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표선면에는 맛도 좋고 분위기도 근사한 우동가게가 있다. 우동과 돈가스 같은 걸 파는 가게인데, 가게 이름도 [우동가게]이다. 한 달 전부터 하루에 한 끼, 점심 혹은 저녁을 이곳에서 먹는데, 오늘은 좀 늦은 저녁으로 소고기 우동을 먹고, 표선면 밤마실을 떠났다.
<제주도 표선면에 사는, 피터팬 PD가 추천하는 우동 맛집 [우동가게] >
제주도 표선면은 표선 해수욕장과, 표선면 중심 상가처럼 비교적 번화한(?) - 그래 봤자. 표선면은 제주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마을 중의 하나라서, 지방의 작은 읍내 정도의 화려함이다 - 곳도 있지만, 중심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농지와 제주의 옛 모습을 떠올리는 모습의 민가들이 줄지어있다.
특히 집집마다 쌓아 올린 담장은, 제주의 전통 돌담으로 지어졌고, 마당마다 푸성귀가 자라나는 텃밭이 있어서 정겨운 감상에 젖게 한다. 그리고 표선면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귀한 담팔수들이 한 집 건너 한 그루씩은 자라고 있어서, '이곳이 바로 제주도 서귀포'라는 것을 항상 깨닫게 해 준다.
* 우리나라의 나무 백과사전 중, 정보가 가장 정확하다는 [한국의 나무](돌베개)나 이 책의 정보를 모방한 대부분의 나무 사전에는, 천지연, 천제연 등 서귀포 몇 군데에서만 담팔수가 자라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정보는 잘못된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모든 마을마다, 수령이 50년~1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담팔수들이 멋들어지게 자태를 뽐내며 자라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의 민가 돌담 옆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담팔수.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담팔수가 자란다. >
오늘은 음역으로 8월 10일, 추석 보름달을 5일 남기고, 음력 10일 치의 달이, 그만큼의 크기로 돌담을 밝히고 있어서 밤마실을 떠나기에도 좋은 밤이었다. 우선 표선면의 맛집 [우동가게]에서 나와서, 표선 해수욕장 방향으로 600미터 정도를 갔는데, 그곳엔 [다카포]라는 작은 수영장이 딸린, 근사한 카페&펍이 나온다. 카페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서, 제주의 전통을 자랑하는 마을 서귀포시 표선면과는 살짝 언밸런스한 서울 홍대 길거리의 풍경을 잠시 즐겨봤다.
피터팬 PD는 50년 동안 서울에서 자란 서울 본토박이 기질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아직은 제주에서도 이런 ‘신식 카페’ 건물을 보면, 친구라도 만난 듯한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최신식 유행하는 건축 기법으로 지은 새 건물보다는, 1,000~2,000년도 넘은 제주도만의 방식으로, 돌담을 쌓아 올린 야트막한 민가의 담장에서 더 큰 마음의 위안을 얻는 걸 보면, 뼛속까지 서울 사람은 아닌가 보다.
<작은 수영장이 딸려있는 표선면 카페 [다카포] / 넓은 마당에서는 빔 프로젝트로 영화도 상영한다. 카페 [다카포]는 세련된 건물과 함께 정겨운 제주의 돌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독일식 놀이터가 있는 힐링 공간이기도 하다.>
서울의 강남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여의도와 상암동 MBC에서 25년 동안 방송국 PD로 지낼 때도, 가슴속에 서는 늘 전원에서의 생활을 꿈꾸어 왔으니까. 특히 문화방송이 상암동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는, 회사가 파주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까 파주로 이사를 가자고, (지금은 이혼한) 아내와. (지금은 서로 못 보고 사는) 아이들에게 졸랐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아내 : “ 가려면 당신 혼자가~~ ”
아들 : “ 파주가 좋으면, 아빠 혼자 가세요~. 여의도에 학교 친구들이 다 있는데, 어떻게 갑자기 그곳으로 가요! 너무 아빠 혼자만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피터팬 : “그래도 아들들아~~ 파주에 가면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다람쥐도 키우고 강아지도 다섯 마리 정도 키우면서 살면 좋잖아? 안 그래? 어때 막 당기지?? 응? ”
아들 :“그래도 싫어요, 강아지는 이곳 서울에서도 키울 수 있어요~~”
번번이 좌절되었는데, 결국 꿈은 이뤄지는 건지, 아니면 피터팬 PD가 나이 오십이 넘어서는, 혼자 살게 될 팔자였던 건지, 제주라는 외딴 별에서 고양이 키키를 키우면서, 매일 저녁이면 전원 풍경 사이로 산책을 하고 있다.
<피터팬 PD가 키우고 있는 러시안 블루 고양이 팅커벨(=키키)이, 캣타워에 올라서서, 밤마실을 가는 피터팬을 부르고 있다. "어디가냐옹~~ 빨리 돌아와서 나랑 놀아주라 옹~~"/키키야! 너는 나 없으면 어떻게 살라고, 그렇게 나만 좋아하니?? / (피터팬이 쫌 멋지긴 하지.. 음..)>
표선면의 돌담을 따라가다 보니, 느닷없이 주택가 사이에 절이 하나 보였다. 하기야 제주에는 한라산 외에는, 중산간에 오름이 있을 뿐 따로 산이 없다 보니, 사찰이 민가 사이에서 끼여있는 듯이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피터팬이 살고 있는 표선면에는 6개 정도의 사찰이 있는데, 그중 다섯 개의 사찰이 민간 가옥을 약간 변형한 형태의 사찰이고, 그나마 오늘 밤에 피터팬이 찾은 [육각사]만이 전통 사찰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민가 사이에 위치한 사찰 [육각사] 경내에도 달빛이 비치고... >
추석 보름달을 5일 앞둔 제주의 밤하늘 아래에서는, 돌담에 기대어 [흰꽃 나도 샤프란]도 커가고 있었다. 달빛이 비치자, 하얀 꽃잎이 더욱 예쁘게 반짝였다.
현무암을 얼키설키 쌓아 올린 자유분방한 돌담과, [흰꽃 나도사프란], 그리고 돌담을 타고 오르는 넝쿨나무의 잎들이, 서로 자기가 더 예쁘다고 뽐을 내는, 제주도 표선면의 아름다운 밤이 깊어가고 있다.
<표선면 돌담 아래서, 달빛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는, [흰꽃 나도사프란]>