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시간, 공, 연기, 무아-
밤하늘에 별들이 빛났다.
은하수처럼 부드럽게 퍼진 빛 사이로, 오래된 나무 아래 두 인물이 마주 앉아 있었다.
하나는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부처님. 다른 하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지닌 아인슈타인.
"부처님," 아인슈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을 연구하면서 우주의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깨달은 것은, 물질이라는 것도 결국 실체가 없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에너지의 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혹시 당신께서 말씀하신 '무아(無我)'와 닿아있을까요?"
부처님은 고요한 미소로 대답했다.
"엘버트여, 그대가 본 것은 진실에 가깝도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 실체라고 믿는 것은 사실 변화하는 인연의 흐름 속에 잠시 머무는 그림자와 같으니라."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꺼냈다.
"그렇다면, '공(空)'이라는 개념은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양자 진공 상태를 연구할 때,
'비어 있음' 속에서도 무한한 가능성과 에너지가 가득 차 있음을 느꼈습니다."
부처님은 빛나는 별을 가리켰다.
"저 별들도, 그 빛도, 그대 자신도, 본래 고정된 실체가 없느니라. 『반야심경』에 이르기를,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였느니라. 모든 존재는 공함 속에 있으면서도 색(형태)을 지니고, 색은 곧 공이니라. 공은 단순한 허무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의 장(場)이며, 끝없는 변화의 근원이니라."
아인슈타인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러면 '연기(緣起)'란, 입자와 입자가 상호작용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까?
모든 존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실체를 갖는 것처럼요?"
부처님은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손을 펼쳤다.
"옳도다. 『잡아함경』(쌍윳따니까야)에 이르기를,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 하였느니라. 하나의 원인과 조건 없이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꽃이 피는 것도, 별이 빛나는 것도, 엘버트 그대가 여기에 있는 것도, 수없이 얽힌 인연이 엮어낸 결과일 뿐이니라."
아인슈타인은 깊은 숨을 쉬었다.
"사실 저는 과학을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현상의 법칙을 밝혀낼 수 있을지라도, 존재의 궁극적 이유까지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요."
부처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는 이미 지혜의 문턱에 서 있도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 『숫타니파타』에는 '모든 것은 태어남과 소멸이 있다. 그러므로 집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별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인간의 육신도, 마음도, 생각도 끊임없이 변하느니라."
아인슈타인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부처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나'라고 부르는 것은 오온(五蘊), 즉 색(몸), 수(느낌), 상(지각), 행(의지), 식(의식)의 모임이 일시적으로 모인 것일 뿐이니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모든 유위법은 꿈과 같고, 환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음을 알아야 한다' 하였느니라. 고정된 '나'는 없느니라."
아인슈타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별빛 아래, 그
의 눈에는 빛나는 슬픔과 환희가 동시에 어린 듯했다.
"그렇다면, 모든 과학도 결국 덧없고, 일시적인 것 위에 세워진 것이겠군요."
부처님은 손을 모아 합장했다.
"그러하나, 덧없다고 하여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니라.
덧없음을 알기에 더욱 순간순간이 귀하고, 서로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싹트는 것이니라."
아인슈타인은 미소를 지었다.
"부처님, 오늘 저는 방정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조금 이해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서로 기대어 존재하고, 영원한 실체는 없으며, 변화만이 진리라면... 저는 이제 더 이상 실체를 찾는 데 집착하지 않고, 변화하는 조화 속에서 우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겠습니다."
부처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깨달은 것, 그것이 바로 '지혜'라 하느니라."
달빛 아래, 두 존재는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 고요한 이해 속에 함께 앉아 있었다.
별빛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별빛이 더욱 짙어졌다. 아인슈타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물었다.
"부처님, 만약 모든 것이 인연 따라 변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면, 시간(Time)이라는 것도
환상에 불과합니까? 저는 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시간은 어딘가에 실재한다고 믿어왔습니다."
부처님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버트여, 시간 또한 인연에 따라 생긴 이름과 형상일 뿐이니라. 『숫따니빠다』에서는
'과거도 집착할 것이 아니요, 미래도 기대할 것이 아니며, 현재도 붙잡을 것이 아니다'고 하였느니라.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마음이 이름 붙인 것일 뿐이니라."
아인슈타인은 손가락으로 모래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과거'라 부르는 것도, 사실은 현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미래'란 현재의 상상일 뿐이군요."
부처님은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옳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느니라. 오직 이 순간,
이 찰나만이 진실이니라. 그러나 이 순간조차도 끊임없이 변하여 머물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시간에 집착하면 고통이 생기고,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면 자유에 이르느니라."
아인슈타인은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 하나가 스르륵 하늘을 가로질러 떨어졌다.
"부처님, 그렇다면 결정론(determinism)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저는 모든 사건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인연과 원인에 의해 생긴다면, 인간의 자유는 환상입니까?"
부처님은 깊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엘버트여, 인연과 결정은 서로 대립하지 않느니라. 『중아함경』(맛지마니까야)에서는
'인연 따라 생하되, 인연 따라 변하니, 스스로 짓고 스스로 거둔다' 하였느니라.
그대의 삶은 과거 인연에 의존하여 나타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 그대의 행위가
새로운 인연을 짓고 있느니라. 자유는 절대적 독립이 아니라,
조건 안에서 지혜롭게 선택하는 힘이니라."
아인슈타인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결국 우리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깨어 있는 선택을 통해 삶을 짓는 것이군요.
자유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고요."
부처님은 부드럽게 합장했다.
"옳도다. 인연을 알면 교만하지 않고, 변화를 알면 집착하지 않고,
무아를 알면 사랑할 수 있느니라."
아인슈타인은 별빛 속에서 빛나는 듯한 눈으로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부처님, 오늘 저는 우주를 과학으로만 보려 했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삶 자체를 하나의 조화로운 연주처럼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엘버트여, 그대가 본 것은 진리의 한 조각이니라.
그러나 진리는 말과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니, 그대 스스로 이 삶을 살아내며 깨달아가야 하느니라."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별빛은 여전히 흐르고, 은하수는 부드럽게 두 존재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