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1층 아저씨와 전기료
대결에서 승리!

-겨울에 난방비 대결에서도, 이길 수 있을까나?~~-

by 이안

며칠 전 제주도 표선면에 8월분 전기료 고지서가 날아왔다. 피터팬 PD에게는 15,300원이 나왔고, 같은 숙소의 1층 아저씨네 집은, 130,000원이 나왔다. 전기료가 10배 가까이 차이가 난 이유는, 1층 집은 8월에 에어컨을 자주 켰고, 나는 에어컨을 한 번도 켜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 때 에어컨이라는 신통방통한 신문물을 처음으로 우리 집에 들여놓은 것도, 2000년 초반으로 늦은 편이었다. 내가 서울 MBC PD로 입사하고도 5년 정도가 흐른 뒤였는데, 그해에 회사 직원들이 롯데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하는데, 회사에서 40만 원을 지원해 준다고 했었다. 아마도 회사 창립일 같은 특별한 기념일이었던 거 같다.


나는 어머니가 그토록 탐내시던 김치 냉장고 [딤채]와, 벽걸이 에어컨 중에서 어떤 게 나을까 고민을 하다가, 5평형 벽걸이 에어컨을 선택했다. 지금이야 피터팬 PD도, ‘인터넷 쇼핑의 고수’라서, [가격비교], [상품후기] 등을 꼼꼼히 검토하고 난 뒤에야 구매 버튼을 누르지만, 당시만 해도 쇼핑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게다가 처음 사보는 에어컨이라서, 어떤 걸 사야 좋은 지도 잘 몰랐다.


에어컨이라는 신기한 물건이라면, 당연히 작은 벽걸이형이라도 해도, 은행이나 방송국 건물처럼, 집안을 전부 썰렁~썰렁~하게 만들어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집에서 켜보니, 작은 벽걸이 에어컨 앞에 있어야지만 시원했지, 마루 전체가 시원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에어컨 앞에 앉아 있다가, 다섯 걸음 떨어진 식탁 쪽으로 가면 다시 더워지는, 선풍기와 성능이 별 차이도 없는 ‘희한한 에어컨’이었다.


겨우 5평형 에어컨이니까, 전기료가 많이 나올 거 같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그해 여름에 어머니는 에어컨을 한번 인가, 두 번 밖에 틀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에어컨을 켤라치면, 마치 어머니 몰래 술을 마시다가 들켰을 때, 역정을 내시는 것처럼, ‘전기요금 아깝게 에어컨을 켠다’고, 무시무시한 도끼눈을 뜨셨기 때문에, 아버지도 나도 에어컨 리모컨에는 손을 대지 못했었다.


돌아보면 내가 어린 시절엔, 선풍기도 그다지 많이 틀지 않고 부채로 한 여름을 지냈던 듯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와 나 이렇게 4 식구가 살았지만, 선풍기는 한 대 밖에 없었고, 주로 큰방에 놓여있던 선풍기를 내방까지 옮겨오느니, 차라리 그냥 부채질을 하는 게 더 쉬었던 거 같다.


더 과거로 돌아가서, ‘낮은 전압(電壓)에도 깨끗하게 들리는 라듸오’를 만들고, ’ 외제(外製)를 몰아내는 현대인의 벗‘이기도 한, 금성(金星) 사의 선풍기를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샀던 건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셨던 1969년이 여름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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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금성사의 신문 광고. '외제를 몰아내는', '현대인의 벗'이라는 광고 문구가 재미있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고 계실 때, 아버지의 부임지가 대구라서 부모님은 형과 누나와 함께 대구에 머무르셨는데, 그해 여름 대구가 무척 더웠다고 한다. 더구나 아버지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월남전에 참전하러 베트남에 가셔야 했기 때문에, 어려운 살림이지만 어머니께 선풍기를 사드리고 월남으로 가셨다고 한다.


