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음식의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
국내 최고의 음식평론가 박정배 선생이 제주의 쌀을 취재하러 오셨다. 제주에서는 논농사를 잘하지 않는다, 땅이 나빠서가 아니다. 땅 아래에 있는 현무암으로 된 암석으로 물 빠짐이 너무 좋아서, 벼가 자라는데 꼭 필요한 물을 땅이 담아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에서도 논농사를 크게 하시는 몇 분이 있는데, 그런 곳의 땅은 진흙 토양으로 되어 있어서, 물을 잘 머금을 수 있다. 박 선생은 이번에 제주 쌀을 키우는 농가를 직접 방문해서, 논농사에 적합한 제주의 땅은 어떤 특성이 있는지, 또 농가 특유의 쌀 재배법과, 제주 쌀의 우수성에 대해서 검증하고자 하신 듯하다.
뭍사람들은, 제주에서 벼농사를 잘 안 하니까 제주의 흙이 별로 좋지 않다고 잘못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라산의 폭발로 형성된 제주의 현무암 지형은, 영양소가 많은 화산재가 만들어준 비옥한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물이 빠져나가도 잘 자라는 밭작물인, 무, 콩, 고사리, 감자 등이 상당히 잘 자라고, 특히 제주의 무와 콩은 품질도 우수하고 맛도 좋다. 물론 제주의 지실(지슬) 감자 또한 맛이 뛰어나다. 내 생각에는 화산재로 만들어진 토양의 힘과, 영하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제주의 기온이 제주의 밭작물들을 맛있게 키워내는 듯하다.
박 선생과는 저녁에 만나 제주의 유명한 향토음식점인 [낭푼밥상]에 들렀다. 낭푼밥상은 제주 향토 음식 명인 1호인, 김지순 여사의 가업을 이어 양용진 선생이 식당을 운영하신다. 김지순 여사님은 워낙 음식을 맛깔나게 만드셔서, 과거 독재정권의 위정자들이 제주에 오면, 김여사 님을 독점하고 음식을 만들라 했다고 한다. 독재자에게는 과분한 음식이었겠지만, 무소불위의 독재자가 즐겨 먹던 음식 솜씨니, 그 맛은 보장할 수 있다 하겠다.
<제주의 전통 음식을 보존해가고 있는 식당, [낭푼밥상]의 코스 요리 >
박 선생과 함께 양용진 선생이 직접 만들어주는, 제주 돔배 고기(돔배=도마, 도마에 직접 썰어 나오는 제주의 삶은 돼지고기)를, 한점 한점 맛있게 먹었다. 막걸리를 곁들였는데, 제주에는, 귤이나 땅콩을 혼합한 소위 ‘퓨전 막걸리’ 등 여러 종류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단 하나뿐이다. 식당 아주머니도 제일 싸지만 제일 맛있다고 내어주는 막걸리는, [생유산균 제주 막걸리] 뿐이다. 이중 뚜껑이 녹색인 것은 우리 쌀로 만든 거라서 더 인기가 높다.
돔배 고기의 어원에 대해서 양 선생이 쓰신 ‘제주 식탁’이라는 책을 보면, 제주의 정지(부엌)에는 원래 부뚜막이 없었다 한다. 그저 흙바닥에 돌 몇 개 놓고 솥을 올렸는데, 그러다 보니 돔배(도마)가 낮으면 음식에 흙이 묻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돔배(도마)!. 다리가 높은 돔배에 고기를 썰어 내놓았다 한다.
양 선생의 책 ‘제주 식탁’은 이처럼 고사리탕쉬, 꿩마농지, 됫궤기적, 꿩모멀칼국수, 접짝뼈국, 지실밥, 깨송아리지, 마농지, 빙떡, 옥돔 미역국, 깅이죽, 멜국, 보말 촐레, 자리물회 등 제주 전통음식에 대한 자세한 해설과 만드는 법이 나와있는 제주 음식의 보고(寶庫)이다.
‘낭풍 밥상’에서 돔배 고기와 새롭게 개발한 비빔국수 등을 맛있게 먹고, 2차로 제주 등갈비 구이 집에 가서, 제주 음식에 관한 많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제주의 배추는 물이 많아서, 김치를 담가도 아삭한 맛이 없다고 뭍사람들은 얘기 하지만, 제주의 할머니들은 김치를 아삭하게 잘도 만드셨다. 그 비결은 바닷물이었다고 한다. 그냥 소금을 넣는 것보다, 바닷물을 사용한 절임 배추는 간이 더 골고루 배고, 흐물거리는 맛을 잡아, 식감을 좋게 해 준다는 걸, 제주의 어머니들은 경험으로 터득하신 거다.
또한 제주는, 음식에 된장을 사용하는 비율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데, 그 이유는 제주의 된장은, 날된장에서도 군내가 나지 않기 때문이란다. 다른 지역에서는 날된장을 어떻게 그냥 먹느냐고 하지만, 제주는 날된장도 신선하고 맛도 좋은 데에는 비결이 있었다.
첫째 제주만의 옹기다. 타지방과 달리 유약을 거의 바르지 않기 때문에 통기성이 우수해 냄새가 갇히지 않는다. 둘째 발효환경이다. 제주의 된장은 담근 지 1년 이내 심지어 7~8개월 만에도 군내가 나지 않고 섭취가 가능한데, 제주는 전국에서 습도가 가장 높고, 겨울에도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수시로 바람이 불어 더운 기운이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이런 환경 조건이, 된장 속 발효 미생물을 건강하게 자라게 해주는 거다. 세 번째는 콩이다. 제주에서 된장을 만드는 기본 콩인 ‘푸른 독새기 콩’은, 제주 토종 종자인데 단맛이 강하고 차지다.
제주에서는 콩 농사를 할 때, 다른 지역에서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 것과 달리, 그냥 평지에 휘이~휘이~씨를 뿌려대도 맛있는 콩이 잘 자란다. 이렇게 건강하고 좋은 콩으로 만든 된장이기에, 제주의 모든 음식에 범용으로 쓰이는 좋은 된장을 만들 수 있었다. ‘제주 푸른 콩장’은 ‘국제 슬로푸드 협회’에서 진행하는 ‘맛의 방주’에도 등록된, 자랑스러운 우리의 음식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맛의 방주’는 전 세계 곳에서 사라질 위기에 있는 음식 문화를 기록해서 국제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건데, 심사가 매우 까다로워 2년 이상 걸리는데, 제주의 식재료 18개가 이미 등재됐고, 7개가 추가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제주 향토 음식 명인 1호, 김지순 할머니와 아들 양용진 대표 >
박정배 선생과 다음날 아침엔 해장을 위해서, 제주 시청 뒤편에 자리한 ‘한라 식당’에서 옥돔 뭇국을 먹었다.
그 맛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담백함의 끝판왕이다. 제주의 시원하고 맛있는 무와 옥돔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조합인, 옥돔 뭇국의 시원함과 담백함은, 음식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리라 확신한다.
박 선생과 양 선생에게 들은 소중한 얘기가 너무 많은데, 지면이 짧다. 우리의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향토음식이, 사명감을 갖고 노력하는 음식 연구가들에 의해, 잘 보존되고 세계인들도 부러워하는 문화유산이 되길 바란다.
아~~ 돔베고기, 옥돔 뭇국 또 먹고 싶어라~~
제주의 행복한 먹거리와 함께, 배부른 가을이 가고 있다.
<예전부터 부뚜막이 없었던 부엌 문화 때문에 돔배(=도마)에 고기를 썰어서 나오는 제주의 전통 음식 돔배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