채 팔리지 않던 앨범이었다. 하지만 1996년 어느 날, 35만 장이라는 판매 기록을 세우며, 중년 남성의 심금을 울리는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다.>


CD 쟈켓에 ‘오늘, 중년에 선 책임과 회한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하루에의 결심을 돋웁니다’라는, 최백호 본인의 고백 같은 메모가 적혀있는 이 앨범은, 원래 1994년 겨울에 발매됐었다. 하지만 큰 빛을 보지는 못 보다가, 1996년 김수현 작가의 KBS 드라마에 삽입되면서, 느닷없이 35만 장 주문이 밀려들게 된, 상당히 드문 케이스의 앨범이다. 


이 앨범 속 불후의 명곡은 단연, [낭만에 대하여]인데, 드라마 작가계의 대모인 김수현은 ‘첫사랑 그 소녀는 /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라는 가사에 단숨에 반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70~80 세대와 마찬가지로, 필자에게도 [낭만에 대해서]는 최애창곡인데 특히, 


궂은비 내리는 날 /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첫 소절)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 내 가슴에 /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마지막 소절 ) 


라는 부분에서, 가수 최백호가 아닌, 시인 최백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해서, 잘 만든 멜로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피터팬 PD는 방송국에서 오랜 세월 PD로 일하면서, ‘제법 뜬’ 아이돌 그룹이나, 신인 가수들에게 가장 존경하고 함께 작업하고 싶은 선배 뮤지션에 대해서도 묻곤 했는데, 단연 압도적 지지를 받는 3명은 최백호와 배철수 그리고 윤상이다.


후배 가수 에코브릿지도, 영원한 부산 사내 최백호에게 부탁해서 함께 작업한 노래를 발표했는데, 바로 그 노래 [부산에 가면]은, 최백호의 고급스럽고 진한 목소리가 노래의 인트로에서부터 확 귀를 끌어당기는 곡이다


<2013년에 발표된 에코브릿지의 [부산에 가면] 앨범 재킷. 가요계의 대 선배 최백호가, 후배 가수 에코브릿지의 앨범에 참여해서 '역시 최백호'라는 호평을 받았다.(사진=에코브릿지의 [부산에 가면] 앨범 재킷)>


오늘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에서, 초대한 손님은 歌人 최백호이다. 
최백호에게 우리나라 대중가요 가사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노래는 과연 무엇인지 물어봤다. 
[낭만에 대하여]와 같은 멋진 가사를 쓴 시인 최백호는, 과연 어떤 노래의 가사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을까? 그 사내의 가슴속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답변은, ‘역시 최백호다!’라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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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PD 피터팬은,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이라는 음악 칼럼을, 인터넷 신문사 <한국뉴스>에도 

연재하고 있다. 

http://www.24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0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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