(* LG전자의 전신인 금성(金星)사는 1958년 창업했고, 이듬해인 1959년에 국산 라디오를 생산했다. 1965년에는 국내 최초로 냉장고 생산했고, 1966년에는 흑백 TV, 1968년에는 에어컨, 1969년에는 세탁기를 모두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어머니와 형과 누나, 그리고 어머니 뱃속의 나까지 네 식구를 책임지셔야 했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하면 1년만 복무를 해도, 2년 치 월급을 미리 줬기 때문에, 타국의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을 하셨던 거다. 그렇게 미리 받은 월급으로 어머니께 선풍기를 사드렸고, 어머니는 형과 누나와는 달리 뱃속에서도 유별나게 태동을 하며 말썽을 부리던 나를 나으셨다는 소식을, 월남의 밀림 속에 계신 아버지께 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소중하게 구입한 ’ 몸통이 비대했던 ‘ 금성 선풍기는, ’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는, 광고 카피처럼, 12년을 우리 집에서 잘 돌아가다가, 내가 12살 때 새로 나온 ’날렵한 몸매‘의 새 선풍기로 교체되었다. 예전 선풍기가 고장이 나서 잘 돌아가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친척 어느 집에 보내졌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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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팬 PD와 같은 해, 1969년에 태어난 금성사의 선풍기. 큼지막한 버튼이 투박하지만 정이 간다.>


내가 태어나던 여름에, 나와 함께 세상에 태어났던 그 선풍기는, 버튼도 큼직하고 네모난 투박한 모양이었는데, 새 선풍기는 날개 색깔도, 버튼 모양도 더 세련된 모양이었다. 역시 새 선풍기라서 그런지,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도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들렸고, 바람도 더 시원한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가 12살이던 1981년에 여름에 샀던 두 번째 금성 선풍기로, 스무 번의 여름을 넘기셨다. ’ 순간의 선택이 20년을 좌우‘했던 거였다. 몇 번인가 선풍기 버튼이 망가져서 빠져버렸는데, 그때마다 버튼 모양과 비슷한 다른 플라스틱 덮개를 씌우고 계속 썼었다. 그래도 ’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4 반세기의 금성‘이라서 그런지, 선풍기는 잘도 돌아갔었다.


물론 지금도 LG는, 추억의 금성사 선풍기를, ’A/S 2년 무상 지원, 최신형 선풍기‘로 바꿔 생산하고 있지만, 그래도 글로벌 기업이 된 LG는, ’ 인공지능부터 청정관리까지 스스로 알아서 ‘ 해주는 휘센 에어컨으로 주력 제품을 옮기고, 선풍기는 신일, 한일 등의 중소기업 제품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된 거 같다. 신일, 한일 등의 선풍기가 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저가형 선풍기도 많아져서 이젠 웬만하면 거의 방마다 선풍기를 놓고 쓰기도 한다.

피터팬 PD는 제주에 3월 초에 내려와서 덥고 습한 제주의 여름을 보내면서, 에어컨을 한 번도 켜지 않았다. 제주에서도 7월 중순경부터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고, 한낮에는 가만히 집에 앉아만 있어도, 등 뒤로 굵은 땅방울이 흘러내렸지만, 전기료 아깝다면서 도끼눈을 뜨시던 어머니 생각도 났고, 몸이 부실해서 에어컨 바람을 좀 쐬면 편도가 붓고, 머리가 아파서 에어컨을 켤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했다.


내가 1년 살이를 하는 제주 집의 선풍기는 집주인이 구입해 놓은, LG도 신일도 한일도 아닌 ANAC라는 처음 보는 브랜드의 제품이 있었다. 이 선풍기로 올해 여름을 별 탈없이 잘 보냈고, 이제 선풍기 커버를 덮을 가을이 왔다.


여름엔 1층 아저씨네 보다 전기료가 훨씬 적게 나왔다만, 난방비는 걱정이다. 벌써부터 피터팬 PD는, 집안에 있을 때는 터틀넥과 플리스 그리고 양말을 챙겨 신는데, 제주에 겨울이 왔을 때, 두꺼운 내복으로 무장하면, 1층 아저씨와의 난방비 대결(?)에서도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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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상징 금성사의 세탁기 광고. 최불암 선생님의 젊은 시절 모습이 싱그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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