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22일이라서, 2일/7일 열리는 표선면 5일장에 작심하고 들렀다. 지난 17일에 오이소박이와 간장 게장을 사려고 했으나 마감시간인 오후 2시가 다 되어 갔더니 다 팔리고 없어서 못 샀기 때문이다. 어제는 좀 일찍 가서 사야지 마음먹었는데 또 1시를 넘겨서야 도착했다.
다행히 어제는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 간장게장 등이 남아있었다. 앞으로 5일은 행복한 식탁을 차릴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오천 원어치씩 반찬을 샀다.제주도의 모든 5일장 반찬들이 다 맛있는지, 아니면 표선면 5일장 아주머니의 김치와 간장게장만 유난히 맛있는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표선면 홀아비들은 5일장이 없었다면 다들 굶어 죽었을 거다.
표선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나도 처음에는 5일장에 있는지 모르고, 하나로 마트에서 종갓집 김치를 사 먹거나 반찬 1~2개로 대충 때우듯 식사를 해결했었는데, 5일장 반찬가게에 가보라는 [큰손 왕만두] 사장 아주머니의 고마운 조언대로 그곳에 들렀다가, 그야말로 먹거리의 신세계를 체험하게 되었다.
피터팬 PD가 거의 매 5일마다 사 먹는 오이소박이는, 집으로 갖고 와서 반나절 정도 상온에 두면 아주 맛깔나게 익는데, 오이소박이만 있어도, 밥에 물을 말아서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다. 김치에서 '어머니 손맛' 김치 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장이 설 때 가서는, 간장 게장도 먹음직스러워 사 왔는데, 속살이 부드러우면서 탱탱해서 그야말로 밥도둑이었고, 게를 담근 간장만으로도 달걀 프라이 하나를 부쳐서, 밥과 비벼 먹으면, 밥 한 공기쯤은 금세 바닥이 보였다.
간장게장은 너무 맛있어서, 순천 사는 절친 홀아비 S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대접해 줬는데 녀석도 너무 맛있다면서, 냉장고에 넣어둔 5천 원어치를 다 비워버렸다. (짜식! 순천 놈이라 그런지 입맛이 고급이라서, 내가 아껴서 5일 동안 먹을 반찬인데 한 번에 먹다니!!)아쉬운 마음에 이번에는, 만 원어치 간장 게장을 샀다. 지난 17일에 다 팔리고 없어 사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분풀이 소비를 했던 거다.
표선면 5일장은 열무김치도 기가 막히게 맛있다. 열무김치의 국물 맛을 낼 때, 같이 갈아 넣는 밥을 좋은 쌀로 지었는지, 김칫국물 맛이 진하면서, 시원해서 얼마 전에는 메밀국수를 말아서 먹었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었다. 열무도 얼마나 싱싱하고 맛있던지, 이 역시 열무김치 하나 만으로도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표선면 5일장의 강점은, 맛은 말할 것도 없도 가격 경쟁력이 하나로 마트보다 월등히 높다는 거다. 감자, 상추, 등 야채뿐만 아니라, 각종 과일도 더 싸고 싱싱하다. 특히 바나나 가격은 차이가 큰데, 표선면 하나로 마트에서 바나나가 4개에 4천 원 정도인데, 5일장에서는 15개~17개가 달린 한 뭉치가 5천이다.(이건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하나로 마트에서는 외국산은 팔지 않고, 국내산 바나나만 팔아서 더 비싼 거였다는 ~)
열무김치도 [종갓집] 제품보다 맛도 월등히 좋으면서, 만원 어치를 사면 대기업에서 만든 포장김치보다, 양도 많다. 5일장의 콩도 그러한데, 제주 콩은 맛이 탁월해서 콩밥을 하면, 전기밥솥에 있는 밥이 자꾸 생각나서, 반찬도 없이 맨입으로 밥솥의 콩밥에 자꾸 손이 간다. 상황이 이러할지니, 제주도에 사는 모든 홀아비들은 필히! 5일장을 이용해서 건강한 식탁을 준비할 일이다!
음악 PD 피터팬이 표선면 5일장에 가면 항상 들리는 곳이 있는데, 바로 화원 코너다. 화원에서 이미 여러 종류의 나무를 사다 보니, 주인아저씨 아주머니와 친해지기도 했지만, 내가 나무에 대해서 이런저런 아는 체를 했더니 서울에서 온 홀아비한테도 정이 가셨는지 내게 커피도 타 주시고, 나무 키우기에 관한 이런저런 정보도 나눠주신다.
어제는 주인아주머니한테 실수로 할머니라고 불렀다가. 옆 코너 ‘양파 이모님’ 한테 혼이 나기도 했다. 제주에서는, 나이 들어 보시는 여자분께는 ‘무조건 이모’, 남자한테는 ‘무조건 삼촌’이라고 해야지,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하면 시장에서 물건도 못 산다면서, 내게 오금이 저리도록^^, 꾸중을 하셨고 나는 납작 엎드려서 사과를 드리고, 이후 ‘화원 이모’라고 명칭을 수정했다.(이모님도 안되고, 친근감 있게 반드시 '이모'라고 해야 함! 이게 포인트임.)
화원 이모에게는, 피터팬 PD는 아내와 이혼하고 표선에서 혼자 산다는 신세한탄을 자주 하는데, 이모가 오늘은 ‘이혼한 아내와 화해하는 법’, ‘아빠에게 등 돌린 아들, 마음 돌리는 법’에 대해서 일러주셨다.
이모 말씀으로는, ‘아내는 남편이 잘못했다고 싹싹 빌면, 반드시 마음을 돌린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용서를 빌어라, 비록 이혼을 했더라고 아이들이 있으니, 좋은 관계로 지내야 한다. 만약에 용서를 빌어도 해결이 안 되면, 서울에 직접 가서 깜짝 선물공세를 하라!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 아들들도 반드시 아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그러니 지금은 정성이 담긴 편지를 써서 보내라’고 하신다.
어제는 화원 이모에게서 좋은 말씀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을 ‘이안 작가의 화려한 입담으로 부추겨서(?)’ 화분도 2개 팔아드렸고, 나도 ‘함박 재스민’과 ‘다육이’ 4개를 샀다. 집으로 오는 길에 표선 성당에 들렀다. 조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표선성당에는 가을을 맞아 소나무가 한층 더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여름에 한창 보라색의 붓꽃이 피었었는데, 아직도 군데군데 붓꽃이 지지 않고 피어있었다. 붓꽃은 원래 2월에 심어야 잘 자라지만, 내 집에서도 붓꽃이 어린 떡잎을 얼른 보고 싶은 욕심에 물에 하루를 불려두었다. 물이 불린 붓꽃 씨앗은 발아를 더 일찍 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신자였지만, 오랜 기간 냉담 신자로 지내서, 참으로 오랜만에 성당에 들른 거였다. 하느님께서 꼭 들어주셨으면 하는 소원이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