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가을, 중국 양쯔강 아래 강남으로 떠나겠구나ㅠㅠㅠ-
제주도 표선면에 음악 PD 피터팬이 가끔 가는 [고금 삼계탕]이라는 식당이 있다. 서울에서는 경복궁역 앞에 있는 [토속촌 삼계탕]이 가장 유명할 텐데, 제주는 서울처럼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 아니니, 경복궁 옆 삼계탕집처럼 긴 줄을 서는 건 아니지만, 맛이 깔끔하고 함께 나오는 죽도, 찰쌀이 탱글탱글 하니 무척이나 입맛을 돋운다. 서울의 맛집 [토속촌 삼계탕]이 진한 국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면, 표선면의 [고금 삼계탕]은 담백하지만, 주방장 주머니의 뛰어난 요리 솜씨 덕에, 갈 때마다 늘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를 할 수 제주도의 맛집이다.
9월도 하순으로 접어들고, 요 며칠 사이에는, 제주도라지만 서귀포시 역시 가을이 오는지,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낮과 밤 일교차가 심하다 보니, 몸이 으슬거려서, 뜨거운 삼계탕으로 허전한 속을 채우러 표선면의 맛집 [고금 삼계탕] 집에 들렀다. 식당 현관문 앞에서 제비 두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보니, 건물 처마 아래에 잘 지어진 제비집이 있었다.
제비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류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살던 동네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기도 했던, 쌍문동의 좁은 골목이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의 골목에서 동네 친구들과 놀다 보면,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올 것 같은 날엔, 제비가 항상 지면 가까이, 낮게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가 오면 제비의 먹이 활동이 어려워질 테니, 낮게 날면서 땅에 사는 벌레들까지 미리 잡아먹는 것이다. 어렸을 땐, 제비가 날씨 예보도 해주는 ‘신기한 새’ 정도로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제비는 선천적인 감각이 예민해서, 공기 중에 습도가 높아지면, 사람보다 먼저 알고 미리 대비를 하는 거란다.
서울은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는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부작용으로 따라왔던 대기오염과 자연환경의 파괴 때문에, 많은 동, 식물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중 하나인 제비 역시, 피터팬 PD가 어린 시절에 놀았던 쌍문동 골목 외에, 서울의 다른 곳에서는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쩌다 가끔 보기도 했지만, 가을날의 코발트색 청명한 하늘처럼, 잠시 그리움을 달래주다가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과거엔 우리나라 농촌 어디에서는 제비집이 있었다. 사진은 아기 제비 4형제가 사는 경남 함양군 지곡면 공배 마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래도 한 번, 1980년대 초반이었던가? 우리 집 서울 아파트 베란다에 제비가 집을 지은 적이 있었다. 나는 제비가 ‘박 씨’를 물어다 줄 거라 확신하고, 제비집이 혹시라도 무너질까 봐, 아버지께 부탁해서 제비집 아래에 나무 판때기를 설치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제비집이 없어졌었다. 어머니가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허물어 버리셨던 거다.
부모 제비가 알을 낳기도 전에 집 밖으로 내 쫓겨나다니 불쌍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 말씀이 곧 법’이라서, 아버지도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우리 집은, 제비의 박 씨를 받을 만한 팔자는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그래도 제비가 집을 짓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제비는 어디선가 진흙을 물고 와서, 우리 집 벽에 벽돌을 쌓듯이 하나하나 붙여갔고, 또 집이 쉬이 무너지지 않게 지푸라기 같은 것도 군데군데 잘 맞춰 넣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어느 집 처마에 있는 튼튼한 제비집을 보면, 제비는 누구에게 이와 같은 뛰어난 건축술을 배운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동네 표선면 [고금 삼계탕] 집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도, 아주 견고하게 잘 지어져 있는데, 지난여름 7월까지만 해도 그 둥지 안에는 아가 제비 3형제가 살고 있다. 아주 갓난쟁이 어린 새는 아니고,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정도의 아가 새였는데, 덩치가 커지다 보니 세 마리가 둥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어린 제비는, 부화 후 20일~24일 정도가 되면 둥지를 떠나는데, 아직 둥지에 있는 걸 보니, 세상에 나온 지 한 달이 채 안된 아기들이다.
<지난 여름 꼬꼬마 였던 아기 제비들. 이젠 제법 컸답니다!^^ >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흥부와 놀부전]에도 아기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는 장면이 나오지만, 제비는 사람 곁에 가장 가까이 사는 새다. 사람이 사는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고, 귀소성이 강해서,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다시 그 집으로 찾아온다.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먼저 다가와서 터전을 마련하는 것은,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는 부모 제비의 지혜이기도 하다.
한때 서울에서도 태릉의 배밭에는 제비가 수만 마리 무리 지어, 몰려들기도 했다는데, 앞서 얘기한 자연환경의 오염과, 한 민족의 전통 농사기법이었던 4월의 논갈이가 5월로 늦춰지고, 건물에서 처마가 사라지자 흔한 여름 철새였던 제비가 오랜 기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중국의 강남까지 갔다가 우리나라로는 돌아오지 않던 제비가, 근래 들어 도심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친환경 농약 사용과 친환경 농법으로 다양한 곤충들이 살아나며 먹잇감이 풍부해진 탓인데, 둥지를 틀기 좋은 전통 한옥과 초가집은 거의 사라졌지만, 제비는 현대식 건물에도 바로 적응해서, 황토벽이 아닌, 시멘트 벽에도 집을 곧잘 짓는다.
