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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Oct 03. 2020

아~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이 왔다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 5 with 최백호 (2부)-

최백호의 작사가로서의 탁월한 능력은, 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 속 가사의 의미를 곱씹어 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시적인 목소리를 선택했다. 최백호는, 


“내가 대중가요 가사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곡은,
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 선생이 부르신 [짝사랑] 중,     

지나친 그 세월이 /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 이즈러진 조각달 /  이 부분이에요” 


고(故) 고복수 선생이 1936년에 35살의 나이로, [오케 레코드]사 전속가수였을 때 녹음한, [짝사랑]은 한국 대중가요 중에서, 시적 구성이 매우 뛰어난 가사이므로 전체 가사를 지면에 옮겨본다.      


1.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 목이 맵니다.     


2. 아~ 아~ 뜸북새 슬피 우니 / 가을인가요.
잃어진(잊혀진) 그 사랑이 / 나를 울립니다.
들녘에 떨고 섰는(서있는) / 임자 없는 들국화.
바람도 살랑살랑 / 맴을 돕니다.          


3. 아~ 아~ 단풍이 흩날리니 / 가을인가요.
무너진 젊은 날이 / 나를 울립니다.
궁창을 헤매이는 / 서리 맞은 짝사랑.
안개도 후유 후유 / 한숨 집니다.      


<1936년에 오케레코드사를 통해 발표된, 고(故) 고복수 선생의 [짝사랑]은, 해방 후에 [미도파 레코드]사 등에서 재발매했다. 월북한 작사가 박영호는, [번지 없는 주막],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작사가로도 유명한데, 고복수가 부른 [짝사랑]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도, "빼앗긴 조국에 대한 마음속 깊이의 사랑과 그리움을, 이 노래의 선률에 태워 불렀다"라고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진은 미도파 레코드사에서 재발매된 앨범 커버) >


고복수가 부른 [짝사랑]의 전체 가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날 / 서리 맞은 짝사랑에 / 무너진 젊은 날을 슬퍼하는 나’이다. 그런데 가사 전체를 불러 보면 알 수 있듯이, 짝사랑의 슬픈 정서와, 가을날의 쓸쓸한 정취가 댓구를 이루며 절묘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필자가 어린 꼬맹이 시절이었던 1970년대에도, 고복수 선생의 짝사랑은 인기 있는 노래여서, 동네 꼬맹이들도 가을이 되면, ‘아~아 으악새~’하면서, 뜻도 모르는 으악새를 찾곤 했었다. 으악새의 뜻과 관련해서는, ‘억새다’ 아니다, ‘왜가리를 지칭한다’라고, 의견이  나눠지기도 했지만, 왁새(왜가리)가 으악새로 변형되었다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실제로 [짝사랑]의 작곡가 ‘손목인’의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2013년에 [손목인의 가요인생]이라는 책이 발간됐는데, 손목인 선생이 작사가 박영호에게, ‘으악새’가 무슨 새냐고 묻자, 박영호는 “고향 뒷산에 오르면, ‘으악, 으악’하고 우는 새 울음소리가 들려서, 그냥 ‘으악새’로 했노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로써 ‘으악새가 억새’라는 설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게 된다.      


고복수는 일제 강점기 치하인 1931년에, 국내 최초로 열린 ‘전국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타향’이라는 노래로 3위에 입상했는데, 이 노래가 훗날 ‘타향살이’로 제목을 변경하게 된다. 고복수는 집에서 60원을 들고 가출해서, 가수의 길을 걸었고, 1935년 잡지 [삼천리]에서 발표한, 최고의 인기 남성가수 3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피터팬 PD와 동년배인, 오십 초반의 남자들이나, 그 이상이 세월을 산, 인생 선배들은,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으악새’를 외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것이다. 40~50년 전에 동네 골목의 꼬맹이였을 때는,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로 시작하는 가사가, 그저 재밌어서 따라 불렀지만, 불혹과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서는 사나이 슬픈 짝사랑이, 으악새의 슬픈 울음으로, 가슴속 깊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백호에게 이 가사를, ‘최고의 가사로 꼽은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세월의 흐름을 ‘지나쳤다’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표현한 것과, 여울에 비친 달을
이즈러졌다고 표현한, 예리한 관찰력이 현대가요의 감성을 훨씬 뛰어넘은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라고 설명했다. 최백호가 [짝사랑]의 시적 표현에 매료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6.25 전쟁 중에 월북을 했기 때문에, 김능인이라는 가명으로 표기되기도 했던, 박영호가 작사한 [짝사랑]을 두고, 일제 강점기 하의 한 많은 우리민족의 정서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노래라는 해석도 많이 있다. 하지만 피터팬 PD는, 슬픈 짝사랑에 빠져 어찌하지 못하는, 사내의 통곡과도 같은 노래라고 해석해도 무리 없다는 생각이다. 


특히 최백호가 말한 대로. ‘지나친 그 세월이 / 나를 울립니다’라는 가사는, 그 어떤 다른 표현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무심하기 때문에, 더욱 가슴을 울리는 보석 같은 가사이다.


또한 [짝사랑]에는, 최백호가 최고라고 꼽은, ‘이즈러진 조각달’ 외에도 ‘임자 없는 들국화, 서리 맞은 짝사랑’등, 화자의 심정을 가을날의 정취에 투영한, 아름다운 표현이 빛을 내고 있다.   

        

최백호에게 고복수 선생의 [짝사랑]에 접속곡으로 이어서 들으면 어울릴, 본인의 노래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찬란히 빛나는 또 다른 별, [낭만에 대하여]를 추천했다.


고복수 선생의 [짝사랑]이 끝나고, 저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이어진다면,
이 가을이 더욱 로맨틱해지지 않을까요?
 

<2017년에 발표된 최백호 40주년 기념 앨범. 1950년 생인 최백호는 올해로 일흔이다. 하지만 아직도 앨범을 발표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진정한 가인(歌人)이다.(사진=최백호 40주년 앨범 커버)>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이다.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취해서 / 
짝사랑에 대하여 /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낭만에 대하여 / 
목이 매도록 울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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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PD 피터팬은,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이라는 음악칼럼을, 인터넷 신문사 <한국뉴스>에도 연재하고 있다. 
 

http://www.24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0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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