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안 Sep 23. 2020

이승철의 등장과 [희야]가 준 충격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 7 with 부활 김태원(1부)-

음악 PD 피터팬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모든 게 우울했다. 
아침 등굣길의 낙엽 잎도 우울했고, 수업이 끝난 후 붉게 물들어 가던 서쪽 하늘도 우울했고, 

매월 치르는 월말고사 시험지도, 심지어 점심시간의 도시락도 우울했다. 


시험성적이 뜻대로 나오지 않았고,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은 날도 많았다. 하지만 효자에다가, 학교에서도 선행상을 도맡아서 받던 범생이가, 반항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슬픔과 좌절감만 쌓여가던 시절이었다.


게다다 요즘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사춘기가 온다지만, 1980년대 그 시절엔 고등학생이 돼서야, 뒤늦은 사춘기를 앓는 친구들도 많았고, 필자 역시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성당에 다니는 한 소녀에게 가슴 가득 그리움이 생겼다.      


피터팬 PD의 모교인, 강남구 대치동의 작은 언덕에 자리 잡은 단대부고 교실엔, 그렇게 남학생 60명 각각의, 

좌절과 실연, 슬픔과 분노 그리고 가끔씩은 여름밤의 시원한 바람처럼 찾아왔던, 기쁨과 알 수 없는 흥분이 영글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1986년 가을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 우리들에게 그야말로 경천동지 할 일이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옆 학급에서 옆 학급으로 열병처럼 


이 노래 들어봤어? 
너 부활이라고 아냐? 
팝에 레드 제플린 4집의 [Stairway To Heaven]이 있다면,
가요엔 당연히 부활의 [희야]지!!
야 인마!~,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진정한 헤비메탈 그룹이 나왔어! 


라는, 흥분과 희열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범생이였던 고딩 피터팬 PD는, 부활의 [희야]를, 반에서 담배도 피우면서, 소위 '날라리' 통하는 아이들보다, 좀 늦게 들었다. 당시에 단대부고 정문을 나서면, 청실아파트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있었는데, 비 오는 어느 가을날 우산 속에서, 반 친구가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의 이어폰을 내 귀에 꽂아 줬었다. 그리고 나는 [희야]를 울부짖는 승철이 형님의 애절한 목소리에, 대치동 성당에 다니던, 나의 또 다른 ‘희야’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게 희야를 들려줬던 그 친구는, 그다음 해엔 홍콩 영화, [영웅본색]이 개봉하자, 누구보다 먼저 주윤발 형님의 ’ 죽이게 멋진 ‘ 연기를 보고 와서는, “내 인생의 노래에 [희야]가 있다면, 영화에는 [영웅본색]이 있다”며, 윤발이 형님처럼, 평생을 영화처럼 살겠다면서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고 우리 집도 이사를 가면서, 결국 ‘주윤발 마니아 친구’와는 연락이 두절됐는데, 지금쯤 충무로 어디에선가 윤발이 형님, 혹은, 고(故) 장국영처럼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1986년 대학로에 위치했던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앞에서 공연하는, 김태원(좌측, 리드 기타)과 이승철(우측, 보컬)의 젊은 시절 모습이 싱그럽다.(사진출처=부활 1집, [Rock Will Never Die]의 앨범 속, 가사 속지의 앞면.)>


[희야]는 김태원이 리더로 있는 록 그룹 부활의, 데뷔 앨범 속 타이틀 곡이었다. 원래는 김태원 작사 작곡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타이틀곡이었는데, 김태원의 친구 양홍섭의 여자 친구가 백혈병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아픔을 담았던 곡인, [희야]로 바뀌었다.  

   

리더인 김태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한국갤럽의 ‘국내 여성 끝 이름자 순위’ 조사에서, ‘희’가 1위를 차지했는데, 순애보를 담은 노래의 사연이, ‘희’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에게 더 어필할 것으로 보고, <희야>를 타이틀곡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전통 ‘로크 그룹’ [부활]의 데뷔 앨범. 우리나라 헤비메탈 초창기에 시나위, 백두산과 함께 3대 헤비메탈 그룹이었던 [부활]의 1집엔,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같은 록 발라드곡을 제외하면, 상당히 ‘Heavy 한’ 음악이 수록되어 있다.(사진출처=부활 1집)>


부활 1집 LP 앨범을 지금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로 여럿 보이는데, 우선 가사집 앞면에 있는 사진 속에서, 지금은 가요계 큰 형님이 된, 부활의 리더 김태원과 보컬 이승철의 풋풋하던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반갑다. 그리고 가사집 뒷면엔 앨범 속 수록곡에 대한 ‘1980년대식 감성 충만한’ 설명이 빼곡하다. 우선 [희야]에 대한 설명을 보자.

      

[희야]는, 17세 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진혼곡. 특히 마이클 셍커도 실패한 기타에 의한, 진혼의 종소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곡이다


발매된 지 35년이 된 곡이지만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거나 슬픈 청취자 사연 뒤에는 어김없이 온에어 되는 노래[비와 당신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 곡은 


김태원의 애절한 기타와 솔로와 함께 곡의 후반부에서
사랑의 절규가 절정을 이룬 곡


[길가의 연인들] : 김태원의 터프한 보컬이 매력적인 곡
[인형이 부활] : 부활이 음악적으로 가장 자신 있게 선택한 곡. 김태원의 섬광 같은 양손 해머링이 불을 토한다


지금 읽어보면 1980년대 헤비메탈을 연주하던 뮤지션들의, 단호한 비장미 같은 게 느껴져서, 좀 재미있기도 한데, 유튜브 채널 [김태원 클라쓰]에서 최근에 김태원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다소 과장된 속지의 이런 글귀는, 부활 1집의 제작자였던 가수 민해경의 오빠 백강기 씨가 직접 썼다고 한다. 당시에 록음악을 사랑했던 록 마니아들은, ‘록에 살고 록에 죽는다’는 말을 자주 했었으니까, 이해가 되는 표현들이다.

  

한국 최고의 락그룹 부활의 리더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등장하는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꼽은, 한국 대중가요 중, 가장 사랑한 가사는 무엇일까? 다음 호에 연재될 김태원(2부)에 대한 힌트를 약간 주자면, 1986년 당시에 부활의 팬클럽 회장은 경복고 3학년 이호석이었는데, 그는 가수 신해철의 친구였다.   


이호석의 소개로 뮤지션을 꿈꿨던 신해철은, 당시 부활의 연습실을 자주 왕래하면서, 리더 김태원에게서 음악적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부활 김태원 2부에서 계속) ----------------------     


* 음악 PD 피터팬은,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이라는 음악 칼럼을, 인터넷 신문사 <한국 뉴스>에도 연재하고 있다. 
 
http://www.24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01684


이전 06화 "내 그리운 나라/울다 지쳐 잠이 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