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말에 의존하지 말라
– 언어를 넘어 진실을 보다

『금강경, 마음을 벼리고 세계를 비추다』

by 이안


“如來所說法 皆不可取 不可說 非法 非非法.”

“여래소설법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여래가 설한 법은

모두 붙잡을 수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고, 법이 아님도 아니다.”


이 말은 마치
손에 닿지 않는 안개처럼 느껴집니다.
분명히 부처님은 말씀하셨는데,
그 법은 말할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니…


『금강경』의 이 대목은
언어의 한계와 진리의 초월성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하고
‘문장’으로 정리하며
‘이해’라는 틀에 가두려 합니다.

하지만 금강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는 말에 갇히지 않는다.”
“설명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말은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유명한 선어(禪語)에
“指月之指(지월지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달을 가리키면
하늘의 달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 손가락만 쳐다봅니다.


불교에서 ‘법(法)’이란
바로 그 ‘달’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
경전의 문장,
스승의 말은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그 손가락을 숭배하고,
문장을 외우는 데 집착하고,
이해한 것을 ‘가졌다’고 착각합니다.

『금강경』은 그 착각을
조용히 부숴줍니다.


“이해했어요.”의 함정


진리를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 그거 저도 알아요.”
“공은 결국 무상이라는 뜻이죠.”
“무아는 ‘나’가 없다는 개념이잖아요.”

그런데 이 ‘이해했다’는 말속에는
무언의 ‘멈춤’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미 이 개념을 안다.
나는 이 진리에 도달했다.


하지만 진리는
개념이 아닙니다.
진리는 ‘이해’가 아니라 ‘체험’이고,
‘암기’가 아니라 ‘실천’이며,
‘획득’이 아니라 ‘소멸’입니다.


진짜 진리는
말이 아니라
침묵의 눈빛,
비어 있는 마음,
따뜻한 행동 속에서 드러납니다.


언어는 중요하지만, 그 이상이 필요하다


물론 언어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말로 배우고,
글로 전하고,
생각을 통해 이해합니다.

그러나 언어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말은 다 담지 못합니다.
말은 때로 진실을 왜곡합니다.
말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됩니다.


『금강경』이 말하는 “불가설(不可說)”은
‘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말에 갇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진리를 향한 여정에서
언어는 출발점일 뿐,
그곳에 머물러선
도착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말 없는 가르침, 말 넘어선 실천


우리가 진리를 삶으로 받아들이려면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무아는 무엇인가요?”에서
→ “나는 지금 내 자아에 집착하고 있는가?”
“공은 어떤 개념인가요?”에서
→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가?”
“지혜로운 삶은 뭔가요?”에서
→ “나는 오늘 누구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냈는가?”



말을 줄이고,
해석을 덜고,
설명을 멈추고,
대신
고요히 바라보는 연습,
조용히 실천하는 연습,
겸허히 살아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때,
진리는 우리 곁에
말없이 앉아 있게 됩니다.


다음 편은 마지막 회차로,
『금강경』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전체 메시지를
“무소득(無所得)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현대인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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