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마음을 벼리고 세계를 비추다』
이 구절은 어쩌면
금강경 전체의 핵심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말입니다.
‘얻지 않음으로써 얻는다’—
이 말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금강경』이 전하려는 궁극의 자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애씁니다.
좋은 성적, 안정된 직장, 사랑, 명예, 깨달음마저도…
그런데 금강경은 뜻밖에도 말합니다.
“그 모든 얻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짜 얻는 길이 열린다.”
우리는 어떤 것을 얻으면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그림자가 따라옵니다.
집착: “이걸 절대 잃고 싶지 않아.”
불안: “혹시 누가 뺏어가지 않을까?”
비교: “나는 이만큼 가졌는데, 쟤는 더 많은 걸 가졌네.”
교만: “이 정도면 나, 꽤 괜찮은 사람이지.”
얻고 나면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고,
그 부담은 곧 고통이 됩니다.
반대로
얻지 못하면
‘왜 나는 안 되는가’라는 열등감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밀려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우리 마음을 시끄럽게 만들고,
스스로를 옭아매는 그물망이 됩니다.
『금강경』은
그 마음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습니다.
‘무소득’이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무력하거나, 무기력하거나, 무관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무소득은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행위의 가벼움,
과정 중심의 삶을 사는 마음가짐이다.”
오늘 누군가에게 친절했지만
그 사람이 고마워하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 열심히 일했지만
그 노력이 당장 보상받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으며,
나의 삶이 성과 중심으로 평가받지 않더라도
그것이 나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는 마음.
이런 마음이
바로 무소득의 자유로운 삶입니다.
『금강경』은 깨달음의 조건으로
지식을 말하지 않습니다.
수행 기간도 아니고,
기적을 보여주는 능력도 아닙니다.
단 하나,
“아무것도 얻고자 하지 않는 마음.”
이것이 진정한 반야(般若),
지혜의 완성이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무소득의 마음은
무심(無心)이기 때문입니다.
무심은
텅 비었지만 따뜻하고,
소유하지 않지만 풍요롭고,
집착하지 않지만 진심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평화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금강경』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그것이 당신 마음을 가볍게 하는가, 무겁게 하는가?
만약 그것이 없어도 당신은 괜찮은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무소득의 삶은
포기의 삶이 아닙니다.
집착 없는 참여,
비움 속의 전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살아가는 깨달음의 태도입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금강경의 보살입니다.
비록 경전을 다 외우지 않았더라도,
손에 염주를 들지 않았더라도,
수행처에 가지 않았더라도—
당신의 오늘 하루가
무소득의 자유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면
그 자체로
당신은
진리를 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