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라는 개념은,
많은 분들에게 종종 “아무것도 없다”는 말로 잘못 이해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반쯤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공’은 단순히 비어 있다, 없어진다, 무(無)와 같은
허무주의적인 개념이 절대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 깊이 있게 바라보라는 초대입니다.
사물이나 현상을
고정된 실체로 보지 말고,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관계 속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컵’ 하나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컵은 도자기 장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고,
흙과 불, 물과 시간의 조합으로 형성되었으며,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눈이 컵을 인식하는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그 모든 관계성을 제거하고
“컵은 그냥 컵이다”라고 고정해 버린다면,
그 순간 우리는 공(空)의 진리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용수(龍樹, Nāgārjuna) 대사는 『중론(中論)』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인연소생법 아설즉시공)
“인연으로 생겨난 모든 법은, 내가 곧 공이라 말하노라.”
이 구절은 불교 공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인연(因緣)에 의해 생기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공’은
그 존재가 텅 비어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무엇도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철학입니다
.
《금강경》은 이 공의 사상을
복잡한 논리로 설명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선포합니다.
“凡所有相 皆是虛妄(범소유상 개시허망)”
“무릇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니라.”
여기서 말하는 ‘허망(虛妄)’은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정되지 않았다’,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마음속에 그려지는 것, 말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은
잠정적이고 덧없으며, 관계에 의해 생겨난 것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공은 ‘없음’이 아니라, ‘고정되지 않음’입니다.
공은 부정이 아니라, 존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공은 무가 아니라, 연기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본래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중론》과 《금강경》을 잇는 철학적 고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