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연기를 쫓아다니던 어린 시절의 추억-
내가 사는 제주도 표선면에는 아직도 비가 내린 다음날이면 하얀 연기를 내뿜는 소독차가 돌아다닌다. 내가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짱가] 주제가의 처음 시작이,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 짜짜짱가 짜짱가 엄청난 기운이 /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지구는 작은 세계 우주를 누벼라’..
뭐,, 대충 이런 가사였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비가 그치면, ‘긴 꼬리의 하얀 소독 가스 연기’가 어김없이 생겨난다.
그 시절 또 하나의 TV 만화 시리즈 주인공, [그랜다이저] 주제가의 후렴이,
“...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 하나뿐인 인간의 별 지구를 위해서 /
그랜다이저는 생명을 건다 / UFO군단을 무찌른다 / 그랜다이저 그랜다이저
그~랜다~이 저..” 이런 식이었는데, 제주도 표선면에서는 ‘하나뿐인 제주 섬을 구하기 위해서, 친히 소독차님이 나타나서 온갖 해충 군단을 무찌르신다.
<지금은 아베 정권과의 갈등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 일본 문화에 대한 저항감도 많지만, 1970년대엔 유일한 TV 채널인 KBS와 MBC에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만화영화를 많이 방영했었다 >
4.19 탑과 우이동 골짜기가 그리 멀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의 골목 쌍문동 수유리 264번지에도, 여름날이면 ‘어디선가 틀림없이’ 소독차가 나타났다. 그런 날은 동네 아이들이 다 ‘집합’해서, 단체로 달리기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는 소독차가 저녁을 먹을 무렵 나타나곤 했는데, ‘윙~~ 윙~~’하는 소독차의 굉음이 이웃 동네 골목에서부터 들리기 시작하면, 누구는 밥을 먹다 말고, 또 누구는 TV에서 방영하는 [짱가]와 [그랜다이저],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를 보다 말고 뛰쳐나왔다. 그만큼 소독차의 하얀 연기는, 배고픔보다도, 안 보면 죽고 못 사는 ‘TV 만화영화’보다도 재미있고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몸에도 해로운 소독차의 하얀 연기가 뭐가 그리도 좋았나 싶지만, 따분하기만 하던 가난한 동네의 골목길에, 웅장한 행진곡처럼 큰 소리로 등장했던 ‘긴 꼬리의 하얀 연기’는, 오늘날 여름철 테마파크의 ‘워터 슬라이드’ 만큼이나 흥분을 주는 이벤트였다. 동네 친구 어떤 녀석은, ‘머리와 몸에 이가 많아서, 엄마가 소독차를 따라다니라고 했다’며, 마치 중요한 숙제라도 하듯, 제일 앞줄에서 열심히 ‘와아~~’ 소리를 내며, 연기를 손으로 잡을 듯 따라다녔다.
해충을 박멸하는 소독차의 그 하얀 연기가, 무슨 하얀 아이스크림이라도 되는 듯, 눈과 코, 입으로 부지런히도 들이마셨는데, 덕분에 우리 동네 꼬맹이들 뱃속에 우글거리던 온갖 기생충이 다 ‘박멸!이라도 된 건지, 나와 친구들은 흙바닥에 떨어진 사탕을 그냥 주워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았다.(물론 소독 연기를 마신다고 절대로 기생충이 죽지는 않는다. 어린이 구독자분들! 절대! 따라 하지 마시라~~~)
<필자처럼 소독차를 열심히 따라다녔던 그 시절의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나보다 네 살이 많던 나의 친형은, 학교에서 늘 반장을 했고 리더십이 있어서 동네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골목대장 역할을 했었는데, 소독차가 오면 형은 앞줄에서 뛰어다녔고, 아직 6살이던 나는, 1등으로 달려 나가는 우리 형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영문도 모르고 신이 난 강아지 마냥, 친구들과 함께 ’와~아‘ 함성을 질렀었다.
당시에는 물자가 부족하니, ’ 소독 가스도 아껴야 한다 ‘는, 국가의 비상한 시책이라도 있었던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1970년대 수유리 264번지를 돌던 소독차는, 오늘 오전 표선면에 나타났던 소독차처럼 여유 있게 동네를 돌아다니지 않았다. 어디선가 휙! 나왔다가, 쏜살같이 달아나버렸기 때문에, 소독차의 매캐하고 몸에도 해로운, ‘구렁이의 몸통처럼 기다랗게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양껏 들이마시는 ‘행운’이 쉽게 찾아오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운 좋게 제일 앞줄에서, 소독차의 짐칸 덮개라도 건드렸던 녀석들은, 자기가 ‘제일 앞줄에 있었다면’서, 참전 용사가 ‘화랑무공훈장’이라도 받은 듯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친형과 함께 소독차를 따라다니던 ‘행복했던 추억’은, 내가 7살이던 1976년 여름이 마지막이었다. 형은 그해 8월, 인천 송도 해수욕장에서 사고로 그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소독차의 연기와 나무 전봇대 그리고, 술래잡기를 할 때면 몸을 숨기던 대문 옆 시멘트 쓰레기통, 마당의 노란 호박꽃과 여름의 빗줄기를 흘려보내던 지붕 위의 슬레이트 석판, 겨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소복이 눈이 내린 새 하얀 골목길에 남겨진 발자국, 그 모든 것들 속에 형의 모습이 담겨 있다면서 괴로워하셨고, 결국 우리 가족은 서울 강남의 도곡동으로 이사를 왔다.
아파트로 이사를 오니, 수유리 좁은 골목의 우리 집처럼, 여름이면 구더기가 많이 끼던, 마당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재래식 화장실도 없었고, 일주일에 딱 한 번 목욕탕에 가야만 샤워를 할 수 있던 것과는 달리, 집집마다 작은 욕조가 있어서 머리와 몸에 이가 생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불을 붙여 피우는 나선형 모양의 모기향과, 파리채 대신, ‘칙 뿌리면 한 방에 잡는’ 에프킬라와, ‘네모난 명찰처럼 생긴 파란색 모기약’을 넣는 전기 훈증기가 대중화되면서, 밤에 성기신 모기에 물리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동네를 돌며, 어린이날 선물처럼 ‘한 여름의 선물’을 골목의 아이들에게 나눠주던 소독차도 더 이상 서울에서는 다니지 않게 되었고, 꼬맹이들이 모두 모여 즐겁게 ‘와~아~’ 함성을 지르며 ‘단체 달리기’를 하는 일도 생기지 않게 되었다.
<유년기엔 소독차, 대학시절엔 최루탄, 우리 세대는 매운 연기와 참으로 질긴 인연으로 태어났다 >
가족과 이별을 하고 제주에 혼자 내려와서 살면서, 비가 오는 날엔, ‘내일도 추억의 소독차가 또 오겠구나’ 생각한다. 지구가 위험에 빠지면 ‘틀림없이 틀림없이’ 나타나서, 착한 지구별 사람들을 구출해주던 [짱가]와 [그랜다이저]처럼, 모기가 나타날 거 같으면, ‘엄청난 기운’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흡협귀 ‘군단들을 무찔렀던’ 추억의 소독차.
그 옛날, 수유리 264번지 골목이라는 ’ 작은 세계를 누비며 ‘, 가려움과 일본뇌염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던, [추억의 짱가와 그랜다이저]는,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들과 함께, 이젠 제주도 표선면에만 산다.
<2020년 여름과 초가을, 제주도 표선면을 유유히 누비고 다니는 '해충박멸의 용사' 소독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