지난여름, 우리 동네 표선면의 어미 제비와 아비 제비는,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다가 새끼들을 먹였는데, 부모 새가 다가오는 것을 눈으로 보는 건지, 소리로 듣는 건지, 아가 제비들은 부모 새가 둥지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부터 서로 먹이를 달라고 입을 쩍쩍 벌리고 있었다.
인상적인 장면은, 비가 내리는 날에도, 부모 제비들은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줬는데, 날개가 젖은 어미 제비가 빗물의 무게로 몸이 무거워져서, 날개깃을 고르며 쉬고 있으면, 아빠 제비가 혼자 먹이를 물어다 줬고, 다시 아빠 제비가 날개의 빗물을 털어내는 동안은, 엄마 제비가 새끼들을 보살펴 줬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가 새들은 부모가 공들여 지은 둥지를 깨끗이 사용하려고, 똥을 눌 때는 엉덩이와 똥꼬를 바깥쪽으로 들이밀고, 둥지 바깥에 용변을 봤다. 세 마리 모두가 그랬는데. 이렇게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소중한 곳을 다 보여주다니, 셋 다 수컷임이 분명했다. 그중 덩치가 좀 컸던 한 놈은 나와 계속 눈싸움을 했는데, 부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동생 제비들을 내가 어쩌지 못하도록 노려보는 듯했다.
<지난여름, 아기 제비들이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엄마 제비, 아빠 제비. 제주도 표선면 [고금 삼계탕] 입구>
제비와 관련해서는 우리 조상들도 제비를 영민하고 부부의 정이 깊은 새로 자주 묘사했는데,
“조선의 문인이었던 황응규는 참판 벼슬로, 최 씨 성을 가진 첩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집에 제비 한 쌍이 집을 짓고 살았다. 하루는 그 제비 가운데 숫 제비 한 마리가 고양이에게 물려 죽었다. 혼자 남게 된 암 제비는 집을 빙빙 돌면서 슬피 울기만 하였다. 가을에는 어디로 갔다가, 봄이 되면 또 저 혼자 그 여자의 집으로 다시 찾아오곤 하였는데, 그 제비는 혼자 지낼만한 작은 집을 만들어, 그 안에 의지해 살면서, 다른 숫 제비와 짝을 이루려는 생각을 끝내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혹 다른 제비가 오더라도 오히려 쫓아 버리고 오직 최 씨 부인만 상대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제 추석도 멀지 않은 가을이니, 어미 제비들과 이젠 제법 커버린 새끼 제비들도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해서 에너지를 비축한 다음에 멀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부부애가 깊고 아가 제비들을 살뜰히 돌봤던 우리 동네 표선면 제비들이, 중국 강남에서도 아프지 말고, 부부간에 안타까운 이별도 하지 말고, 잘 살다가 내년 봄에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더불어 나와 눈싸움을 하던 어린 제비 형제들도, 피터팬 PD처럼 생이별을 하는 아픔을 겪지 않고 이웃에서 오순도순 서로 의지 하며 살기를 바란다!
PS1. 제비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강남에 갔다가, 3월 3일 삼짇날에 돌아오는데, 이와 같이 수가 겹치는 날에 갔다가, 수가 겹치는 날에 돌아오는 새라고 해서 민간에서는 감각과 신경이 예민하고 총명한 영물로 인식하고 길조(吉鳥)로 여겨왔다. 따라서 집에 제비가 들어와 보금자리를 트는 것은 좋은 일이 생길 조짐으로 믿었으며, 지붕 아래 안쪽으로 들어와 둥지를 지을수록 좋다고 본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제비에게서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비가 새끼를 많이 치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PS2. 북반구에 널리 번식하는 여름 새이나, 일부 지역에서는 적은 무리가 월동도 한다. 부산이나 제주도 등지의 남쪽 지방에서, 겨울에도 한두 마리를 볼 수 있다.
PS3. 제비는 가을이 되면 피하지방층이 생기면서 체중이 22∼26%나 늘어나기 때문에, 먹지 않고도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목포에서 중국까지 약 560㎞나 되는 거리를 쉬지 않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다.
PS4. 제비는 둥지를 짓는 재료도 새로 ‘개발’했다. 둥지를 짓기에 알맞은, 쟁기질한 논의 흙과 지푸라기가 없어도, 물이 고인 곳의 황토나 접착력이 좋은 흙, 마른 풀잎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제비는 되도록 논흙을 사용하려고 한다. 논흙이 최상의 재료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비는 논흙을 개어 입에 물고, 볏짚 지푸라기와 혼합해 둥지를 짓는다. 지푸라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짚의 섬유질이 흙과 흙을 잘 잡아주기 때문이다. 논흙은 습도 조절 능력이 있고, 작은 미립자로 이뤄져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풍기 역할도 하여, 새끼를 기르는 데 필요한 쾌적한 환경을 둥지에 조성한다.
<둥지 속에서 자라는 아기 제비들은 '응가'를 눌 때면 꼬리를 둥지 밖으로 내밀고 밖으로 '응가'를 눈답니다. 둥지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본능이죠. 이런 화장실 규칙은 엄마 제비에게 배웠을까요? 아빠 제비에게 배웠을까요? ^^ >
* 첨언한 제비와 관련된 학술 정보는, [한국야생조류협회]의 윤순용 협회장님의 한겨레 신문 기고문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